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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4:3-14
강설날짜 2017-11-12

지팡이교회는 예수님께서 지상사역을 감당하신 후 흔히 말하는 “고난주간”에 대한 강설을 듣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당신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며칠만 있으면 십자가에서 대속물이 되어 주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하셨지만 더욱 ‘지옥 자식’으로 되어가는 것을 보면 인류 최대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잘 알고 가르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표현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탄식을 들어보십시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주님의 탄식 음성을 들은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성전 안에서의 모든 가르침을 마치신후 주님은 계획적으로 이동한 곳이 있었습니다. 혹시 기억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분문에서는 ‘감람산’으로 나오지만 저번 주 말씀에서는 없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강설하여 주신 장소로 생각하여 “감람산 강화”(강설, 강론, 설교)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마태는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잘 보이는 감람산에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성전을 보이셨을 때 병행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다움를 이야기 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잠시였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후 헤롯 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성전을 짓습니다. 우리는 그 성전을 헤롯성전이라고 합니다. 헤롯 왕은 건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건축 마니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전의 화려함과 자랑스러운 건물이로다’가 아니라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하심으로 성전이 무너질 것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저번 주에 “성전이 무너뜨려질 것을 예언하다”라는 말씀의 강설을 들으면서 건물로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성전이 잘 보이는 감람산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3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은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두 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첫째는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라는 것이고 둘째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는 것입니다. 왜 제자들은 이런 질문을 해야 했던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스가랴 선지자가 전한 메시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슥14장을 문맥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스가랴 선지자가 전한 복음을 알기 때문에 성전의 파괴는 세상의 종말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사도들의 대표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신앙고백을 하였지만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말씀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지만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께서는 온누리의 왕이 되심으로 자신들이 분봉왕처럼 대리자로 통치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특히 예루살렘성 안에서 일어난 종교지도자들과 다투시는 모습과 그들에 대한 “화 있을진저”로 지옥의 자식과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을 들었고 성전이 무너질 것을 들었습니다. 분봉왕처럼 통치를 해야 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세상의 종말 즉 심판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어느때에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 끝날에 일어날 징조를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전의 무너짐은 메시야의 재림과 더불어 세상 끝날의 심판이기 때문에 중대하고 심각함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4-8절에서 당신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가짜 메시야, 전쟁과 전쟁의 소문, 기근, 역병, 순교자. 거짓 선지자, 악은 더울 넘칠 것이지만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을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이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더불어 시작될 마지막 징조를 말씀하여 주셨지만 4절의 첫 시작에서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미혹을 당한다는 것은 바른 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함으로 길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될 일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에게 그러니 조심하고, 성경의 말씀에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을 이어서 예수님은 6절에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고 하심으로 가짜 메시야가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가짜 메시야는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길을 잃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과거나 오늘이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 수 없는 가짜가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가짜 메시야들은 그냥 미혹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속이고 미혹하는 것을 넘어선 것으로 ‘내가 진짜 예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후 66년 유대 전쟁이 발발하기 전 수년 동안에 걸쳐서 대중적인 관심과 환호 속에 ‘드다’와 ‘갈릴리의 유다’와 같은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출현하였고, 크리스챤 투데이라는 신문의 글을 보면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그 숫자가 사상 최대인 1,500명”이고 한 것을 보면 ‘미혹’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통하여 제법 설득력을 갖고 있어서 가짜라는 것을 구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더욱 구체적인 것을 7절에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고 하심으로 마지막 시대는 전쟁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가짜 메시야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나’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만이 세상의 끝인 심판의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팔레스타인 주변 세계에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습니다. 아직도 팔레스타인 지역은 작은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전쟁은 계속 빈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기를 동원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전쟁이 아리라 저는 이렇게도 생각을 합니다. 일상의 생활에서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서 보이지 아니하는 전쟁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모습을 보면 형제우애와 부모와 자식 그리고 이웃 사랑 등은 사라지고 돈과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어 ‘삶이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종교개혁자의 외침인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삶 속에서 언제 자신의 죽음이 온다할지라도 미혹을 당하지 않으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7절에서는 앞 절에서 말씀하신 ‘전쟁’에 대한 것을 부연 설명을 하십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민족들과 나라들은 서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될 것이고,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기근은 언약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표시로 예언되기도 했습니다.