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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6:13-16
강설날짜 2017-01-22

사도들의 대표로 신앙 고백한 베드로(마16:13-16)

 

지팡이교회는 두 주간에 걸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 대한 강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흠을 찾고자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마음속으로 탄식하시면서 “어찌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책망을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계속해서 보여 왔어도 알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심으로 당신님의 부활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대표라고 하는 그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경건에 이르고자 했지만, 변질된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을 주의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잘못된 가르침으로 독이 될 수 있는데 현실은 그것이 좋다고 하면서 독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요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강설의 내용의 의미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생각하며 우리의 신앙 고백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면서 서로가 한 몸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을 그동안 말씀을 들어서 아실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어두워 있었던 것입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왔음에도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이고,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믿고 있는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염려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경계하시는 맥락에서 발생한 한 가지 중대한 사건에 대한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고난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전, 제자들에게 당신님의 정체성을 확증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신다는 것은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하시는 것이고, 앞으로 있을 고난에 대한 이해를 풀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13절을 같이 읽었으면 합니다. 대체적으로 16절에 더 관심이 많이 있지만 13절의 의미를 잘 알아야 16절의 의미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먼저 질문을 하셨습니다. 질문을 하셨으면 그냥 답을 찾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도착할 때에 질문을 하시는 것인가? 병행본문인 마가는 막8:27절에서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하시면서 길에서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눅9:18절에서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하시면서 기도할 때라고 기록을 각자 합니다. 참으로 난해하기도 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서로 다른 것처럼 기록을 함으로 성경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공격을 당하기 딱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하여 보십시오. 마태는 빌립보 가이사랴를 지나 목적지를 향하여 가던 중에 질문을 하는 것이고, 마가는 이것을 ‘길에서’라는 표현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같은 내용을 기록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는 왜 ‘기도할 때에’라고 하신 것일까? 누가는 다른 복음서보다 더 자세히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의사라는 직업상 더 구체적으로 기록을 합니다. 목적지를 지나시다가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기도하신 후 질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전도하는 때가 아니라 질문의 의도는 제자들에게 당신님의 정체성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빌립보는 전통적으로 바알신과 소위 목신으로 불리는 판과 로마 황제 가이사랴 숭배의 중심지입니다. 이곳은 원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헤롯 대왕에게 주었던 곳이지만, 나중에는 헤롯 대왕의 네 번 째 아들인 빌립의 영토가 되면서, 지중해 해안에 있는 가이사랴와 구분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빌립보 가이사랴’라고 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제자들의 분명한 신앙 고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대략 200키로미터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위해서 여행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행을 시작하시기전 제자들의 공통된 신앙고백을 위해서 당신님은 누구신가를 알리시는 것입니다. 늘 예수님의 길은 의미심장한 의도와 목적으로 가시는 길입니다. 우리도 여행을 할 때 의도와 목적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메시야라는 것을 표적으로 보여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21절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아들을 보내신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확인한 후입니다.

 

우리는 다시 13절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먼저 질문을 하십니다. 무엇을 질문하십니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한 번 질문을 한 것으로 볼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문을 보시면 ‘제자들에게 계속 묻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심으로 미완료형으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반복해서 질문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제자들이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적극적으로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적극적으로 14절을 보시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답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눅9:17절에서 “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이렇게 답을 하는 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누구신가가 아니라 이방인과 특히 유대인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고, 세례 요한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생각하여 다시 살아난 세례 요한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메시야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와야 할 그 엘리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중의 하나로 생각하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올바르기도 하지만 완전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다고 하는 유대인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것은 둔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해 오시던 사역의 말씀과 근거 그리고 권위를 과거 선지자들이 했던 것과 같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둔감한 것입니다. 선지자들과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바알세불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참으로 비통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보는 것은 신성한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고, 신적인 권위를 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답을 했지만,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동행한 사도들에게 예수님은 15절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너희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답이 아니라 이제 너희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믿음은 무엇이고, 너희가 나를 누구라고 생각을 하면서 믿고 따르고 있는지 아주 간략하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쉬운 질문이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체적으로 당황하고 황당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공동생활하면서 훨씬 많은 말씀들과 이적들을 목격한 증인들이면서, 지금까지 이적과 기적을 단편적으로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과는 달리 종합적으로 경험을 했지만 갑작스런 질문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우리는 그 동안 마태복음을 통해서 강설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성도님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의 생각과 제자들의 생각과 일치하십니까? 아니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어렵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하신 의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나 질문은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중대한 심각성은 신성을 무시하고, 신적인 권위를 보지 아니하는 둔감한 시대에 예수님은 당신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질문을 통해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하도록 하심으로 앞으로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하심으로 진행될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도가 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당신님에 대한 분명한 생각과 태도를 확인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심각하게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관심이 없는 가운데 예수님의 질문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시대에 신앙 생활하는 지팡이교회에도 중요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어떻게 답하고 싶습니까? 오늘 각자에게 질문하여 보시고 내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반성도 하고 또 확인하심으로 잘 정리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의 시작을 보면 ‘너희’라는 복수를 사용하심으로 제자들 전체의 의견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담대하게 16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제자들 전체를 향한 것으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개인적인 고백이면서, 그와 동일한 믿음을 가진 다른 제자들을 대표하여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만의 믿음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대표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좀 더 풀이해 보는 것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을 말합니다. 구약의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제사장, 선지자, 왕’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구약의 세 가지(제사장, 선지자, 왕) 모두 포함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유일하시고, 선지자들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지금까지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시고, 나는 당신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제자들의 대표로 신앙 고백하는 베드로를 보면서 예수님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누리에 ‘메시야’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소망을 이루어 주실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면서, 모든 것의 완성자로 믿고 순종하십시오.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마귀의 세력과 그 악한 일을 다 멸하시고, 회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고 신앙고백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성육신하여 오심으로 우리의 죄를 구원하여 주시고, 믿고 순종하는 당신님의 백성에게는 죽음의 저주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으로 생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을 지닌 유일한 구원자임을 인정하며, 역사적인 인물로 당신님께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는 것을 부활로 보여 주신 것을 믿고 따르며 모든 날이 주의 날임을 생각하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질문을 하신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는 질문에 사도들이 고백한 것 같이 지팡이교회도 거룩한 도리에 합당한 같은 신앙고백으로 복음의 증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여서 외형적으로만 예배도 하고, 신앙고백이 없다면, 지팡이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신앙고백으로 모인 성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신앙 고백을 한다면 같은 교회의 성도가 아닌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오늘 말씀처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믿고 신앙 생활하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순례자의 모습과 복음 증인 자로 생활하는 귀한 성도님에게 승리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을 믿으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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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들의 대표로 신앙 고백한 베드로 전은덕 마16:13-16 2017-01-22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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