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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2:1-8
강설날짜 2022-02-20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aJzO_wZN2oY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12:1-8)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코로나는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확인하며 손을 자주 씻으면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죄는 바이러스보다 파급력이 막강합니다. 죄에 노출된 후 내버려 두면 사망률은 백 퍼센트입니다. 코로나는 두려워하면서 죄는 왜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그냥 둘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죄의 길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에 승리하신 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누구인가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헌신한 성도입니다.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인도하심을 받으며 주의 길을 가는 지팡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을 듣고 회심한 성도는 삼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생활합니다. 복음을 들은 성도는 십자가를 지며 복음의 씨앗이 심어질 수 있도록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 복음이 확장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인생에서 보상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물질을 많이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맞다면 부자 청년은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에 갔을 것입니다.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예배를 하라입니다. 순종의 길을 가라입니다. 진정한 순종의 삶의 예배를 하는 성도는 코로나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님을 따르는 길만이 영생의 길이요 진리의 길입니다. 구원은 보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며 주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라는 간구 속에 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죄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코로나는 두려워하면서 왜 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왜 교회를 떠나십니까? 이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십시오. 그 길만이 참된 길이요 영생의 길입니다.

 

지난주 강설은 마11:25-30절 말씀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초청과 감사”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에게 전하는 삶을 생활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섭리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하는 마음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한 믿음으로 주를 믿는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도록 하시고 나를 복되게 다스리심으로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성도는 사귐의 교제를 하며 거룩한 공교회가 될 수 있도록 주님만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을 알도록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의 말을 듣는 것처럼 몸과 영혼을 구원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지칭하여 하나님을 계시하여 알리시는 분이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안식의 주인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십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앎으로 우리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죄에서 벗어남으로 자유로운 몸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주심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죄로 타락한 자들은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타락한 자들은 어떻게 하면 영생을 누릴까? 어떻게 하면 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몸과 영혼의 부활을 믿으며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감사의 생활을 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마음으로 쉴 수 있습니다. 나의 멍에는 “공수레공수거”이지만, 주님의 멍에는 영원한 안식의 구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함으로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주 말씀에 이어 오늘 말씀은 안식에 대한 참된 의미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12:1-8절 말씀을 사용하여 “인자는 안식일에 주인이니라”는 강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은혜를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안식일 논쟁을 벌이면서 갈등을 일으킵니다. 이런 과정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시면서 당신님의 정체성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마태는 오늘 말씀 첫 시작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1절을 보시면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입니다. 첫 시작을 “그 때에”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그때에라는 말을 사용하여 앞의 맥락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기록한 “그때”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이날을 기념할 것과 쉴 것을 동시에 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했던 이유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시고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약의 열 가지 말씀”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행동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던 길이었습니다. 하필 그때 제자들은 시장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안식일에 마을에 들어갈 때 밭을 우회하여 가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안식일의 참뜻이 희미해지면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법으로 지키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신23:24-25절을 보아야 합니다.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배고픈 것을 면하기 위해 남의 포도원 또는 곡식 밭에 들어가서 포도를 따거나 손으로 이삭을 잘라서 먹는 것은 허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배고픈 자와 나그네들이 시장할 때 이삭을 따 먹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에 했다면 이렇게 공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기 때문에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는 행동을 보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노동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2절을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것이 바른 생각입니까? 바리새인들은 그동안 예수님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공격하기 좋은 것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당신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일한 것이 바른 것인가?라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제자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그들의 선생님에게 있다고 생각했기에 더 공격하기 좋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의 의미를 어겼다고 비난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안식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합당하게 지키는 것이 어떤 것이며 안식일 계명의 참뜻이 무엇인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행위는 유대법이라고 하는 할라카에 안식일에 금지된 39가지의 일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은 “언약의 열 가지 말씀” 즉 십계명을 지키어야 구원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613개의 율법 조항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행위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게 하려고 만들었겠지만 결국, 이런 것들은 올가미로 변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율법은 구원받기 위해 사용되는 점검표가 아닙니다. 오늘날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해야 하는가? 정규 예배에 잘 참여해야 하는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힘썼는가? 얼핏 생각하면 좋은 것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구원은 선한 행동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단지 구원의 선물을 받은 백성이기에 감사만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성도의 교제를 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 왕을 예로 인용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하심으로 다시 역질문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선생이라고 하는 자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고 돌이켜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 왕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사건을 잘 알기에 이해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성전에 들어가 아히멜렉에게 진설병을 달라고 하여 자기의 부하들과 나누어 먹었던 이야기입니다. 