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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10:1-16
강설날짜 2019-01-27

이방인 선교의 문이 열리도록 고넬료를 준비하신 하나님(행10:1-16)

 

첫 시작을 벧전2:9절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왜 이런 글을 쓰는 것입니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 중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향해서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거룩한 교회를 향해 신분적 특권을 열거하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로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얻어진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신분이 상승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사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특별히 목사님만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당연히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의 교회에는 특별한 계급과 신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즉 ‘봉사직’입니다.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모든 직분은 ‘섬김의 봉사직’이었습니다. 사도이든, 스데반이든, 장로이든 누구든지 섬김의 사역이었습니다. 비록 소명의식이 부족했지만 그들을 같은 성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섬기어 주신 것처럼 먼저 믿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섬김으로 같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섬긴 것입니다. 또한 신약성경은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매개하는 특별한 신분의 제사장을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날 어떤 목회자는 목사만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입니다. 제사장이기에 세습이 정당하다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참고로 모든 세습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을 다 알지 못하면서도 예수님의 제자하면 사도 베드로를 생각할 것입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교제를 한 후 누가는 갑작스럽게 베드로의 사역을 기록합니다.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에서 행한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소망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몸도 돌보지 못하면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룻다에서 신앙 생활하는 신자들을 위해 베드로가 심방하던 중 중풍으로 8년 동안 누워있던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가 병을 고친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을 차분하게 읽어보십시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요 구원을 알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룻다에서 일어난 기적의 사건을 욥바의 신자들이 안 것입니다. 선행과 구제의 일을 잘 하던 여제자인 “도르가”가 병들어 죽으매 신자들은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오기를 요청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도착하자마자 신자들은 다락방에 같이 올라가서 도르가가 구제와 선행을 위해 만들었던 속옷과 겉옷을 보였던 것입니다. 도르가에 대한 짧지만 간절한 소망의 믿음대로 베드로는 신자들을 다락에서 내보내고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한 것입니다. 실제로 다비다는 눈을 떠 베드로를 보면서 일어나 앉는 것입니다. 세상의 의학과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룻다와 욥바에서 일어난 기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베드로의 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한 야망이 아니었습니다. 지극정성이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도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사역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자신의 야망과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늘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가운데서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 오직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본향을 향해 사역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는 지팡이교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본문을 통해 은혜의 강설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지역에서 사역을 하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간섭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행1:8절을 통해 “성령이 임하시면”이라고 하시면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고 하심으로 이방 사역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던 중 스데반의 순교로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 지역인 룻다와 욥바에서 기적의 사건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친히 간섭하심으로 이방인 선교에 대한 실제적인 문을 열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제 구시는 오후 3시로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아니라 고넬료라는 사람입니다. 고넬료에 대해서는 1-2절을 보시면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고넬료가 누구인가를 구체적으로 기록을 한 것입니다. 고넬료의 신분과 인격 그리고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경한한 자라면 유대인이었습니까? 우리와 같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가이샤라에 주둔한 로마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러면서도 구제하는 일과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단지 누가만 칭찬만을 한 것이 아니라 22절을 보시면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고 누가 증언하는 것입니까?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 온 족속’이 자랑하는 것입니다. 로마군인은 원수 중에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넬료가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환상 중에 나타난 것입니다. 고넬료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두려움이었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4-5절을 보십시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 제 구시에 기도하던 중입니다. 환상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기 때문에 주목하면서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환상을 통해 고넬료는 용기를 얻으며 소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베드로를 부르시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을 통해 이방인 전도가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을 만나 이방인 사역이 중요한 것을 알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고넬료를 통해 유대인의 관념을(선민주의) 무너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것입니다. 가이샤라는 욥바로부터 55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를 생각하면 먼 지역이기도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골1:25절에서 이렇게 기록을 합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함으로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이 성취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베드로가 자신의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지팡이교회에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고넬료가 환상 중에 있을 때에 베드로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6절은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를 청하기 위해서 고넬료는 주춤하지 않고 그 즉시 무엇을 합니까? 7-8절을 보시면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욥바에 있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머무는 이방인 집은 부정한 집이었습니다. 왜 부정한 집입니까? 짐승의 가죽을 다루었기 때문에 유대법에 의하여 부정한 것과 접촉한 것이 되어 부정한 자로 취급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무두장이와 고넬료를 통해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방인의 사역에 대한 예루살렘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여튼 고넬료는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시의 중대성을 깨닫고 베드로를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베드로에게 보낸 것입니다. 하인 둘은 베드로를 섬기기 위함이요 군인 한 명은 베드로를 보호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하인과 부하인 경건한 사람이 오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욥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9절을 보시면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입니다. 무두장이의 집은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나 계단이 있는 형태였습니다. 베드로는 지붕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기도였지만, 유대인들이 관습대로 기도하는 시간이 아닌 ‘제 육시’였습니다.(고넬료는 관습대로 제 9시를 생각하면 대조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건한 유대인들은 시간 외에 많이 기도한 것을 시55:17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고넬료처럼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 10절을 보시면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본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떤 이유로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기도하던 중이기에 몹시 시장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중에 황홀경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비몽사몽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 즉 환상을 본 것입니다. 가장 거룩한 계시가 아이러니하게도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철학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고 있는 아이러니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까? 환상의 내용과 그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 밝혀지면서 아이러니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본 것입니까? 11절은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본 것은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본 것입니다. 원문을 좀 더 생각해서 보면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을 때 이미 하늘이 열려 있었다는 것이고, 하늘 문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11절과 같은 표현은 신약에서 하늘이 열리는 신비로운 모습을 묘사할 때 여러 번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렸으며(마3:16),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향하여 히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사용되었습니다(요1:51). 베드로가 본 환상은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운 것입니다. 그러면 보자기 안에 무엇이 있다고 12절에서 말씀 하십니까?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그 안에는 모든(우리 말로는 ‘각색’으로 번역)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부정한 짐승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정경한 짐승과 새들도 있었습니다. 그릇에 담겨 있는 부정한 짐승들은 유대인의 기준으로 볼 때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이방인들을 상징 하는 것입니다.

