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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3:1-12 오늘은 4절까지
강설날짜 2020-12-13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16BVDNMm4O0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마3:1-12) 오늘은 4절까지

 

다음의 글은 “믿음을 말하다”의 책에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 교회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신자여! 믿음이 무엇인지 아는가? 제가 전에 섬겼던 교회의 여든 여덟된 권사님은 새벽마다 기도할 때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저는 기도하다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전통적인 장로교회에 출석하시는 권사가 어떻게 이신칭의를 부정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 기도를 중단하고 그 권사님의 기도를 가만히 들어보았습니다. 들어보니 그 기도는 그 권사님의 기도를 가만히 들어보았습니다. 들어보니 그 기도는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렇게나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드리는 탄식이었습니다. 이 권사님은 예순이 넘은 늦은 나이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지 모릅니다. 새벽마다 이 시대의 믿음 아닌 믿음을 보고 탄식하는 이 노인의 기도야말로 오늘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선지자의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한 지역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친숙한 용어가 무엇일까요? 당연히 “하나님”, “예수님”과 같은 이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외의 단어 중에 가장 친숙한 말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에 “믿다”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가 629회 등장하는데, 특히 믿음의 역할을 강조하는 신약에만도 555회나 등장합니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 “예수님” “주”라는 말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믿음/믿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나 다른 이를 향해서 어떤 사실에 대해서 “믿으라”라고 요구하거나, 스스로 “믿는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나 다른 이를 향해서 “믿음이 좋다 혹은 부족하다”라는 말을 툭툭 내뱉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믿음이라는 말만큼 남용되고 오용되는 용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오죽하면 장로교 신자의 입에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을까요? 과연 이 땅의 신자들은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요? 이 글은 김효남 목사님의 박사 논문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귀한 것을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자신만이 생각하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믿으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위의 권사님처럼 참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믿음 아닌 믿음을 보고 탄식”하는 기도의 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소망합니다. 세례 요한은 성육신으로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라며 잠시 저번 주일 강설을 떠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설 제목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애굽에서 불러내리라”였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간 뒤의 이야기였습니다. 헤롯은 동방 박사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속인 것을 안 후 예수님을 찾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헤롯의 마음을 알고 있으므로 주의 사자를 요셉에게 보내셨습니다.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 말대로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이 사건을 알고 있는 마태는 호세아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애굽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헤롯은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사악한 일을 했습니다. 그 사건은 두 살 아래 남자아이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하지만, 헤롯이라도 영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질병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영원히 자신의 권력을 누리고 싶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이어 아들인 아켈라오가 왕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다시 주의 사자를 요셉에세 보냈셨습니다.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헤롯과 같은 성격이 있는 아켈라오가 왕이 된 것을 들은 후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요셉은 꿈에 지시함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정착했습니다. 이 또한 마태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지난주 강설은 마치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기 위해 모세를 다시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있는 애굽 땅으로 돌아가게 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모세의 출애굽은 이 세상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출애굽은 그 이상입니다. 왜냐하면, 죄와 사망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 잠시 애굽에 계셨습니다. 그런 후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출애굽 즉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애굽에서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섭기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매우 뜻밖의 일을 마태는 기록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관련이 없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며 자신은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분은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면 당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시는 일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태는 곧바로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하지 않고 세례 요한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해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입니다. 마태는 3장의 첫 시작을 ‘그 때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갈리리 지방 나사렛에서 생활하고 있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때’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정적인 어느 때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계시던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특정한 시기를 알려 준다기보다는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이처럼 ‘그 때에’라는 의미는 여러 의미를 해석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때에 세례 요한을 마태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례라고 한 것은 아마도 사도 요한과 구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위해 유대 광야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중간에 있는 언약의 중첩기 시대에 살면서 서로 연결하여 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구약의 율법 시대를 마감하는 것이고 신약의 은혜 시대를 예비하는 준비자로서의 사역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전 6년경 경건한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요한은 자녀를 갖지 못했던 나이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기적의 아이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는 엘리사벳으로 마리아와 친척 사이였습니다. 하여튼,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와 메시야를 전파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러면 광야에서 전한 것입니까? 더 좋은 장소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피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40:3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지시였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입니다.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한 메시지를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마태는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이 어떤 내용으로 전개할 것을 세례 요한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전한 메시지입니다.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이기신 후 하나님 나라를 전하여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성육신으로 왜 오셨는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회개는 “생각을 바꾸는”것을 의미합니다. 회개는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서 하나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개는 뉘우침으로 기도와 죄를 고백함으로 세상의 생각에서 하나님 생각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자신의 죄와 죄책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교회요 성도인 신자들은 삶에서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합니다. 특정한 시간에 모여 예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로 삶에서 예배합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한 후 전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 대신 사용한 용어였습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을 유대인들을 위한 글을 쓰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독자들을 배려한 마태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천국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서 33번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늘이라는 단어도 사용했습니다. 참고로 구약에서도 하나님이라는 단어보다 “아도나이”로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사용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만이 왕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세례 요한이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하도록 하신 이유는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전하는 나라를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인 메시야를 세례 요한은 3절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소개하였습니까? 3절을 보시면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입니다. 이 말씀은 사40:3절을 마태가 인용한 것입니다. 아사야 선지자처럼 세례 요한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이사야를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인 자녀들을 포로에서 구출하신 후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때 이사야가 한 예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한 말은 그 길을 준비하는 소명 받은 것을 가리키는 내용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소명 받았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도록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이사야가 전한 메시지가 구약에서 일차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사야의 말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온전한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성취는 하나님 나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당신님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로 올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먼저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보셨으면 합니다. 세례 요한만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까?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당시 세례 요한의 역할이었다면, 다시 오실 즉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도 이 땅에서 복음을 저하며 준비하는 성도입니다.

