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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슥1:1-6
강설날짜 2016-11-20

지팡이교회는 마태복음을 강설하여 온지 80주가 넘었습니다. 오늘도 당연히 마15장을 통하여 강설을 할 것으로 생각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보를 보면서 스가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스가랴서를 하십니까? 저에게 질문하십시오. 저는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보면서 외면할 수 없기에 스가랴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외침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는 ‘스가랴 선지자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슥1:1절을 보십시오.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스가랴라는 이름은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이사야가 선포도 하고 예언을 했던 것을 이제는 스가랴가 예언의 성취를 증거 하는 증인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는 이스라엘이 페르시아로부터 포로 생활하던 중 다리오 왕의 시대에 고국의 땅으로 귀환을 했을 때 복음을 전한 선지자입니다. 스가랴는 과거 장엄하고 웅장한 나라가 아닌, 초라하고 볼품도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더 어려운 것은 사회적인 문제였습니다. 포로로 생활을 하다가 귀환한 사람도도 있지만, 이스라엘에 계속 있었던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로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하나님에게 남은 자라고 하면서 종교적인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스가랴는 이런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여러 면에서 절망적인 가운데 다시 ‘하나님께도 돌아가야 한다’고 전한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은 전체 스가랴의 서론으로 ‘회개’라는 주제가 깊숙이 스며들어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회개에 대한 가르침은 회개의 촉구가 강력하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말씀드린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 등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회개를 촉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도 저는 회개로 나아가야만이 해결될 것을 믿습니다. 회개는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웃을 위한 예수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사람이 정결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회개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도 하나의 교회로 유지될 수 있는 길을 회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스가랴서 1:1-6절은 스가랴 1-14장 전체뿐만 아니라 환상을 다루는 전반부의 1-6장의 서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옛 조상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1-2절에서 언급한 뒤, 현 세대를 향해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는 것이 3절입니다. 그런 뒤 4절에서는 옛 선지자들의 회개촉구에 대한 옛 조상들의 불순종을 전하고, 5-6절은 옛 조상들의 심판 그리고 심판을 경험한 그들의 참회적인 고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를 거부하여 결국 심판에 이르고 말았던 옛 조상들의 실패 상을 그 본보기로 제시하면서 현재의 신앙 공동체를 향해 무엇보다도 회개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가랴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스가랴의 메시지를 귀 담아 듣고 회개의 길로 가야합니다.

 

1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스가랴는 구체적인 족보를 소개하면서 이야기함으로 조상들과 옛 선지들을 연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뜻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백성을 기억하면서 다시 당신님에게로 돌아오도록 기다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올 수 있도록 스가랴를 통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회개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2-3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어두운 분위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다는 표현을 하심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회상시킴으로 이스라엘이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들의 조상들과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스가랴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합시다. 이것만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은 경고의 메시지를 스가랴를 통하여 3절에서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무엇입니까?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심으로 당신님의 이름을 세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반복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말씀이 얼마나 강력한 권면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강력하고 엄중하게 전하는 메시지를 우리는 귀로 듣고 마음으로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만군의 여호와란 하나님께서 언약을 신실히 이루어 내실 때에 사용하는 명칭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신실히 이루어내시는 일에 그 어떤 방해세력도 다 물리치시는 용사이신 여호와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 등의 어려움을 당할수록 용사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절 하반절에서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사랑을 확인하여 주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어떤 분들은 이스라엘은 페르시아로부터 귀환하여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데 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일까라고 질문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2절에서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십시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조상의 행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심히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은 제사도 했고 돌아 와서도 성전을 재건을 하는 중에 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할 때 제사와 성전을 지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외적으로만 보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알게 하신 것이 있습니다. 삼상16:7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고 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호세아는 6:6절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심으로 무엇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스가랴를 통해서 보면 회개함으로 아는 것입니다. 외모보다 제사보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중심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회개입니다. 나는 회개의 삶을 생활하고 있습니까? 겉으로만 예배를 하십니까? 무엇이 중요하십니까?

 

오늘 본문 4절에서 등장하는 ‘옛적 선지자들’이란 표현은 오직 스가랴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선포한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 그리고 이사야의 메시지를 연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렘25:5a절에서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고 전한 선지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한 번 회상하게 하심으로 당신님의 백성이 하나님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옛 선지자들이 지적한 조상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위선적인 의식주의, 사회적 불의, 우상숭배, 종교적인 타락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심한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아는 이사야는 사1:10절에서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사6:9절에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하심으로 영적인 귀머거리와 영적인 소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조상의 죄와 옛 선지자의 메시지는 오늘 4절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조상들이 회개를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았던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스가랴는 다시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팡이교회는 5-6절을 보십시오. “5.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6.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무엇인지 들어보십시오. 첫째는 하나님은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조상과 선지자들이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을 향해 옛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그 능력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3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백성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예수님을 신앙으로 고백하면서 오늘도 예배당에 모여서 ‘영과 진리’로 예배합니다. 예배를 한다는 것은 늘 세상으로부터 돌이킴이 있는 것이고, 늘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하면서 세상적인 복 받고자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가랴 시대에도 제사와 성전을 지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늘 회개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죄의 유혹으로부터 넘어질 수 있는 있습니다. 내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늘 다시 회개할 수 있도록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스가랴의 메시지는 조상들의 과거를 회상시켜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함으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과거나 지금이나 늘 회개는 하나님께도 돌아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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