 

시장기가 있는 베드로에게 13절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는 것입니다. 잡아 먹어라는 것을 들었을 때 베드로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본 짐승이 부정한 것이기 14절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는 것입니다. 어찌 베드로가 이럴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도 자신이 고백하기를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먹지 아니하는 것은 부정한 짐승입니다. 그런데 먹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환상으로 보았는데 ‘나’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강한 부정을 합니다. 그러자 어떻게 하십니까? 15절을 보시면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식은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사람의 배로 들어가 뒤로 나오게 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막7:19) 마가는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정결법을 예수님께서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음식 문제는 복음 전도를 위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자유로움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베드로도 알 수 있도록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여 주셨음에도 베드로는 어떻게 합니까? 16절을 보시면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이런 일이 세 번이나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시다고 하는 가운데 베드로는 내가 왜라고 하면서 세 번이나 먹으라고 하는데 거부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시장하기 때문에 더욱 먹어야 하지만 부정한 짐승을 먹지 아니하겠다고 창조주에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반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기 때문에 베드로야 빨리 먹으세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방인을 위한 선교 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건이 가져온 이와 같은 부정한 짐승에 대한 폐지는 이방인을 위한 문을 열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세 번 반복하는 것은 마치 두세 사람이 법적 증거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법적인 효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 즉시 의미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고넬료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의 선교의 문을 열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인 베드로를 통해 유대인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식탁의 교제를 하지 않으면 친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사귐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음식을 정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방인과 함께 교제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된 성도님,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몸인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복음으로 초청하심에 있어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편애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방인 선교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고넬료를 준비하심으로 베드로가 알 수 있도록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나라를 위해 그리고 백성을 택하실 때 아무런 조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부르십니다. 고넬료만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그 전에도 룻다와 욥바에서 애니아와 도르가를 준비하시기도 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후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선교가 열릴 수 있도록 베드로를 통해 모든 음식이 정결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중심에 고넬료를 준비하신 것은 마치 신의 한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또한 황제를 신으로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황제만을 유일한 통치자로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백부장이 황제가 아닌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자신의 생명의 주인으로서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과 원수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일반적인 교제를 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신을 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결혼을 금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유대주의 우월감과 선민의식을 내세우면서부터 이방인은 구원은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대인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를 바랐지만 오해를 한 것입니다. 이것을 허물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낸 것이고, 또한 사도들과 사울 등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특히 사도 베드로의 선민의식 즉 음식 정결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지만 행10장에 결국 알도록 하십니다. 고넬료 즉 이방인의 집에서 강설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섭리 가운데 이방인도 유대인과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방인 선교의 문이 열리도록 고넬료를 준비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를 고넬료만 받은 것이 아니라 지팡이교회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하고 기도하는 일을 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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