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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8:28-34
강설날짜 2021-09-19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_2jV6NNcUd8

귀신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다(마8:28-34)

 

오늘날에 와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며 어려워하는 개념 중의 하나가 지옥이라는 개념입니다. 성경에서 지옥을 말씀하고 있어서 우리 마음대로 지옥을 없애거나 다른 개념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서 지옥에 관해서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지옥에 관하여 가장 많이 말씀하셨다는 것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지옥에 관하여 당신님께서 말씀하신 것까지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성경을 통해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5:22절을 보시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제에게 노하는 자 그리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 마지막으로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들은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의 죄는 심판받아 마땅한 것임을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을 받게 되신다고 하셨고,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결국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옥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곳입니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여 주신 정도만 알 수 있습니다.

 

지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기에 예수님께서는 마5:29-3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몸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머리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손과 발이 없다면 사람다운 모습을 할 수 없습니다. 신체 중에 일부를 상실해도 지옥에 가는 것보다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지옥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지옥 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불과 유향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옥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 이상 말씀하여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오히려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지옥은 영원한 형벌을 당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지팡이 교회는 지옥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지팡이 교회는 그것을 알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성경의 말씀을 사모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고요하게 잠들어있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는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역해 오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제자들은 기도하며 예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두려워했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잘 알고 있는 제자들은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어가는 것을 보며 죽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운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하고 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심으로 이 세계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다스리시는 분임을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였다면 그들처럼 행동 하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쳐주심으로 당신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바람과 바다를 순종하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가다라 지방에 도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을 보시면 “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 지역에서 이방인 지역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잠시 휴식을 하고자 했던 지역은 가다라였습니다. 그런데 병행 본문인 마가복음(막5:1)과 누가복음(눅8:26)은 가다라가 아닌 거라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있는가 할 때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믿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질문하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때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가다라 지방은 갈릴리 호수에서 대략 5㎞ 거리에 있습니다.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로부터 대략 30㎞ 거리에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서로 다른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래서 학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지역이 아닌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고 같은 명칭을 두고 여러 이름이 함께 공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가다라는 베레아 지역의 수도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거라사를 포함하여 마태는 기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믿음으로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태가 기록하고자 했던 사건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더러운 귀신들린” 자로 기록했습니다. 귀신들린 자들은 무덤 사이에 거주했습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언덕에 무덤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과거로부터 그곳은 무덤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무덤의 모양은 조그마한 방이나 굴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석회암을 이용한 방식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무덤의 모양으로 인해 비바람이 불면 이동하던 중 피하기 좋은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귀신들린 자들이 그곳에 있었기에 사람들은 무서워했습니다. 그들은 몹시 사나워서 그 길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귀신들린 자들은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과 생활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귀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자였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야기해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보이는 세계를 통치하시는 예수님이라면 오늘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순종하게 하시는 분이 당신님이라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귀신들은 광적인 힘을 과시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사역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순종하신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를 건너와 가다라 지방을 다니던 중 무덤을 지나갈 때입니다. 그곳에서 귀신들린 자들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귀신들린 자들 안에 있는 귀신은 소리 질러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귀신이 예수님의 정체를 먼저 알아본 것입니다. 29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입니다. 귀신은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귀신들은 사탄의 요새 중 하나인 영적 세계가 침략과 정복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했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오신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즉각적으로 알아본 것입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기에 자신들이 쫓겨날 위험에 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귀신들은 예수님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입니다. 귀신들은 종말의 때가 오년 자신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종말의 때를 알기에 예수님께 항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무 빨리 오셨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까지 귀신은 한시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귀신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귀신은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게 자신들을 괴롭게 하려고 여기 왔습니까?라고 하며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행 본문인 눅8:30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귀신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귀신은 자신의 이름을 “군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의 이름을 물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귀신보다 더 우위에 있는 분이 당신님 즉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기 때문에 귀신들은 자신의 정체를 말해 주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귀신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영적인 세계의 눈으로는 귀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습니다. 때마침 필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30절을 보시면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고 마태는 기록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많은 돼지였습니다. 마태는 간략하게 많은 돼지 떼라고 했지만, 마가는 약 이천 마리라고 합니다. 하여튼 많은 돼지를 마귀는 본 것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지금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무서웠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예수님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31절을 보시면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돼지 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귀신은 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몸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귀신은 홀로 있는 것보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곳에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물리적인 제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신이 무섭다 할지라도 귀신은 예수님에게 순종해야 하는 타락한 자입니다. 우리가 귀신을 온전하게 알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모두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셨습니다. 그 결과 귀신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32절을 보시면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입니다. 귀신들이 사람의 몸에서 나와 돼지에게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돼지는 비탈로 내리 리며 갈릴리 호수에 들어가서 죽었습니다. 그러면 돼지는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입니까? 사람과 달리 돼지는 판단력이 결여된 무인격체이기 때문에 죽음의 행동을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돼지가 호수에 들어가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심판의 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오실 때 귀신과 마귀는 심판당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건이 일어난 후 어떻게 했습니까? 33절을 보시면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입니다. 자신들이 생활하던 지역으로 빠르게 간 후 이 모든 일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두렵고 떨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돼지가 죽은 것으로 인해 자신들의 처지를 알아달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34절과 연결하여 생각하면 돼지가 죽은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마을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귀신의 정체보다 그들에게는 돼지가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말한 것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보고자 했습니다. 그런 후 그들이 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34절을 보시면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으면 경제적인 손실을 당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가다라 지방에서 떠날 것을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죄로 인해 물질을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물질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관한 관심보다 돼지가 죽은 것처럼 자신들도 피해당할 것이 더 두려웠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손실을 걱정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에 따라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재산에 손해가 오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관한 마음보다 재산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을 떠나줄 것을 예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보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것을 더 좋아합니다.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물질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 시대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마음이나 정신이나 영혼이 물질세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서도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현대는 물질이 몸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물질을 믿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예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이 타락한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 즉 타락하지 아니한 교회를 보호하십니다.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이용해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합니다. 귀신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강한 적의를 드러내었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때도 아닌데 왜 오셨는가?입니다.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며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며 귀신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런데도 귀신은 자신들이 살고자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돼지에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타락한 존재들을 다 무저갱 즉 지옥으로 던져 넣을 것을 알기에 우리를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귀신이라도 예수님에게는 대항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악한 영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악한 영의 위협에서 승리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치하시며 순종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정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시대에도 가다라 지방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의 것을 버려야 할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되는 데 세상의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가다라 사람들처럼 우리도 같은 마음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좋아하면 결국 무저갱으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역을 생각하며 우리는 길과 진리이시며 생명이신 메시야를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힘든 시대에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님만 믿기도 작정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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