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조회 수 33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9:23-26
강설날짜 2017-05-07

지팡이교회는 지난주에 부자 청년을 통해서 ‘인생 최대의 문제, 영생’의 강설을 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어떻게 하면 노화 방지를 통해서 마치 진시 황제처럼 영생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생 하고자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영생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나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하여 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배우고 깨달아 알게 하심으로 영생의 비밀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부자 청년도 인생 최대의 문제인 영생을 알고자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위해서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장로들의 전통과 계명 그리고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부자 청년은 공로적이고 행위로 영생을 얻고자 한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어서 늘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부자 청년도 알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질문한 이유는 진정한 선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선행을 어느 정도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의 질문을 받은 후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고 하시면서 너는 공로적인 선을 이야기하지만,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오직 선한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선을 하나님에다가 붙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무엇이 선인지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선을 행하라고 명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느 계명이오니이까”라고 하자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더 오해하여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가지 언약의 말씀’(십계명) 중에서 일부분을 나열하심으로 계명만 외적으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인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은 부자청년이 알 수 있도록 대표적인 것을 나열하셨지만 그는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고 지금도 계명을 다 지키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심으로 자신의 무능함과 부족함 그리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고백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율법을 다 지킴으로 주어지는 행위적인 구원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께 있음을 알도록 한 것입니다. 부자청년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심으로 마치 “너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의도를 알게 하심으로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재물을 사랑하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이웃을 사랑함으로 영생의 의미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런 후 “나를 따르라”고 하셨지만 부자 청년은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왜 근심한 것입니까? 율법을 지키고 구제도 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부자 청년의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예수님의 말씀만 좋아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영생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많은 재물이 부자청년에게 있어서는 영생의 걸림돌인 올무가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이고 결국 영생의 비밀을 모르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입니까? 부자 청년과 같은 모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오늘은 이런 흐름 속에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단순한 것 같지만 단순하지 아니하고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된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 23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고 하심으로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시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단지 제자들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맘몬주의 생활을 하는 나에게도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시면서 당신님의 권위를 강조하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말씀하십니다. 24절에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중동 지역에서 가장 큰 동물하면 대체적으로 ‘낙타’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가장 작은 구멍은 ‘바늘귀’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부자 청년은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영생을 얻고자 했습니다. 더욱 계명을 지킴으로 영생을 붙들고자 한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근심하면서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떻습니까? 부자들은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까? 재물과 권력 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정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천국에 그냥 들어갈 수 있습니까? 재물은 많아도 반대로 없어도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후 문맥은 생각지 아니하면서 부자는 당연히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팡이교회는 지난 주에 16-22절의 말씀의 강설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기억해 보아야 합니다.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부유함 자체를 문제시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 하라는 말씀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말씀은 부자와 가난을 넘어선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경악을 합니다. 부자청년을 외적으로 진실하다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계명을 지키었다고 하는 것은 존경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낙타와 바늘귀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낙타와 바늘귀를 대조시킴으로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분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장법을 사용하심으로 인간의 선한 행동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고난의 극치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선을 위해서 쌓아온 모든 것과 재물 등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고난의 길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스스로 영생을 얻고자 했지만 인간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불가능한 것은 예수님은 하실 수 있는 것이고 오직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따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롬10:3절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부자 청년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면서 의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보면 세리와 창녀는 죄로 더러워진 자신의 심령을 애통하면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볼 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선행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25절에서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왜 놀란 것입니까? 그것도 최상급 단어를 써 가면서 단지 놀라는 것이 아니라 경악을 하면서 따지는 것입니다. 장로들의 전통과 계명 그리고 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자 청년을 생각할 때 과연 누가 영생 즉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따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어떻게 부자 청년보다 더 높은 의를 세워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자 청년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음으로 복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자신들이 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난을 함께 하면서 동고동락한 의미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오해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26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제자들은 경악하고 놀라면서 질문을 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면서 당신님의 말씀을 강조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잘못된 종교는 선행을 함으로 최소한 지옥(?)은 면하고자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선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구원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우리가 신앙 고백하는 첫 부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선을 행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부자청년은 구원의 근거는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3:8절에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라는 고백처럼 오늘 본문 26절의 말씀을 생각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단지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으로 전적인 무능함을 알면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나는 전적인 타락을 인정하면서 부자청년처럼 해 보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구원은 인간차원의 선의 노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님의 성육신으로 오심과 십자가 고난에서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차원에게 구원을 시도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이단들이 주장하는 사람의 열심인 것입니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청년에게 재물을 팔아 이웃사랑을 보여 주라는 것은 그의 약점을 아신 것이고 하나님께 모두 이양함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씀처럼 근심하여 간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자신의 노력으로 영생을 얻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재물로 영생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지팡이교회는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능함과 불완전함을 고백하고 나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잘 알고 있는 ‘열 가지 언약의 말씀’(십계명) 중 일부분을 나열하심으로 이웃사랑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알고 있는 청년은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지는 않음으로 자기 재산의 소유권, 주권을 여전히 자기가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재산의 소유권, 그의 주권을 오직 하나님에게 의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부함으로서 결국 하나님께 주권 이양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자 청년을 하나의 예로 들면서 부자가 주님께 자신의 주권을 이양하는 것의 어려움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역시 말씀의 은혜도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불가항력적인 은혜도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과 반대로 삭개오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재산의 절반을 팔아서 나눠줌으로 재산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고 보여 준 것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영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나의 모든 것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모두 이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서 재물과 자녀를 더 사랑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통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설교자 성경본문 강설날짜 조회 수
»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영생의 문제, 오직 하나님만..... 전은덕 마19:23-26 2017-05-07 337
1 인생 최대의 문제, 영생 전은덕 마19:16-22 2017-04-30 304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