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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8:5-14
강설날짜 2017-03-19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범죄의 심각성(마18:5-14)

 

지팡이교회는 지난주부터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마태복음에서 네 번째의 강설을 듣고 있는 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부터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논쟁을 하기도 하고 침묵을 하기도 했습니다. 침묵을 하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에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3-4절에서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시면서 세상에서 생각하는 큰 자와 으뜸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제자요 성도인 나는 자신을 낮추고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작은 자처럼 섬김만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큰 자처럼 섬겨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교만을 버리는 것입니다. 큰 자가 되고자 하고 으뜸이 되어서 왕처럼 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을 범하는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성도는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으로 섬기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신의 권능이 있었지만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참한 현실에 섬기러 오셨습니다. 섬김을 받은 백성은 그 사랑을 잘 알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과 작은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에서 큰 자이고 으뜸인 백성이 된 모습입니다.

 

오늘은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범죄의 심각성’을 통해서 예수님은 새로운 교훈으로 발전하는 강설을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도 어린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통해 같은 백성인 제자요 성도인 너희는 작은 자를 영접하고 섬기는 대신 그들에게 죄를 짓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천국의 백성은 귀중히 여김을 받고 섬김을 받는 것이지만,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심각성을 알려 주십니다. 6절은 분명하게 전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는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겨야 할 의무가 있지만,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은 범죄가 심각하다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지난주의 말씀을 통해서 들은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니까?”라는 질문을 함으로 제자들은 서로가 자신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으뜸이 되고자 논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높이고자 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자신이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작은 자를 섬겨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자신들이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작은 자를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섬기고자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범죄도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인 5절을 보십시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이 말씀은 부유하고 힘 있는 자를 영접하여 그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높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고 세우고 유익하게 해야 할 의무도 있지만, 그러면서 큰 자가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오만과 교만 그리고 횡포 등을 조심해야 할 의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큰 자이든 작은 자이든 서로가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심으로 당신님의 의도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말씀하심으로 마치 인심이 좋은 집 주인이 손님을 영접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대접하는 의미로서 그 뒤에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당신님이 이 세상에서 섬기시는 모습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손님이든, 친구이든, 어르신이든, 어린 아이든지 관계없이 그들이 ‘나’인(예수님) 것처럼 섬겨라 하는 말씀입니다.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 하나님 나라의 섬김을 잘 드러내는 것이지만, 반대로 실족하게 하고 넘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것이 왜 범죄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그런데 여기서 어린 아이가 누구인가를 드러내십니다. 그 어린이는 바로 예수님을 믿는 백성입니다. 특히 문맥적으로 보면 누구입니까?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라고 하심으로 마태복음에서는 당신님의 제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섬기지 못하면 실족하게 함으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맷돌의 이미지는 같지만 작은 것이 아니라 짐승들이 곡식을 갈 수 있는 정도의 큰 맷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처럼, 맷돌도 형벌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계18:21절을 보시면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바벨론이 연자 맷돌처럼 바다로 던져지는 모습을 이야기하심으로 죄를 범하도록 만드는 것은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연자 맷돌을 사용하심으로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4장에서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와 형제 거리끼게 하지 말라”고 하셨고, 고전8장에서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통해서 자신이 확신하는 어떤 일을 포기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덕을 세우기 위한 일종의 권리라는 본보기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전10장에서는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하시고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허용된 자유라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다른 형제와 자매에게는 합당치 않은 것을 행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한 형제요 한 자매라고 하면서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은 연자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져야 할 만큼 심각한 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연자 맷돌을 말씀하시면서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것은 너희들만의 실족이 아니라 세상에 화를 끼치는 불행도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세상 사람들을 선으로 인도하지 못할지언정, 그들에게 악한 영향을 줌으로 생명의 길이 아닌 불행이 얼마나 심각한지 제자들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고의든 아니든 실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님을 강조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잘 생각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화가 있다’라는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로 세상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개인의 심판을 의미하는 말씀으로 임박한 심판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심각한 실족의 죄를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문자적으로 보면 아주 무섭기도 합니다. 8-9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죄의 결과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것을 신체의 부위로 설명하십니다. 손과 발 그리고 눈입니다. 죄를 범하면 손과 발 그리고 눈을 찍어 내버리라는 것이고, 빼어 버리라는 강력한 이미지로 경고하십니다. 