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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3:51-58
강설날짜 2016-10-23
동영상 링크 http://<iframe width="640" ...iframe>

오늘 강설의 제목처럼 비유들의 결론입니다. 비유의 결론을 알기 위해서 51-52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배경은 어디입니까? 집안입니다. 보화의 배경은 밭이고, 진주는 상업, 그물은 어업입니다. 왜 예수님은 배경을 집안으로 하신 것일까? 답은 먼저 말씀 드리면 비유를 듣는 사람은 제자들입니다. 비유를 깨달은 제자들은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집안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들으면서 두 번이나 예수님에게 질문을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10절에서는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36절에서는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51절에서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라고 확인하여 보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의 비유를 가르치심으로 혼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이해를 했는가를 확인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때 제자들은 대답은 분명하게 “그러하오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비유를 통하여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은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도 마13장을 통하여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까?’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삶이 예배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삼위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제자들은 분명하게 예수님에게 ‘그러하오이다’라고 했으면 더 이상 가르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까지 말씀하여 오신 내용과 너무 동떨어진 가르침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52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하시는 것입니다. 앞의 비유처럼 해석을 해 주면 더 이해하기 쉬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석이 없습니다. 좀 어려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 예수님은 서기관을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서기관을 누구를 말하는가? 지팡이교회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서기관하면 율법을 필사하기도 하고, 전문적으로 율법을 연구도 하면서 가르치기 때문에 율법에 능통한 선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기관하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서기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맥을 통해서 이해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기관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은 제자들은 새로운 서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서기관인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바르게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가르치기 위해서 예수님은 ‘새것과 옛것’이라고 하심으로 영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의 예를 빌려와서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성도님에게도 적용을 해야겠지만 저는 목회자들에게 먼저 적용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옛것과 새것’으로 구약과 신약 성경을 모두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자는 지속적으로 옛날의 보화와 새로운 보화를 모두 열어내보임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의 사역자로 섬기는 목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공급하는 분들입니다. 영의 양식이 풍부한 곳간인 성경을 통해서 전해야 합니다. 영의 양식이 부족하지 아니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도 영의 양식을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갓난아이처럼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늘 성경을 읽고 듣고 배움으로 영의 양식의 공급을 받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기관처럼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 율법을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많은 말씀을 드리지 아니해도 이해했을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답변을 들으신 후에 마태는 의미심장한 사건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비유를 전하신 후 고향으로 돌아가셨을 때의 사건이라는 것을 53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예수님은 고향으로 가신 후에도 가르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직접 보고 들었으면 메시야로 영접을 해야 하지만, 배척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고향으로부터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선입관으로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54절을 보시면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고향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성장을 잘 알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는 것이고 능력에 대해서 출처가 어딘지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곳저곳에서 55-56절을 보시면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55절과 56절을 읽어 보았습니다.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예수님은 아주 가난한 그리고 평범한 서민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 자주 등장하는 정유라의 말처럼 “우리 아버지가 박 대통령의 보좌관”,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 '있는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지'등의 막말을 하는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혜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침을 오해하여 이적 그리고 기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기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지혜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해를 하여 가르침보다 이적과 기적 등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오해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오해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 못한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릴 적부터 보았고, 함께 대화도 했기 때문에 더 체험적이고 우리보다 어쩌면 더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고향 사람들의 말은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더 가까이 지내고 육체적인 친밀감이 있는 것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방해가 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육체적인 한계를 넘지 못한 것입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오히려 구원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과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다시 저녁이 되어도 끝장 토론을 해야 하지만 배척을 한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가족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조롱을 합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가부장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기 보다는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예수님이 어릴 때 아버지인 요셉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하지만 근거는 약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는 것은 출생의 비밀을 알기 때문에 조롱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에 잉태되신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은 출생의 비밀을 모호하게 말하기 위해서 ‘그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예수님을 몰랐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고 말합니다. 본문은 분명하게 예수님의 형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톨릭은 마리아가 평생 동안 동정녀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촌 동생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톨릭은 성경의 말씀을 무오한 성경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구전을 인정하는 것이고, 교황의 말을 더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성경을 그대로 믿는 분들임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는 목회자가 바르게 가르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이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지 못함으로 예수님을 오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서기관을 통해서 율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방인보다 더 성경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성경과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분명하게 알았다면, 예수님의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서 구원의 길에 동참을 했을 것입니다.

 

57절을 같이 읽었으면 합니다.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예수님을 잘못 알았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론을 맞이 합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자 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확고한 의지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구약의 말씀을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당신님도 선지자들처럼 죽임을 당할 것을 알려 주는 탄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이 배척당하시는 그곳에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돌을 맞으면서도 예수님을 지키고자 할 것입니까? 오늘날의 전반적인 시대를 보면 고향 사람들처럼 배척을 하고 욕을 할 것 같습니다. 지팡이교회는 더욱 든든하게 예수님 붙잡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전진하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58절을 읽어 보시면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십니까? 예수님은 늘 믿음을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 만큼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인 백부장의 간구도 들어주시는데 하물며 고향 사람인 그들에게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참으로 가장 비극적인 현실이 오늘 본문인 것입니다. 마치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처럼(14-15절)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을 성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은 성도입니다. 비밀을 알기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제자된 서기관’으로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듯이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질 수 있도록 믿음을 계속 소유할 수 있도록 늘 성경의 가르침을 알기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지는 것이고,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말씀을 지적으로만 알고자 합니다. 단지 지적으로만 안다는 것은 결국 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고도 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했을 때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것을 거절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것을 인간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교만한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히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의 가르침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지팡이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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