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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6:30-34
강설날짜 2021-07-11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JhekAkmzKk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의 명령의 말씀(마6:30-34)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신 것임을 믿으며 그리스도인은 다 같이 신앙 생활합니다. 초대 교회는 주님을 믿는 성도는 주님의 교회를 믿으며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교회사를 잘 알 수 있는 사도행전을 보아도 교회는 주님께서 부르신 백성이었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구원함을 받은 성도였습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것을 알고 있는 초대 교회는 날마다 모이며 서로를 섬기며 통용을 했습니다. 신분이 높든, 낮은 자이든 누구든지 교회 안에 있으면 똑같은 주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로 섬기며 신앙생활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교회사에서도 같은 점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세워질수록 세상의 신분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인정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교회는 신분이 허물어지며 남녀구별이 없는 예배당에 모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교회는 힘든 수난을 잘 감당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초기 교회는 순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교회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로 세워져 갖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오늘날의 교회는 이상한 교회로 변질하여 가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타락했다고 하며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초기 교회는 하나님만을 믿으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에서 큰 예배당이 한국에 많이 있습니다. 큰 예배당만 많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로 한 신자들이 급속도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기업처럼 변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저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보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처세술을 가르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세상에서 부귀영화의 삶을 생활하도록 전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가르쳐야 하는데 유사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을 위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은 회개하고 초대교회와 같은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만 전하며 귀만 즐겁게 했습니다. 진실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는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토저가 말한 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잃어버렸을 때 타락한다.”처럼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 경배하기보다 오히려 세상의 기업처럼 된 것을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 큰 예배당을 자랑하며 많은 사람이 나오는 것을 자랑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기업처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기업처럼 화려한 예배당을 자랑하며 프로그램을 동원해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먼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왜 주님께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우리는 삶에서 먹고 입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들의 백합화와 솔로몬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목숨을 중요시 여기며 보물을 모으고자 합니다. 보물을 좋아하면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땅의 것을 좋아하는 자는 하늘의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그의 나라”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을 좋아할 것인지 그 반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를 알며 하나님만 섬기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목숨을 위해 그의 나라를 구하며 그 의를 추구하며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그의 나라를 구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의 크고 귀중한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 우리는 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통해 나의 신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신분을 알 때 목숨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지팡이 교회는 믿음이 작은 자가 아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마실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아니하며 주의 길을 가는 교회입니다. 이방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견고할 수 있도록 지금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바위와 같은 신앙인이 되기 위해 먼저 30절을 보십시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별로 가치 없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어찌 하나님께서 “생령”으로 창조하신 너희를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들풀은 아궁이에 던져 연료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런 것도 하나님께서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자녀이신 우리를 그냥 두시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지금까지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든 그 시대 사람이든 오늘날 우리든 믿음이 작은 자에서 하나님만 믿는 믿음이 큰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믿음이 큰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장성한 신앙인 즉 믿음이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이방인과 같은 믿음이 아니라 하늘에 신령한 것을 사모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교회인 성도입니다. 이방인이 보물을 좋아하며 땅의 것을 위해 목숨을 걸고 매달리며 집착하지만, 주님의 교회인 우리는 하늘에 소망을 두며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보물을 사랑하는 자는 결국 들풀의 덧없음처럼 영원한 형벌을 당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 믿음이 없는 분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그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들풀을 이용해 사람의 연약함을 이야기하심으로 장성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그의 나라를 구하도록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을 좋아하면 할수록 염려와 근심이 가득할 때가 있습니다. 물질이 많든 적든 염려와 근심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오직 모든 필요를 홀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는 굳건한 신앙인으로 오늘의 불만족스럽고 불공평한 현실을 진실되게 그리고 의롭게 극복하기 위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을 위해 31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먹는 것과 입는 것에 집착하고 그런 일로 염려와 근심하는 자들은 믿음이 작은 자들입니다. 믿음이 작다는 것은 세상의 것을 좋아하며 생존을 위해 집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염려와 근심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필요한 것을 매일매일 구하도록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염려하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그리스도인은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풍족히 채우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6:8절에서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통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를 위해 32절에서 염려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2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존재를 믿지 않는 자들은 이방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자신의 생존을 염려하며 생활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성도는 견고해진 믿음으로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않는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서 생활하며 감사하는 백성입니다. 죄의 저주로 말미암아 수고로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괴로움을 감당하며 족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알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크나큰 사랑으로 당신님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염려하지 아니하며 신앙생활하는 백성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는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안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것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33절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삶의 고귀한 목적은 먹고 입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의 핵심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33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만 구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까? 33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았으면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를 구하고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그리고 먼저 추구하고 나아갈 것은 먹고 마시며 입을 것을 생각하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물을 쌓으며 행복하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하라’는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을 넘어선 것으로 삶의 생활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희락과 평강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염려와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의와 희락과 평강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죄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신의 영혼을 슬퍼하며 애통하며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며 은혜를 간구하는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백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생활하고자 애통하며 신앙생활 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같은 것을 구하지 아니하며 고귀한 삶의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따르며 주의 길을 가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내적인 갈등이 있어도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의를 간구하는 백성입니다. 은밀한 중에 감찰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와 희락과 평강의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자 하는 교회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을 추구할 때 세상의 것도 덤으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든든한 보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새로운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하늘 나라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다른 신앙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34절 말씀을 통해 내일의 염려로 확장하여 결론을 맺습니다. 3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도 하나님께 속해 있으니 내일 일을 우리가 염려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34절을 잘못 번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일 일을 내일 염려하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은 좀 더 성경에 가까이 번역되었습니다. 내일도 하나님께 속해 있으니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염려하다”라는 헬라어는 미래 능동적 3인칭 단수입니다. 이렇게 3인칭 단수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일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삶이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지키도록 하시기 위한 섭리라는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내일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의 양식을 구하며 구원의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성도는 재물과 권세 즉 이 세상의 보물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세상의 염려와 근심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모든 지혜와 지식을 더하며 노력합니다. 그리고 내일 일도 염려하며 보물을 쌓고자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은혜는 오늘에 족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면 새로운 은혜를 줄 것이니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앙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을 때 이길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삶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고 마시며 입을까?를 고민하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보물을 쌓으며 내일 일을 염려하는 것은 신앙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좁은 길을 걸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는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인 우리를 사랑하시며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아니하며 일요할 양식을 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기에 그의 나라를 구하여 일용할 양식을 매일매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의미를 생각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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