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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7:24-29
강설날짜 2021-08-08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mW3b0ziU2M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마7:24-29)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리고 삶이 편안할수록 무신론 즉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14:1절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생활이 풍요로우면 신은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지만, 관심이 없습니다. 신에 관한 관심보다 자신의 행복한 삶을 누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시대라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님께서 천지창조하신 만물 안에서 역사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시14:1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교회를 하나둘 문을 닫도록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무신론자가 많은 수록 즉 배교 할수록 교회문을 닫도록 합니다. 오늘날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대에 교회는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 이유는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세상의 걱정을 하며 세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 믿었던 것입니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당하니 쉽게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늘면 예배당 즉 건물 짓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건물을 짓는다는 것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많으면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리하게 빚을 내어 짓는 대가는 어떠합니까? 일부지만 이단들이 예배당을 사서 예배당의 상징인 십자가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러면 예배당을 짓는 것으로 사람들이 줄어든 것입니까? 저는 교회가 말씀의 본질을 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지만, 왜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교회로부터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배당이 많이 있지만 올바른 말씀을 전하는 교회는 많은가 할 때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좋은 교회를 찾기보다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문화의 혜택을 받고자 합니다. 가까운 예배당보다 먼 곳이라도 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공동체의 삶으로 의와 희락과 평강으로 삶을 생활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에 나를 즐겁게 해주는 교회를 찾고자 합니다.

 

 

교회는 정직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해야 하는데 가라지가 많아짐으로 세상과 같은 기업으로 변질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다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말씀으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지팡이 교회는 말씀의 회복이 일어날 수 있도록 주님만 바라보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우리 아버지께 간구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다시 기억해봄으로 오늘 말씀을 더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 말씀은 “좁은 문과 열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간다는 것은 열매를 안다는 것입니다. 좁은 문은 멸망의 길이 아니라 임마누엘과 동행하는 구원의 길입니다. 넓은 길은 편안하지만, 구원의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마귀가 유혹하고 시험하는 넓은 길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좁은 문의 삶을 생활하며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습니다. 넓은 길로 유혹하며 그 길은 영생이라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을 아시기에 주님께서는 열매로 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지만 참된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온갖 거짓으로 난무하는 시대에 가짜가 진짜보다 더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가짜와 진짜를 분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유혹을 당하며 넓은 길로 갑니다. 넓은 길은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 같습니다. 넓은 길로 가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주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를 보아 알리라”고 하심으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서로 주여 주여라고 하지만 진실한 교회는 열매를 맺으며 좁은 문으로 가는 성도입니다. 진리를 위장하며 성공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참된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오늘 말씀을 강설로 듣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과 열매로 알리라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당신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2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성도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로운 삶의 척도가 당신님의 가르침을 순종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의는 자신을 위한 의였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한 거짓 신앙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의를 위해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짓기에 대한 말씀을 통해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를 이야기하십니다. 집짓는 이야기를 통해 그러면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집”이라고 말씀하신 집이 정확히 무엇인가는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의 문맥을 고려하면 자신의 삶과 믿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비판하지 말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좁은 문과 열매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삶과 믿음이라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과 삶의 열매를 참되게 맺지 못하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집은 지은 것이 아니라 세상에 집을 지음으로 멸망을 하는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반석 위에 지은 집으로 주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 하는 견고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가올 심판을 알면서도 어리석은 건축가처럼 집을 짓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는 것은 믿음의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며 넓은 문으로 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지 아니하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생활한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가짜 신앙인의 삶으로 생활한 믿음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집을 지은 지혜로운 성도와 세상의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의 유사점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순종하지 않고 믿음이 없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결국 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마지막 날에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예수님께서는 경고하셨습니다.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도 돌이키지 아니하려면 세상의 삶으로 돌아가 자신을 위해 생활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고자 하는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필요가 없다면 왜 교회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와 반대로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고자 하는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집을 짓기 위해 믿음의 생활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에 옮기는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성도입니까? 좁은 문으로 가며 열매를 맺으며 사명을 감당하는 신자입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자는 하늘에 썩지 아니하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짓기 위해 어디에 주추를 두었습니까? 25절을 보시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구현한 교회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았습니다. 여기서 주추라는 것은 집을 짓기 위해 기둥 밑에 괴는 돌을 의미합니다. 참된 교회는 세상의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하나님 나라에 보물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 주변의 모래는 지표면에서는 단단했습니다. 모래가 단단한 것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무너졌습니다. 그것을 아는 자들은 주추를 세우기 위해 모래 표면에서 몇 미터 아래에 있는 반석까지 땅을 파서 집을 지었습니다. 이런 집은 비가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주추를 놓은 교회는 아무리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강한 어려움이 와도 우리의 신앙은 반석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집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주추를 놓은 교회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어려움이 와도 이길 힘이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성도이기에 지혜로운 사람이며 집이 무너지지 아니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며 주의 길을 가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길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교회는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집 짓는 이야기를 통해 견고한 집이 될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힘없이 무너지는 집을 지을 것인지 택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믿는 지파이 교회는 비가 오고 창수와 바람이 불어도 이길 수 있는 주추를 놓은 신앙인입니다. 그러니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하늘에 보화를 쌓은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참된 신앙으로 신앙생활 하지 아니한 자들은 오늘날 누구와 같습니까? 코로나 시대에 어려움을 당하다 보니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결국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주추를 예수님께 놓지 아니한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믿음으로 집을 짓고자 하는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단순히 시련의 견딤이라는 소극적 차원을 능가하여 시련을 극복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되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26절에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고 모래 위에 집은 지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들었던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너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과 삶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냐는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모래 위에 집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반석 위에 집을 지을 것인가?는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잠깐 이 세상에서 살다가 지옥에서 영원히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넓은 문으로 가며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것은 허망한 삶과 같습니다.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삶을 생활하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위해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27절에서 어떻게 된다고 하셨습니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믿음이 없는 삶은 영원한 심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집이 무너지는 것처럼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들은 너희들은 심판을 받지 말고 가르침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삶이 아니라 적극적인 삶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온전한 순종, 진정한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교회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는 자는 멸망의 심판을 받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심판을 받지 않도록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삶으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산상수훈의 모든 말씀을 들은 자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28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놀랬습니다. 무리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 웅성거리며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긍정과 부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말씀 즉 성경을 믿고 순종하며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요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가 지닌 초월적인 위력에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종교지도자들과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29절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과 방식은 무리들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하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산상수훈의 메시지는 율법을 잘 알고 있다는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켰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말씀의 회복이 있었습니다.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영생에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제사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에 능동적인 순종을 하므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처럼 다른 것을 즉 장로들의 전통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할 때 복음이 심어질 수 있습니다. 유일한 영생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서로 영생의 문이라고 하는 자들은 가짜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메시야가 누구신가를 기록했습니다.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참된 제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집을 짓기 위해 반석 위에 주춧돌을 놓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마무리를 오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진리를 알고 있는 교회입니다. 진리를 알기 때문에 진리를 누리는 삶은 영광입니다. 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 장애에도 견딜 수 있는 믿음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에 응답한 교회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권위는 조상들의 권위나 기술함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교할 수 없는 권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교회입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이 주의 길을 가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들었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에 순종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듣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 은혜를 간구하며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 가며 점차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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