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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2:1-14
강설날짜 2017-07-30

지난 주 강설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기억을 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감사드립니다. 강설을 듣는 것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주보에 원고를 다시 보시면서 성경을 보시면 은혜의 방도인 말씀을 통해서 장성한 분량의 믿음으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난 주 강설은 ‘악한 포도원 비유를 아십니까?’였습니다. 기억을 하실 수 있도록 잠시 요약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신 후 계속하여 당신님은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적과 기적으로 증명하여 주심으로 예수님 당신님이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께서 해 오시던 사역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예수님의 신분과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백성을 무서워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닌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처럼 오늘날의 가짜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불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은 가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의 불신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지팡이교회는 두 아들의 비유와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불신앙이 불러올 재앙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번 주 말씀을 통해서 들어서 아시겠지만 유대인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포도원을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는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는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서 알도록 하셨습니다. 악한 포도원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끊임없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로 종들을 보내었지만 농부들은 그 종들을 때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돌로 치기도 했습니다. 다시 다른 더 많은 종들을 보내어도 똑같이 했습니다. 마침내 주인이신 하나님은 당신님의 친아들은 ‘존경하겠지’라고 했지만 농부들은 상속자이니 우리가 죽이면 그의 유산을 차지할 것이라고 하면서 포도원 밖으로 쫓아내어 죽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를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예수님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의 답을 들은 예수님은 악한 포도원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들은 종교지도자들 즉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깨달은 후 예수님을 잡고자 하지만 무리인 백성을 무서워했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종교지도자들처럼 그리고 악한 농부처럼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는 성도입니다. 그런데도 종교지도자들처럼 이권과 권위를 누리고자 한다면 비참한 형벌을 받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풍성한 은혜를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와 악한 포도원 비유를 통해서 불신앙이 가져올 재앙의 대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하심으로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는 말씀으로 비유를 설정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임금은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가적인 행사입니다. 임금이신 하나님은 온 나라의 잔치인 하나님 나라에서 있을 하나님과의 즐거운 교제를 나타내는 것으로 초청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초청을 받은 혼인 잔치의 백성입니다. 초정을 받았다는 것은 특별한 명예이고 특권입니다. 우리는 메시야에 대한 믿음과 자신이 예수님의 백성임을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맛보기 생활을 충실히 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초청을 받았다는 것은 명예이고 특권인데 3절을 보시면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임금이 초청한 잔치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임금의 초청인 혼인 잔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이스라엘로 자신들이 초청을 받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고 혼인 잔치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임금은 종들을 시키어 초대 받은 그들을 부르지만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임금의 초대장은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령으로서 강제력이 있습니다. 거절을 했다는 것은 단순한 무례가 아니라 불순종이고 임금에 대한 극도의 모욕이고 반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절을 보십시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무엇입니까? 임금은 불순종과 모욕을 주고 반역을 하는 초대를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진노하지 않습니다. 임금은 더욱 ‘내가 오찬을 소와 살진 짐승’을 준비해 두었다고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른 종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도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5-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거절을 하면서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을 더 좋아하는 것은 자신의 이상과 야심을 성취하는 보람과 기쁨을 위해서 떠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양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보다 남은 자들은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극악했습니다. 임금의 종을 잡아 죽이고 능욕을 한 것입니다. 악한 농부의 비유에서도 주인이신 하나님은 계속하여 선지자를 보내었고 결국에는 당신님의 아들을 보냈음에도 잡아 죽이던 것처럼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잡아 죽인 것입니다. 임금은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했지만 거절을 넘어서 살인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본성을 잘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자 임금이 분노를 합니다. 7절을 보면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임금이신 하나님은 진노하심으로 살인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태워 그들에게 주신 땅을 황무하게 하신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말씀에 대해서 주후70년의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서 혼인 잔치는 지체되었고, 임금의 아들은 여전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8-9절에서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혼인 잔치는 이미 준비되었으나 초대 받은 자들은 자격이 없다고 하시면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세리와 창녀들도 포함할 수 있는 불특정 다수를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사람을 만나는 대로 청하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초대받는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선악을 불문하고 누구나 다 하나님 나라에 초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초청된 사람들이 어떤 계급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준에 더 이상 어떤 외적 장벽도 있을 수 없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임금은 당신님의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은 의인이나 불의한 자이든,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온누리에 복음을 전함으로 어느 누구나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그들은 악한 농부의 비유처럼 자신들만 상속 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오히려 주인의 종과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의 은혜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위해서 사랑하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믿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내가 믿는 것이 하나님이 고마워해야 하고,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값싸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님의 친아들을 희생시키고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고귀한 은혜인 것입니다. 그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나입니까? 우리들입니까? 오직 메시야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지팡이교회는 예수님의 값비싼 은혜에 합당한 구원을 감사하면서 신앙 생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종들은 임금의 명령대로 손님들을 가득 채웠습니다. 10절을 보시면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하나님 나라는 모든 민족으로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흑인이든 만백성으로 가득 채우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왔을 때입니다. 11-13절입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예복을 입지 않고 왔던 손님에게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데려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복을 준비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임금의 잔치에 참여할 손님들을 위해서 예복을 제공을 하기도 했습니다. 임금의 아들 혼인 잔치에 참여하면서 예복을 입지 않고 참석하였다는 것은 잔치를 주관하는 주인에게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왜 예복을 입지 아니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임금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복을 입지 아니한 자는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복은 무엇인데 혼인 잔치에서 쫓아내시는 것입니까? 예복은 단순히 예수님의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기대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7:21절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계19:7-8절에서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두 말씀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잔치에 초청을 받은 성도로서 그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지 생각하십시오. 잔치에 참여하였다면 잔치에 합당한 예복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 아들로 고난과 죽음을 겪게 하심으로써 마련한 혼인 잔치의 은혜를 바르게 깨달음으로 기쁨으로 참여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14절을 보시면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많은 사람들이 잔치에 초청을 받았지만 모두 택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누리 방방곡곡에 전파되었지만 진실하게 믿지 않고 합당한 뜻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가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가짜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의와 희락과 평강’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성경을 읽으면서 깨달아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뜻대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실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혼인 잔치를 준비하여 주시고 산해진미를 먹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을 바라보면서 의와 희락과 평강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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