메뉴 건너뛰기

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조회 수 29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5:17-19
강설날짜 2021-03-21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rL181BPZrs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을 아십니까?(마5:17-19)

 

 

세상 사람도 “사순절”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순절은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교회력 절기”로 생각합니다. 사순절 그렇다면 성경적입니까? 신학 공부하지 아니한 성도라면 교회에서 해마다 절기로 지키니 성경적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근구 목사는(합동) "칼빈의 종교개혁은 사순절이 미신적으로 시행되고 인간의 공로를 세우며 금식이 하나님께 예배가 된다고 주장하고 실행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폐지하였다(칼빈의 기독교 강요 4장 19-29)"고 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84회 총회(1999년 9월)에서 종교개혁이 폐지한 사순절을 우리 한국 교회가 로마 교회로부터 받아서 부활시키고 지킬 필요가 전혀 없다고 결의 한 바 있는 일이다."고 사순절 폐지론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교회는 사순절을 미신적인 것을 이용하여 지키고자 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고행에 가까운 육체적 그리고 문화적 절제 등을 합니다. 그러면서 경건의 내용을 이야기하며 예수님을 잘 믿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좋은 방법 같지만,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의 선배님들께서 유산으로 남기어주신 신앙고백에 위배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지 아니하는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과 능력을 위해 사순절에 이런 일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강도상(강단) 앞에 M자 모양의 십자가를 설치합니다. 이렇게 하면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나도 동참하는 것같이 보이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외형적으로 이용하여 예수님을 잘 믿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경건에 힘을 써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참되게 믿으며 경건에 이르도록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사순절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장로교 성도라면 존 칼빈을 아실 것입니다. 칼빈이 원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순절을 폐지하고자 했습니다. 칼빈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가들도 사순절을 폐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부터 사순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왜 종교개혁가들은 사순절을 폐지하고자 한 것입니까? 미신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순절을 지키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또한, 초대교회도 사순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날이 주의 날로 인정하며 주일과 같은 마음으로 생활했습니다. 특정한 날만 특별한 날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교회가 가장 타락했을 때 사순절을 지키며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금식을 비롯한 고기를 먹지 않는 것 등을 공로”로 생각하며 지키었습니다. 그러면서 카톨릭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최고의 예배로 생각했습니다. 마음보다 외형적인 것 즉 외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마치 종교지도자들처럼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인간의 고행과 금욕 등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고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외형적으로만 지키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진정한 고난을 흐려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의 본마음입니다. 참된 교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를 아십니까?”를 강설로 듣고자 합니다. 그러기 전에 지난주 강설을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마태복음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는 이렇게 기록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강설 제목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성도의 영향력 즉 소금과 빛”입니다. 소금과 빛은 오늘부터 산상수훈을 마무리할 때까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소금과 빛에 알맞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금과 빛을 이야기하기 전 그 전의 이야기부터 소환하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후 비로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갈릴리 지역을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병든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이런 소식은 사마리아를 제외한 지역과 이방인 지역에도 소문이 퍼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사역 때문에 많은 무리가 모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에 오르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와 삶이 무엇인가를 깊이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세상 사람도 잘 알고 있는 산상수훈의 팔복입니다 팔복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당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데 핍박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선지자들도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은 핍박을 받아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생활하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합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워진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 자인 우리는 소금과 빛처럼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성도의 영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마귀를 따라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영원한 지옥의 길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구원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소금과 빛처럼 존귀한 자로서 세상에 영향력이 있습니다.

 

 

