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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4:32-36
강설날짜 2017-12-03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iC_Z_gmFB28

무화과나무에게서 비유를 배워라(마24:32-3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님의 재림의 때와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신 후 마24:23-31절에서는 “마지막 시대의 환난과 고난은 택함을 받은 자도” 당한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이미 “마지막 시대의 환난과 고난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알지만 택함을 받은 백성도 당한다고 할 때는 힘들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권면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지난 주일에 강설로 들었습니다. 환난과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당신님의 백성을 통해서 복음이 강력하게 “남은 자”를 위해서 증거 될 것입니다. 그것도 은밀하게 마치 누룩이 퍼지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증거 될 것임을 바라보는 지팡이교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권면의 말씀은 힘이 됩니다.

 

누룩처럼 복음의 증인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의 제일 된 목적으로 삶의 예배를 드려도 마귀는 택함을 받은 백성도 미혹을 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유혹을 하는지 기억하십니까?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미리 경고하는 것은 당신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고자 하는 은혜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처럼 사역을 하지만 미혹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유혹을 해도 넘어지기 쉬운데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지팡이교회는 사기꾼에게 또한 사탄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을 통하여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당부의 권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더 권면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고 하심으로 내가 너희를 이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면은 진심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오십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고 하심으로 심판이 무르익은 상황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재림의 징조 즉 마지막에 될 일을 말씀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면 땅의 질서들이 무너지는 혼란과 재난에 이어 하늘의 권능과 질서들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로 인하여 두려움과 떨림과 고통으로 모든 족속이 통곡하여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두려움과 떨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인 우리에게는 어떠한 일들이 있겠습니까?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이 통곡하는 가운데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나팔소리라고 하는 것은 유대교에서 종말 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즉각적으로 알아듣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안전하고 참된 구원의 면류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참된 신앙으로 주의 길을 잘 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아마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무화과나무에 대한 비유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트나 백화점에서도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사용하여 비유로 말씀하심으로 마지막 때의 징조를 좀 더 깊이 있고 분명하게 드러내시어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의 징조를 알기 위해서 어디에 가서 배우라고 하십니까? 골방입니까? 광야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 알 수 있는 무화과나무입니다. 32절을 보시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고 하심으로 무화과나무를 바라보면 그 나무가 늦은 봄에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알리는 징조로 잎사귀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나무들은 대체적으로 푸른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잎이 나고 열매가 자라는 형상은 분명함으로 예수님께서는 계절의 변화에 대한 적절한 예로 드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무화과나무는 심판에 대한 주제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은 무화과나무 하면 심판으로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마지막에 대한 징조로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시면서 가짜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고, 난리와 난리 소문,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기근과 지진이라고 하시면서 이것들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실족하여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며 불법이 성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도 미혹하고자 하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표적과 기사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속인다고 했습니다. 이런 징조들을 이야기 하시기 위해서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서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리는 것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화과나무의 변화에 따라서 계절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하심으로 단순히 징조에 대한 이야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심으로 비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유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시78:1-2절에서 비유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당신님의 백성을 통해서 당신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이적 즉 모든 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어 알리는 수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즉 오랜 세월에 흐르고 있는 역사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경륜을 드러내어 알리는 기능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세상의 종말 즉 심판이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의 징조를 통해서 세상의 종말을 알고자 했습니다. 제자들과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여러 가지로 말씀하여 주셨고 오늘은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좀 더 깊이 있고 분명하게 비유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인 경륜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비유가 갖는 깊은 뜻과 기능을 염두에 두고 계시면서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단순히 무화가나무의 잎사귀 변화에 대한 관심을 넘어선 하나님의 경륜의 교훈을 알라는 의도로 보아야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믿음이 자라고 성숙해지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33절에서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심으로 마24:4-31절에 대한 세상의 종말의 시작과 심판에 대한 교훈을 듣고 명심하라는 정리로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던 중 여러 가지의 미혹에 빠져서 벧후3:4,9절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인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전15:12절은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찡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나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환난과 고난을 당해도 주의 재림은 다가오지 않는 것 같고 더욱 고통은 나를 번뇌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옥한음 목사님은 “고통에는 뜻이 있다”라고 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한 숨만 쉴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지팡이교회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힘을 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권면 하시고 당부하신 마음을 아셔야 합니다. 마치 아들에게 “차 조심하라”는 의미에는 부모의 사랑과 권면 그리고 진심어린 당부가 있는 것처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34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고 보중하신 선언은 “이 세대가 다가 기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징조가 모두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대’라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로 당시 예수님이 생활했던 시대와 신약의 전시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지로 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35절에서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심으로 당신님의 말씀이 신실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지 즉 하늘과 땅보다도 더 높으신 신적인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의 재림을 알 수 없습니다. 재림이 멀다고 그리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면서 여유롭고 한가하게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지 마십시오. 이런 마음은 사단에 속한 자들에게 쉽게 미혹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36절에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들으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마도 당신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자신들 마음대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 날은 아버지이신 하나님만 아신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이신데 어떻게 재림의 날을 모를 수 있는 것인가? 예수님은 신이면서도 성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신성으로는 알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인성으로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과 그 시간’ 을 뜻하는 것은 예수님의 결정적인 재림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날과 그시간은 하늘의 천사도 모르며,심지어마지막 날에 재림을 성부 하나님만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다시 재림의 때를 묻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행1:7절에서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하심으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주의 재림이 가깝다는 것을 계속하여 말씀하면서 인내를 하도록 당부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날에 대해서는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주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복음의 증인자로서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노출시켜야 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환난과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강력한 확신은 구원의 면류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사람들과 구별된 제자입니다. 재림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징조를 생각하면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경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험난한 세상에서 마귀의 미혹이 가득한 삶의 전투에서 마음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무장한 군인과 같습니다. 전신갑주를 입은 군인처럼 말씀으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주 안에서 한 공동체인 지팡이교회 성도님,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주의 재림은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통곡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사용하여 고백하는 것처럼 죽음은 오히려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원한 구원의 생명인데 두려움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날은 알 수 없지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일델베르크 요리문답 제52문에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은 당신에게 어떠한 위로를 줍니까?“ 답은 “내가 어떠한 슬픔과 핍박을 당하더라도, 전에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시 사 내게 임한 모든 저주를 제거하신 바로 그분이(당신님이) 심판자로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머리 들어 기다립니다. 그가 그의 모든 원수들, 곧 나의 원수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형벌하실 것이며, 나는 그의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늘의 기쁨과 영광 가운데 그에게로 이끌어 들이실 것입니다.” 심판의 주는 성도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시대를 생활하는 성도를 위해서 이렇게 권면을 하십니다. 고전7:29-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는 말씀은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장차 있을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때 있을 심판을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죄를 버리고 하루하루를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당신님의 백성에게 말씀하신 이유를 생각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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