진설병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만이 구별된 거룩한 떡인 진설병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다윗을 벌한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다윗이 먹었던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 굶주림이라는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안식일이라도 허락된다”입니다. 생명의 위협이 있다면 허용된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할라카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만을 예외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정당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제자들도 정당하다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알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다른 예를 드셨습니다. 5절을 보시면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일함으로써 안식일 규정을 범하여도 그들에게 죄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율법 조항입니다. 민28:9-10절은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 즉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대한 예외로 주신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죄가 없습니다. 제사장은 안식일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노동하지 아니하며 휴식하는 것인데 제사장은 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특별한 목적과 성격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일함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사장입니까? 제사장이 아닌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것과 연결성이 있는가?입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 행위는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속 사역과 복음 전파를 돕는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과 함께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안식일을 위한 외적이고 통속적인 규례를 철폐하시고 새로운 규례를 알려주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5절 말씀의 의미를 더 확증하시기 위해 6절에서 당신님을 누구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와 성전의 완성자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바리새인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과 동행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제자들은 수종을 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하심으로 안식일 법보다 성전법이 더 우선이듯이 성전법보다 더 큰 이가 당신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제자들은 무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잘 알고 있는 호세아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7절을 보시면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원치 아니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함으로 율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십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말한 호6:6절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문자로만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르게 알라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유대인들의 무지와 위선을 말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의 무지와 위선을 말씀하셨습니다. 외형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은 무지와 위선입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지식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어리석은 것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형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예배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원하는 예배가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는 엎드려 절하며 하나님의 인애를 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종교지도자들은 참된 안식의 의미를 잘못 이해함으로 사람들에게 과중한 종교의 의무를 지움으로써 안식일을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이 생각하는 의무와 멍에에서 벗어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이제는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8절을 보시면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구약의 말씀을 온전하게 알았다면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방인의 손을 빌리어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습니다. 이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안식일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막2:27-28절에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에서 언어유희를 사용하여 인자에 대해 이중적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와 당신님을 동시에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신적인 권위와 동시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사랑의 정신이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자비와 긍휼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에게 안식을 제공할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참뜻은 모든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쉼을 얻는 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하며 쉼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안식을 아무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누리게 하시려는 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로운 우리에게 모든 짐과 얽매임에서 벗어나 복되고 거룩한 안식을 누리게 하시는 당신님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의미는 메시야이시며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법보다 더 큰 권위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세상의 멍에를 내려놓고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복음을 전함으로 세상 사람이 구원받고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님,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행하신 일은 안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신 후 제7일을 복되고 거룩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안식일의 시작과 출발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범죄로 인해 저주와 죽음이 들어오게 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죄의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안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뜻은 “안식” 즉 휴식입니다. 노아를 통해 하나님을 알리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홍수 후에도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영광을 위하여 거대한 도시를 만들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흩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통하여 큰 나라를 세우고 땅의 모든 족속으로 복받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부르신 후 연단하여 경건한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언약의 열 가지 말씀”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계명 중에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이 계명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모든 일이 안식과 관계된 것임을 알리신 표입니다. 죄로 파괴된 안식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는 다는 것은 영원한 안식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영원한 안식을 베풀어 누리게 하실 뜻을 밝히셨습니다. 그리하여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며 멸망을 전하였습니다. 임박한 멸망을 전하면서도 한결같이 전한 말씀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늘 한결같이 안식에 대한 것을 전달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논쟁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리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식일의 참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도록 하심으로 당신님께서 베푸시는 복되고 성결한 안식을 누리게 하리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안식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며 주의 길을 가는 사명자임을 믿으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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