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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6:1-4
강설날짜 2017-01-08

지팡이교회는 지난 해 12월 18일에 마15:29-39절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고치시고, 사천 명을 먹이심”으로 강설을 들었습니다. 그런 후 성탄절 주일과 정유년 새 해를 맞이했습니다. 저번 주는 제가 설소대 수술을 함으로, ‘엘가르디아 아카데미’ 대표이신 전장원 목사님께서 “신앙, 믿음과 행함”으로 전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알기 위해서 3주 전에 했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데가볼리라고 하는 지역에서 말씀과 이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데가볼리는 이방인들이 많이 생활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당신님에게 찾아온 병자들을 놀라운 능력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능력을 본 무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들은 지 사흘이 지나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걱정하시면서 또다시 ‘오병이어 기적’처럼 이번에는 떡 일곱 개와 생성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말씀으로 영의 양식을 먹이시고, 육신을 배불리 먹이시고 무리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오병이어 기적’처럼 또다시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다 돌려보내신 것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오늘날 위치는 잘 모르지만 갈릴리 호수 동편의 ‘마가단’으로(마15:39) 이동을 하셨습니다. ‘마가단’은 성경 인물 중에서 유명한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막달라의 뜻은 ‘믹돌’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성경 사본에서 막달라를 마가단으로 기록하는 사본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막달라와 마가단은 같은 뜻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예수님께 찾아 온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분문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라고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왜 분명하게 기록을 하는 것인가? 그들은 평소 좋은 사이가 아니라 서로 교리적으로 달랐습니다. 바리새인은 장로들의 전통을 아주 중요시 하면서도, 폭이 넓게 신앙 전통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속된 것으로부터 구별하여 경건에 이르고자 했고, 사후 세계와 부활을 인정하지 아니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사두개인은 기록된 율법만 인정을 하면서, 사후의 세계도 인정하고 부활도 믿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는 서로 일치 했습니다.

 

1절에서 ‘시험하여’라는 말은 원어의 의미로 더 깊이 생각하면 예수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뭔가 결정적인 흠을 찾아내어 곤경에 빠뜨려는 의도로 질문하여 시험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시험을 하고 있습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메시야이면 메시야인 점을 자신들에게 보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해오신 많은 표적들 중에서 하나를 다시 행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특이하고 놀라운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단지 기적 자체가 아니라 기적을 통한 권위의 증명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하늘로부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 나라를 ‘하늘 나라’로 사용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시면 하늘로부터 오는 신적 권위를 증명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지금까지 해 오시던 일들과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의 표적을 제시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흠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는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있을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외친 소리에도 나타납니다. 마27:42절을 보시면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불신앙이 되었을까?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오직 메시야는 자신들만의 왕이고 모든 나라를 통치하시고 자신들이 군림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지만, 예수님은 이방인에게도 위대한 믿음이라고 하시면서 구원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메시야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시험하는 것에 대해서, 그들이 선호하는 ‘하늘’을 소재로 삼아 말씀하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은 하늘의 기상 상태를 보고 그 다음으로 예측하는 일반적인 관습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생각을 아시고 깊이 염려하시면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저녁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다음 날 날씨가 좋으리라,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날이 궂겠다고 판단을 하지 아니하는가? 하나님께서 자연의 현상을 통해서 나타내시는 표징은 잘 판단하면서도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음을 풍자적으로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대의 표적’은 무엇인가? 원문을 보면 ‘시대들의 표적’이라고 복수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시대와 앞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포함한 사건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획기적 사실을 품고 있는 시대로 “지금 역사적인 대사실을 품고 앞으로 올 역사의 방향과 내용과 그 실체를 결정해 줄 큰 일이 여기에 있는데, 왜 너희는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시대의 표적은 모르고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당신님은 그 세대라는 것이 장차 올 역사와 과거에 전개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 다 같이 아주 획기적인 성격을 이루어 놓은 장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지금 성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이고, 역사의 모든 전개의 근원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와 같은 시대의 표적으로서의 예수님의 존재, 그리고 표적뿐 아니라 그 표적이 포함하고 있는 사실을 얼마만큼이나 생각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에게 실질적인 이익과 복 받기를 바라면서 믿음생활을 하십니까? 예수님의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와 분명한 성격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바른 생활과 바른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분명하게 누구신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이해를 못하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님을 알 수 있도록 지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죄를 사하시는 그 분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치시고, 자연을 다스리기도 하고, 사천 명 그리고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의 가르침은 놀랍고 또 놀랍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하셨는데도 지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앞장 세워 높고 권위 있는 자리를 원했습니다. 베드로는 칼을 빼서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인의 귀를 베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잡히시고 고문을 당하던 말 던 도망치는 베드로의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난 후에 베드로는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예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시대의 표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과 계획을 세우시고 정하신 때에 하나하나 이루어 가시면서 그 역사의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내어 보이는 표징들을 이미 성경을 통하여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당신님이 오심으로 시대의 표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4절에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표적이 지금 예수님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해를 못하는데, 또 무슨 표적을 더 구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없이 행하신 표적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고 부인하면서 오히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하는 이 세대는 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신하여 멀리 떠난 세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악하고 음한한 이 세대를 향하여 주어질 궁극적인 표적에 대하여 알리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고 땅 속에 사흘 동안 있는 그것만이 남아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향하여 요나의 표적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표적이야말로 이러한 시대의 표적들을 마감하고 완성하는 궁극적 표적이며 그 누구도 이 표적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대항하는 자들과 필요 이상의 논쟁에 매달리지 않으시고, 다른 방향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소모적인 다툼에 끼어들지도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 가능하면 흠을 찾아서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주어서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들에게서 소모전을 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당신님의 정체성과 권세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흔히 세상 끝에는 어떤 징조들이 있는데 성도들은 그 징조를 분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 말씀을 해석하는 것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이미 예수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세상 끝은 아무런 징조 없이 갑자기 임할 것’이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만약 그런 의미였다면, 우리 시대에도 표적이 계속 있어야 하고 십자가는 최후의 표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님께서 이미 행하셨던 많은 표적들을 통해서 메시아이심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남아 있었던 최후의 표적은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그 이상의 표적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시대에도 다른 표적들이 필요치 않으며, 오직 성경만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기도하겠습니다.

 

 

교훈과 적용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서로 다른 점을 간략하게 서술해 보십시오.

 

 

 

 

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정작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모르고 시험하여 흠을 찾고자 했습니다. 우리도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모르는 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나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습니까?

 

 

 

3.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찾아와서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하면서 이익과 복을 위해서 구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구하는 표적과 나의 표적은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4.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것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해 오신 사역을 깨닫지 못하고 신비적인 표적만 요청한 것입니다. 나도 표적을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많은 표적들을 통해서 메시아이심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예수님은 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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