 

마태는 독자들에게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세례 요한의 특징을 4절에서 소개합니다. 유대인들에게도 세례 요한은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4절을 보시면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요한의 특이한 복장을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엘리야를 떠 올리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의 겉모습은 하나님의 진노의 현현을 위한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마치 엘리야에 대한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왕하1:8) 엘리야의 사역이 그랬던 것처럼 요한도 이스라엘의 영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전하였습니다. 요한의 겉모습은 낙타털 옷을 입었고 허리에 가죽 띠를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광야에서 거주하는 자들이 입었던 의복이기도 하지만 선지자들이 입었던 의복이기도 합니다. 낙타털 옷은 물에 잘 마르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낙타털로 만든 옷은 아주 유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들이 백성의 죄를 자신이 대신하여 그들의 죄 때문에 애통해하는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입었습니다. 선지자와 세례 요한은 서로 일치하는 점이 있습니다. 마태는 세례 요한의 옷을 기록한 후 그가 먹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요한이 먹는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던 것은 광야에서 생활하는 세례 요한이 먹기에 편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세례 요한이 입었던 의복과 음식은 유대인들에게 회개와 임박한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이 쉽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생각하며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핵심으로 전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한 천국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구약에서 예언한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사야 그리고 구약의 마지막을 기록한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모든 약속을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약속의 성취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세례 요한을 마태는 기록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근원은 하늘로부터 즉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그 나라가 가까웠으니 너희는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주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생활하는 주의 교회는 삶에서 최우선으로 전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최우선으로 전해야 합니까? 그것을 세례 요한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전한 메시지는 타락과 부패로 인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인류 역사 가운데서 메시야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으로 이 나라를 통하여 복 받게 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의 성취가 눈앞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메시야를 통해 완성될 것을 세례 요한이 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선지자와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낙타털 옷과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천국을 전한 것입니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세례 요한은 그의(예수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역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기에 성육신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낸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생명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를 믿는 지팡이 교회는 소중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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