(민26:18-20, 신28:23-24 등) 이사야 선지자는 전쟁과(사19:2) 지진(사13:30) 그리고 기근을(사14:30) 하나님의 심판의 전조로 알렸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었지만 이스라엘은 더욱 완악하고 강퍅한 자들이 되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심으로 마지막에 될 일을 말씀하여 주심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주후 46년 경 클라디우스 황제 때 대 기근이 있었고, 주후 62년에는 폼페이 지진이 있었고 그 후에는 팔에스타인과 예루살렘도 지진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짜 메시야라고 하는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기근과 지진이 실제적으로 일어났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8절에서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은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드러내는 징조일 뿐이요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재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언어로는 ‘재난’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좀 더 의미를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출산 전에 느끼는 고통을 가리키는 진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진통을 하는 것은 아기가 출생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통이 왔다고 해서 당장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심판도 아직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세상의 종말의 심판이 찾아오면 모든 인간에게 엄청난 진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될 일을 출산의 과정으로 말씀하여 주심으로 결국 승리자는 당신님이라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지팡이교회 성도님, 세상 사람들에게 재난이라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재난은 마치 출산을 앞둔 산모의 진통으로 생각한다면 승리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 것이고, 결국 구원은 나의 것입니다. 심판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승리의 면류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질문을 한 것에 대해 당신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1-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심으로 환난과 고통의 시대에 나 혼자만 면하리라는 것이 아니라 해산의 고통을 당하지만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해산의 고통과 같은 진통을 당하지만 승리의 영광을 알기 때문에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9-1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산모의 진통은 당신님의 제자들이 겪게 될 핍박과 미움을 의미합니다. 9절을 보시면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하심으로 참된 제자들에게 마지막에 될 일의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를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신앙의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예수님의 백성인 우리를 ‘미혹’을 하지만 당신님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니 소문을 들어도 난리가 나도 흔들리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과 죄악에 맞설 것이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4:6절에서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참된 구원자로 믿음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초대교회를 보시면 사람들은 사회적 혼란과 자연 재해들이 있을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외쳤습니다. 네로 황제의 시대에 재난이 발생하면 기독교인들에게 모든 책임을 씌워서 환난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참된 구원자로 인정하는 대가로 극심한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그로인하여 많은 배교자가 생겨났고,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서로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미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사람에게 엎드리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께 엎드리며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위로하여 주시고 격려하심으로 승리하시도록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10-12절에서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을 출산하기 위한 엄마의 진통은 소망이 있는 것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도 소망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실족함으로 서로 잡아 주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병행본문인 눅21:12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면 피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극심한 핍박을 당하는 것도 어려운데, 거짓 선지자가가 많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하고, 불법이 성행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세상 끝’의 시점을 알려주는 징조로 세상의 심판이 다가오면 올수록 당신님의 제자들이 겪어야 하는 반복적인 현실일 뿐입니다. 5절에서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차라리 그들은 분별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의 ‘거짓 선지자’는 거짓 말로 하나님의 대변자라고 하면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당신님의 백성을 교활하게 속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10-12절을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교회에 하시는 말씀으로 혼란과 분란을 겪게 될 것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가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 무너지게 하고자 하는 것이고, 분쟁을 경험할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바르고 올바른가를 분별하지 않고 서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아니하면서 악한 일로 형제와 자매를 망치도록 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끝까지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3절에 보면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마지막 시대를 사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이 힘들고 어렵겠으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더욱 힘들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위해서 살벌하게 생활하기를 좋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날을 소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단지 우리는 그 날이 오기까지 변함없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삶에 무게를 두는 것이 제자로서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에게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표적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끝까지 인내하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심으로 위로와 격려를 하십니다.

 

종말의 시대를 생활하는 우리는 계속해서 극심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재난이라는 것처럼 해산의 진통을 당하는 것처럼 끝까지 인내하라고 하십니다. 참된 제자는 세상의 빛으로, 어두움이 이길 수 없는 것이고 빛은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환난과 핍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나에게는 참된 행복임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14절에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십니다. ‘세상’으로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사람이 거주하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파괴가 세상의 종말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 의미를 넘어서 열심히 복음을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환난과 핍박을 준다 할지라도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말고 복음을 증거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교회는 주님의 때를 소망하면서 해산의 고통을 생각함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권능과 말씀으로 나를 보호하여 주실 것을 믿으십시다. 나의 머리털 하나라도 세밀하게 아시는 주님께서 사단의 속임수에서도 이길 수 있도록 하십니다. 내가 이기는 것 같으나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안 후 마지막에 될 일을 감당하면서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 아실 것을 믿으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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