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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2016.11.06 07:59

세례 요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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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4:1-12
강설날짜 2016-10-30

마태복음 13장을 요약 하면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하여 확장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비유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의 주로 오실 때까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도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 지고 있는 가운데 지팡이교회는 신앙의 본분을 다하면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 모든 소유를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에 보화를 발견한 것 같고, 진주를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서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배척을 당하신 후, 고향 사람들에게도 배척을 당하십니다. 마지막으로는 십자가를 지시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배척을 당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더 사랑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까지 배척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합니다. 그럼에도 온누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의 소원을 가지고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당신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의 길을 감사하게 생각 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잘 듣고 장성한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부터 마14-17장은 대체적으로 마가복음의 이야기와 거의 흐름이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갈릴리 지역 중심으로 복음의 사역을 하셨고, 그 이후에는 더 넓은 지역으로 사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인 나사렛으로부터 배척을 당하실 때, 헤롯 왕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1절을 보시면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헤롯 왕은 헤롯 안티파스로 아버지인 헤롯 대왕의 부인들 중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이스라엘의 다스리는 분봉 왕으로 임명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병행본문인 마6:14-29절과 누9:7-9절의 말씀을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열 두 제자들이 파송을 받으면서 활동을 아는 것을 알게 된 헤롯 왕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까?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다시 환생을 해서 능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헤롯 왕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폭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인 헤롯 대왕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마카비 가문의 미리암을 아내로 맞이한 후, 그 가문의 인물들을 제거해 가면서 그 아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죽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헤롯 대왕이 죽으면서 이스라엘은 분봉 왕인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립니다. 그 때에 자신의 동생인 헤롯 빌립의 아내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것을 안 세례 요한으로부터 해롯 안디파스는 부도덕하다고 지적을 당했고, 결국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환생을 해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눅9:9절을 보시면 “이제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하여 저를 보고자 하더라”라고 더 구체적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한 번만 만나기를 찾은 것이아니하 계속하여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만나지 아니하십니다. 실제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알려 주는 눅13:31절을 보시면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라고 할 정도 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먼 훗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할 때 관할 구역이 헤롯이 담당하는 지역이라 헤롯에게 심문하도록 보냅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은 기뻐했습니다. 눅23:8절을 보시면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더라” 헤롯 왕은 종교적인 관심이 아니라 이적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 대한 것을 마태는 다루지 않고 3-4절을 보시면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마태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헤롯의 혼란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 분명하게 자신이 세례 요한을 죽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말씀하여 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소름끼치는 회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마음이 답답하고 찡할 것입니다.

 

분봉 왕인 헤롯은 로마로 여행을 하던 중 이복동생인 헤롯 빌립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 거기서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좋아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헤롯의 본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 체면서 자신의 나라인 나바테아 왕국으로 도망을 하게 됩니다. 그 후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아 버립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세례 요한은 4절에서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고 직언을 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직언은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되’라는 미완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분명하게 언급을 하고,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직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헤롯의 아내가 도망한 나바테아 왕은 자신의 딸을 위해서 갈릴리 지역을 담당하던 분봉 왕 헤롯을 공격을 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은 분위기가 좋지 아니한 상황에서도 헤롯 왕에게 잘못을 회개하라는 하는 것입니다. 헤롯의 입장으로는 세례 요한을 죽이면 폭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감옥에 투옥을 시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고, 자신이 생각을 해도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 한 것 같습니다. 막6:20절에서는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6절을 보시면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라고 한 것을 보면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들으면 자신을 번민하지만 결국은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6-7절을 보시면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생일 잔치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부정한 결혼을 통해서 낳은 딸이 춤을 추겠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이 춤을 추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합니다. 그 때 헤롯은 자신의 딸인 살로메에게 그 어떤 소원이든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입니다. 딸과의 약속은 8절을 보시면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하는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것입니다. 살로메는 자신의 어머니인 헤로디아와 공모하여 준비한 것입니다.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악행 중에 악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를 쟁반에 올려서 자신에게 보여 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헤롯 왕은 자신이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근심을 합니다. 자신이 맹세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딸로 인하여 결국은 9절에서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백성들의 두려움과 세례 요한이 특별한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자신의 잘못된 약속과 증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세례 요한의 목을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감옥에 있는 세례 요한이다 할지라도 유대인들의 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형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을 어기면서 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체면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체면 때문에 세례 요한의 목을 딸인 살로메에게 주게 됩니다. 11절에서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하는 세례 요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요한의 무대는 사라지게 됩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으면 많은 사람들은 복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을 보면 복입니까? 하나님 입장에서 본다면 복이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까? 모든 인생을 바쳐서 하나님을 위한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런 비참한 최후의 모습을 맞이했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오히려 더한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다 할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는 것이 복입니다. 물질적이고 성공적인 것이 아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감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을 알고 있는 그의 제자들은 12절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스승을 잃은 제자들은 모든 소망을 잃었을 것입니다. 스승이 없기 때문에 과연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헤롯에게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기회를 제공한 세례 요한은 계속하여 직언을 했습니다. 그럴 때 헤롯은 세례 요한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을 했고, 자신의 부도덕한 삶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양심의 소리를 듣고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체면을 중요시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은혜가 베풀어지고 있는 오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회개의 기도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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