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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엡2:6-10
강설날짜 2022-04-17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6-10)

 

천상의 교회는 온전한 교회입니다. 왜 온전할까요. 몸과 영혼이 구원받은 백성이 천상에서 삼위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상의 교회는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의 교회는 천상의 교회를 향한 마음을 품고 지상에서 청지기의 삶을 감당하며 삶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천상의 교회에서 신앙 생활할 때를 바라보며 성경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천상의 교회는 이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는 건물이 아닙니다. 천상의 교회는 구원받은 백성 즉 성도입니다. 천상의 교회를 향해 지상의 교회는 가시적인 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천상의 교회는 이 세상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보이는 교회는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보이는 교회 즉 성도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성도인데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며 예배당을 교회라 합니다. 그러면 건물과 예배당이 구원받아 천상의 교회에서 예배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교회요 성전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는데 일부 목회자가 오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바른 용어를 알아야 합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 즉 예배당이 거룩한 보편 교회가 아닙니다.

 

지상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을 순결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믿음의 선배님들처럼 하늘에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을 믿는 삶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님들처럼 믿음이 같아야 합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는 삶이 아니라 천상의 교회를 소망하며 지상에서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상의 교회는 다양성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서로 다른 견해가 있었던 것처럼 다양한 개념과 재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점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삼위 하나님을 위한 삶입니다. 서로 다른 달란트이지만 교회는 하나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요 머리요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자랑할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지상 교회는 개성과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천상의 교회를 향해 나아가는 교회입니다. 그러니 지상의 교회는 만물을 통일하는 일에 순종하며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헤 지팡이 교회는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가 무엇인가를 아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는 성경을 바르게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지상의 교회는 부활절로 지킵니다. 하지만, 모든 날이 부활절입니다. 특정한 날만 부활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늘 기억해야 합니다. 특정한 날만 기억하며 자신을 돌아보면 안 됩니다. 고난주간을 통해 이벤트를 만들며 뭔가를 기념했다는 마음을 주입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세상의 것을 좋아하며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이 세상 최고의 능동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당연히 순종이라고 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성경은 단순하게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책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매 주일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예배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예수님께서 오셔야 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는 특정한 날에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헌금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대로 헌상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알아야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주님께서 살리셨다는 것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도록 에베소서를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를 통해 지팡이 교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지난주 말씀을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기 전 성도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원죄로 인해 타락한 존재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며 하나님을 미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했던 이유는 마귀에게 종노릇 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의 은혜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우리가 마지막 날에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지” 않습니다.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영광스러운 성도이면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도록 하셨습니다. 그 나라를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맛보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즉 우리를 살리셨도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노력과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습니다. 구원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간략하게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 그리고 하늘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왕이시며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사건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만물을 통일되게 하시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니 자랑할 필요가 없으며 기쁨으로 주 안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사람의 노력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였습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공로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그 누구도 그럴 수 없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으나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늘 보좌에 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함께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으키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앉히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함께 예수님과 연합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죽은 후 부활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보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경험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대표자로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연합하시어 함께 일으키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사람의 공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는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6절에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행함이 아닌 오직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을 두며 생활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죄인은 땅에 소망을 두며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천상의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존재로서 하나님 나라에 앉아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하늘에 속한 생명을 누리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죄인은 계속해서 죽었던 자로 생활하지만, 성도는 살아있는 존재로 생활하며 마지막 때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존재이기에 행복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구원해 주신 후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머리로만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요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7절에서 구체적으로 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시며, 함께 하늘에 앉히셨는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7절을 보시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입니다.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에게 베푸신 은혜의 풍성함을 다음 세대에게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성품을 변호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성도를 통해 다음 세대에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생활하면서 전투적인 교회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계속 해서 자신에게 종노릇 하도록 유혹하지만,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어주셨기 때문에 성도는 전투하는 교회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투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임마누엘로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당신님의 지극히 풍성함을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대에도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기억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믿는 성도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값없이 구원받은 것을 아멘으로 믿는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8절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8절을 보시면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출처가 사람입니까? 누구입니까? 원죄가 있는 우리는 꼭 알아야 합니다. 구원의 출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성도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선물을 받으면 사람은 좋아합니다. 성도는 구원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성도는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노력으로 구원을 획득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회개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심으로 나는 죄인임을 알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무능한 자였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받음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요1:10-13절을 보시면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통해 당신님을 영접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은 다른 것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님을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행위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8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식주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생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눔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을 정당한 방법보다 이상한 방법을 통해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이 또한 원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구원의 비밀과 선물을 알기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감당하고자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일꾼으로 생활할 뿐입니다. 우리의 행위에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도 같습니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오해하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육체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을 강조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노력하여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원을 오해하다 보니 율법을 지키는 것을 자부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마음은 뿌듯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세상 사람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생활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거울과 같은 것으로 자신의 죄를 알도록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의 정신을 모르고 형식으로 지키고자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하나님의 선물은 선물 받은 자의 실력과 공로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과 긍휼로 주신 선물입니다.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구원으로 분명하게 확증하셨습니다.

 

성도는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날마다 죽노라”는 생각을 하며 생활해야 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성도는 인생에서 자신의 계획대로 뜻을 이루고자 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며 선한 일을 하고자 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심으로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걸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습니다. 만물에게 하나님께서는 생기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으며 생기를 받았습니다. 그리함으로 우리는 육체와 영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새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에게 새사람이 되도록 하시고 하늘 보좌에 앉을 수 있도록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걸작품으로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성도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합니다. 선한 일을 하기 위해 특별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생활하며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일상생활이 복음의 길이 되도록 하면 됩니다. 특별한 시간만 주님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 삶 자체가 선한 일을 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처럼 “토브”라 하며 심히 좋다고 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은 구약의 유대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자동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불법을 저질러도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를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믿습니다. 선한 일을 하도록 새사람이 되도록 했지만, 오히려 이용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참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부패한 마음만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성경을 바르게 알 수 있도록 성경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허물과 죄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선한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합니다.

 

구원은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기에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죄로 인해 비참한 현실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으며 이미와 아직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생활을 맛보며 경험하고 있습니다. 맛보기 생활을 하는 성도는 구원의 선물을 알기에 선한 일을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생활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고자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영광 받을 수 있도록 찬양합니다.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행위에서 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고 세상보다 존귀한 사람이라고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며 하나님의 선물이 구원임을 전해야 합니다. 성도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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