신체의 일부분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나의 구원과 참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손과 발 그리고 눈이라면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끊어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손과 발 그리고 눈을 찍어서 버리라는 것은 정말 그렇게 실행하라는 뜻입니까? 예수님의 의도는 신체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문자적으로 지켜야 할 규정이 아니라 죄를 짓도록 만드는 유혹과 환경을 신속하고 단호하게 제거하라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에게 적용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은 바로 교회라고 보아야 합니다. 18장의 전체적인 문맥을 보면 되십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한 분 한 분 속한 지체 아닙니까? 서로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영적인 삶을 생활하면서 지팡이교회라는 부르심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제와 자매는 한 부분이 병들면 몸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한 형제가 병들면 한 몸인 지체에게 전달됨으로 실족하게 할 수도 있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5:6절의 말씀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죄는 가만 두면 전염성이 있는 것입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것도 그냥 두면 누룩이 보이지 않게 퍼지는 것처럼 위험하다는 경고입니다. 나 혼자만이 타락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와 자매 즉 교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5-35절에서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두 세 증인이 죄를 범한 사람에게 찾아 가라고 하시고, 그 다음에는 교회에 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통해서 교회의 중요성을 강설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을 받는 것은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과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으로 강하게 표현하심으로 임박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작은 자 한 명의 가치를 강조하십니다. 10절을 보시면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예수님은 ‘삼가’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조심하라, 주의하라는 뜻을 전달하십니다. 왜 삼가라고 하시는 것이니까?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으로 하찮게 생각하는 것, 얕잡아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서로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작은 자도 소중하다는 것으로 천사들이 작은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하물며 같은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성도는 얼마나 소중한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심으로 당신님의 마음을 표현하십니다. 12-13절입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첫 시작을 어떻게 하시고 있습니까?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너희는 나의 제자가 아니냐, 그러면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라는 요청입니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답변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양이 길을 잃은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의로운 삶에서 벗어나 죄에 매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가 목자를 떠나서 길을 잃고 헤맨다고 하시면서, 양 99마리가 중요하니 한 마리의 양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버리겠는가? 오히려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위해서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남은 아들과 종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집을 나간 한 아들은 소중하지 아니합니까?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면서 찾아 나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교회도 같은 것입니다. 교회에서 나간 성도도 중요하고 병들어 있는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고 위로하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관심이 있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미약하고 작은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길을 잃은 자라도 다시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목자는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예수님이 당신님의 백성을 다시 찾으시는 사랑처럼 교회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양의 무리에서 떠난 양을 다시 찾으시는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잃은 양을 찾음으로 특별한 기쁨의 잔치가 열리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기쁨 안에 들어선 백성입니다.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이고 인내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양을 찾아 나선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찾음으로 진정한 사랑의 기쁨으로 안기도 하고 업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남아있던 99마리의 양과 교회 안의 성도는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길을 잃어버린 양에 대한 강조인 것입니다. 다 같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다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교회도 서로가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14절에서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각 개인별로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강조하십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심으로 공동체적인 신앙을 말씀하십니다. 연약하여 실족한 당신님의 백성 그리고 교회의 성도를 돌이키려는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죄에서 생활하면서 회개하면 더 기뻐하실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롬6:1-2절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자신을 살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 하시는 것을 이야기하시기 위해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시면서, 당신님의 백성을 실족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전도하라는 의미보다 이미 교회 안에서 같은 신앙의 생활을 하는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지팡이교회 성도 중에서 고난과 시험을 당하시고 있습니까? 고전10:13절의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으십시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이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끌고 가십니다. 그 뿐 아니라 다윗이 양치기를 할 때 사나운 곰이나 사자를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 새끼를 빼내오듯이 보호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과 지팡이교회와 중요한 관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의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당신님은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서 고난과 죽음 그리고 제 삼일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면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하면서 논쟁을 했습니다. 너희들은 나의 제자가 아니냐?, 너희는 나의 몸 된 교회가 아니냐? 서로 최고가 되기 위해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은 어찌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잃어버린 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설을 한 것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우리는 그리스도의 양입니다. 목사이든 형제이든 자매이든 다 같은 양입니다. 그리스도의 양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양으로서 목자이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늘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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