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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1:9-11
강설날짜 2018-05-06

오늘은 주일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고 복을 받은 성도요 주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증인자로서 주의 길을 잘 가십시오. 지난 주일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강설을 통해 장성한 분량으로 든든해지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이 땅에서 40일 동안 계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심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 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공생애 동안 하나님 나라를 비유와 해석 그리고 삶으로 보여 주셨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여 주었지만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셨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성령이 오심으로 세례를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은 그 동안 자신들이 기다리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 때라고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한 번만 질문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은 반복하여 질문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질문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스라엘의 회복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성령이 온다는 것은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그토록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가르치셨지만 오해를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되어야 마지막 날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생애 동안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지만 왜 성령이 와야 하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제자들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해와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이 아닌 전적으로 성령의 임재로 하나님 나라의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아니면 무엇이 은혜입니까? 제자들에게 성령이 와야 하는지 예수님께서는 아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 자가 될 수 있도록 제자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즉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임을 알고 모이는 교회요 흩어지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지팡이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인 성도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은 전도와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마28:19-20절 말씀과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행1:8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사명 즉 복음의 증인 자로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표현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어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이제는 제자들에게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최종적으로 위임한 말씀입니다. 지상대명령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해야 하는 군인과 같은 임무입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심이 있었지만 성령의 임재 후에는 예루살렘으로 시작하여 온 유대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임재하면 세상이 생각하는 행복 그리고 복이 아닌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를 보아도 신약의 사도와 복음 증인 자를 보아도 어떠합니까?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실 때 당하신 고난에 우리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치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교회의 사명을 정확하게 말씀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나아갈 길을 인도하시고 능력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시면 성령의 강림은 하늘로부터 수직적으로 오심으로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교회요 성도인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이 오신 후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에게 그리고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 자로 섬길 수 있도록 하십니다. 복음의 증인자인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성령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지 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노력과 의지와 수고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당신님의 죽음까지도 하나님께 맡기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울면서 기도해 보았으면 합니다. 눈물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나의 마음을 감찰하여 주시면서 함께 동행 하여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지난 주 우리는 성령이 임한 후 어떻게 복음의 사역을 감당합니까?라는 강설을 들었습니다. 기억을 다시 떠 올려 보십시오. 때리면 맞고, 가두면 갇히고, 돌로 치면 맞았습니다. 베드로, 바울, 스데반 등을 잘 아실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님의 오심은 복음서마다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승천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둘 다 누가가 저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비록 간략할지라도, 예수님의 승천 즉 하늘로 올라가심은 역사적이고 실제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승천은 사도들이 해야 할 과제를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동시에 당신님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과 다시 오실 것을 강조하심으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비밀리에 이루어지지 않고 공개적으로 제자들이 볼 수 있게 이루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보지 못하였으나 승천과 성령이 오심으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즉 공개적인 역사적 사건입니다. ‘올려져 가시니’라는 말씀은 “위로 취하여졌다. 끌어 올리였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즉 하나님의 힘에 의해 위로 끌어올려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은 만유를 다스리는 권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하늘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지상 사역의 마무리이시며 하나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서 사역을 하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내어 주시기로 한 성령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제자들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종교는 스스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는데 거듭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병행본문인 눅24:51-53절을 보시면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하십니다. 지팡이교회도 제자들처럼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삶이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삶의 예배에서 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도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 그 때마다 주님이 가신 길을 생각하면서 찬송하는 삶이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참한 현실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서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새 시대의 서막을 알려 주셨습니다. 지상 사역에서는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감당하셨지만, 승천하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제자들이 “지상대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름으로 가리어 보이지 아니할 때 제자들은 무엇을 보고 있었습니까? 10절을 보시면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자세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흰 옷 입은 두 사람 즉 천사로 제자들의 시선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흰 옷 입은 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영광의 광채가 너무나도 찬란하여 마치 흰 옷을 입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서 여인들에게 나타나 이야기 한 것이 중요했듯이 여기서도 두 사람(천사)의 진술도 중요합니다. 천사인 흰 옷 입은 두 사람은 제자들이 승천을 본 그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확인하여 주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시면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심으로 승천하신 그대로 재림하실 것이란 의미입니다. 흰 옷 입은 두 사람은 ‘어찌하여’하는 말을 사용하여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름으로 인하여 제자들의 이적 현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그들에게 사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유혹에도 넘어가지 말하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그대로 재림하여 온다는 것은 하늘에서 직접 강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는 것은 모두 가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처음으로 오실 때처럼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그들 중 누구도 재림의 주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넘어가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초자연적이고 공개적이며 범세계적인 역사적인 재림으로 오십니다. 비공개적이고 비밀리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예수님의 재림은 어느 곳에서든 모든 사람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일은 당신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재림의 주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서 “지상대명령”을 삶의 예배로서 그 어디나 하늘나라를 전하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잘 알고 있는 계22:20절을 보십시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시자,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즉 ‘네 오십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고 어린 아이와 같이 ‘네’라고 한 것입니다. 빨리 오세요. 반드시 오세요. 등으로 말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복음의 증인자로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나의 일을 하지 아니하면서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세히 기록 하고 있지 않지만 살전4-5장을 읽어 보시면, 재림에 관해 보다 세밀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재림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것이고,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자 역할”을 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육체는 영화롭게 되신 몸으로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중보자로 감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육체를 가지고 승천 하셨다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으로 타락한 인간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를 다 알 수 없지만, 부활하셔서 영화롭게 되신 육체를 가지고 하늘의 영역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인간의 이해로는 어려운 사실입니다.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분으로 계시다가 인성과 신성을 가지고 다시 오십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다는 천사의 선언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할지라도 당신님께서는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분으로 여전히 사역을 행하고 계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구름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지상대명령”을 감당하는 참된 제자가 된 것입니다.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고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과연 ‘고난 없는 영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알고 있는 제자들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흔들리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우리도 주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면 흔들리지 아니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요 성도인 신자들은 마지막 날에 주의 재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서 아무 흠 없는 신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임함으로 사도들은 자신들의 사역을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내 안에 머무는 구원’이 아니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교회도 나의 삶에서 인간의 제일 된 목적을 위해 신앙 생활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히 당신님을 즐거워하는 것‘임을 아시기를 바라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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