소금과 빛을 사용하신 이유를 이렇게 오해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금의 성질이나 맛이 변질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이를 보존하며 또한 맛을 내게 하는 이미지를 빌려서 세상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표현했습니다. 이미지를 가지고 오셔서 교회도 소금과 같이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님들께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의 인물을 보십시오.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시편 23편의 말씀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하나님께서 동행하여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소금과 빛처럼 영향력이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마귀에게 존재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교회를 핍박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임마누엘이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교회입니다. 인생을 무의미하게 생활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소금과 빛처럼 생활하는 백성입니다. 숨길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존재입니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에서 진리와 참 생명의 맛과 빛을 환하게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핵심을 전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알고 있기에 핵심을 독자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마5장 3절부터 16절은 산상수훈의 기초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을 아십니까?”를 강설로 듣습니다. 오늘 강설은 산상수훈의 기초를 둔 말씀입니다. 그런데 17절을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소금과 빛과 연결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읽어왔는데 우리를 당황하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하신 말씀과 연결해 보고자 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다가 갑자기 율법으로 전환하셨습니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17절을 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과 율법의 관계를 명시합니다. 오늘 말씀은 짧은 구절이지만 성경을 예수님 중심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어떻게 율법을 성취하시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를 이야기하심으로 당신님께서 구약 성경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고 온전하게 하려고 오셨다는 것을 공개하신 것입니다. 이런점을 생각하면 성경 없이 예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 본문과 지난주 말씀이 연결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전파하시는 산상수훈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과 밀접한 연결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항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구약 말씀 중 이사야(사9:1-2)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를 “이방의 빛”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방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전부터 약속된 메시야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나라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땅으로 모든 족속들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때가 차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 그리고 이스라엘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스엘에게만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방의 빛이란 말씀처럼 산상수훈을 보시면 이방인도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산상수훈은 이 세상 어느 민족이든 관계된 것입니다. 구원은 특별한 민족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하시기 위해 율법이나 선지자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 자라는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표면적 의미에만 머물지 아니하시고 내면에까지 확대 적용하심으로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심으로 율법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것을 요구하십니다. 율법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천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결코 구약 시대에 주어진 언약과 율법 등을 폐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전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모든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성취하는 것이요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요 더 강력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종교지도자들에게도 들어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큰 망치로 내려치듯 강력했을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을 내려놓고 구약의 말씀을 생각해야 했지만, 권력이 더 중요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반율법주의자로 보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무너지도록 하는 자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상상도 못 할 정도였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계속해서 18절을 보시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천지가 없어진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이 없어진다는 것은 역사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 나라입니다.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쉽게 읽을 수 없는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메시지이기에 ‘진실로’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진실로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아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한 분이요 아멘이시기에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스스로 신뢰하시기에 너희에게 이르노니 즉 진실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권위를 강조하시기 위해 서두에 이런 표현을 자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진실로’라는 말씀이 31회 사용되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마태복음은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율법의 일점 일획을 사용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일점일획 즉 성경의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일점은 글자와 글자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부호입니다. 일획은 알파벳 즉 히브리어의 가장 작은 글자입니다. 사람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예수님께서는 일점일획도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역사이기보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분들이 있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을 온전하게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율법은 하나님의 뜻의 표현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한 것이고 변경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수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율법을 온전하게 성취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무한하며 오류가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 생활에 있어서 최종 권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위에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율법의 목적과 의도하는 그 온전한 뜻과 속 깊은 내용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 시기 위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율법을 항상 준행하셨습니다. 율법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가를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도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19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계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당시 시대 상황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작은 계명과 큰 계명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작은 계명은 생산의 십일조와 같은 것들이며, 큰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것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다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훼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원래 의미를 바르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 즉 일점일획과 같은 사소한 부분이라도 부인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권위 그리고 율법의 정신을 축소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 중에 특히 바리새파는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가장 열심이었습니다. 율법만 아니라 구전으로 내려오는 장로들의 전통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칭 율법의 선생 그리고 율법의 수호자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날 이런 분이 있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성경 위에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율법 위에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세의 자리”(마23:2)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내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순종은 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참된 순종의 길을 보여주신 주님만 바라보며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를 통해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였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지 아니하면 종교지도자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작은 계명과 큰 계명으로 나누어 생각했습니다. 모든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율법을 잘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글자, 한 점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그림자를 통해 예표 된 바의 실체요, 율법에 따라 정죄 받아 지옥에 가야 하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이시오 임마누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이시면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으로 생활하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주의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설교자 성경본문 강설날짜 조회 수
224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라 전은덕 마5:43-48 2021-05-02 327
223 악한 자를 대적해야 하는가? 전은덕 마5:38-42 2021-04-25 356
222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전은덕 마5:33-37 2021-04-18 337
221 예수님께서는 왜 이미 간음했다고 하는 이유? 전은덕 마5:27-32 2021-04-11 412
220 주님께서는 죽지 않고 살아계시며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고 있다. 전은덕 막16:1-20 2021-04-04 335
219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전은덕 마5:20-26 2021-03-28 567
»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을 아십니까? 전은덕 마5:17-19 2021-03-21 290
217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성도의 영향력 즉 소금과 빛 전은덕 마5:13-16 2021-03-14 309
216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의 복 그리고 결론 전은덕 마5:9-12 2021-03-07 363
215 긍휼히 여기는 자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이란? 전은덕 마5:7-8 2021-02-28 300
214 온유한 자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전은덕 마5:65-6 2021-02-21 357
213 심령이 가난한 자 그리고 애통하는 자의 뜻을 아는가? 전은덕 마5:3-4 2021-02-14 1154
212 산상수훈 도입 그것을 알고 싶다 전은덕 마5:1-2 2021-02-07 272
211 예수님께서 첫 제자를 부르신 후 사역의 개관을 소개 전은덕 마4:18-25 2021-01-31 364
210 12.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예수님께서 천국을 전하시다 전은덕 마4:12-17 2021-01-24 309
209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이기셨다2 전은덕 마4:5-11 2021-01-17 348
208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이기셨다 전은덕 마4:1-4절 중심으로 2021-01-10 309
207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전은덕 마3:13-17 2021-01-03 485
206 성탄절 주인공은 예수님 그러나 현실은 ........이런 시대에 기독교의 정신 전은덕 마2:1-12 2020-12-27 343
205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한 후 유대인의 반응 전은덕 마3:1-12(4절부터 12절 중심으로) 2020-12-20 39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 Next
/ 1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