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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4:1-4절 중심으로
강설날짜 2021-01-10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Gf3YcyuYfA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이기셨다.(마4:1-4절 중심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달고 오묘하며 즐거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해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진리, 그분의 위엄과 사랑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표현체임을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지팡이 교회는 성경 말씀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여 경배하기를 소망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가운데 어려운 교회를 하나님께서 보살펴주실 것을 믿습니다. 교회는 목사의 교회, 장로의 교회 즉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주님의 교회”라고 이름을 짓기도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통치하여 주십니다. 한국에는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향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당연히 복음을 증거로 제시함으로 주님의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회는 이웃 사랑이 무엇인가를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이야기하심으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이웃 사랑 실천하기에 좋은 시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히 늘 언제나 교회는 복음과 마음 등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주님의 교회인 그리스도인도 그러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만 아니라 모는 나라가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이 더 힘든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더 극대화 되고 있습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복음으로 증명하는 교회는 이웃을 위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교회는 곳간 즉 십일조의 정신을 기억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지혜와 타이밍이 바로 지금입니다. 한국 교회가 초장기에 보여준 사랑과 일제 강점기 등에서 보여준 신뢰의 가치를 상실한 후에 복음이 증거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치 울리는 꽹과리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시대에 주님의 교회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지팡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강설을 통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당신님의 세계가 무엇인가를 알리신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고, 물 세례를 통해 회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알려주는 사역을 하는 세례 요한에게 신이신 주님께서 죄 사함을 위해 물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받으신 이유는 은혜가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그리고 온 백성이 받을 성령 세례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받으신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베푸실 분은 바로 당신님 즉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래서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할 때 친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날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사역을 하기 위해 알리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시작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승리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물 세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사역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일리신 후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하신 일들을 마태는 기록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행적을 알아야 메시야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입니다. 마태는 왕이신 예수님께서 받은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주는 세 가지 시험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남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최초로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승리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마귀의 시험을 받으러 가셨다는 것입니다. 혼란스럽지만 성령에 이끌리어 받으신 시험이므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받으신 시험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1절부터 1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우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험에 승리하신 것입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다는 것은 어려운 싸움이요 막상막하의 시험이며 조마조마하는 식의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능력을 더 강력하게 드러내는 시험의 승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다는 것은 필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면 광야는 어디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어느 광야인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광야는 황량한 곳이고, 고립된 곳이며, 외롭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서운 들짐승도 생활하는 곳(광야)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시험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이 이끄는 대로 순종하셨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시험을 감당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타락한 인간이 악을 행하도록 합니다. 그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에 승리하도록 하심으로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감당하심으로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마귀가 악을 행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여 선한 결과를 가져오십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해 승리하도록 하십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좌절시키고자 노력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메시야로서 마귀의 악한 의도를 이용하여 승리하셨습니다.

 

사람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잘 먹어야 하고 체력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육체적인 모습이 어떠합니까?“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경험한 40일은 금식이었습니다. 마귀와 싸워야 하는데 오히려 금식하신 것입니다. 40일이라는 숫자는 실제로 음식을 드시지 아니한 날수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금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금식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한 것은 가장 악한 환경 속에서도 넉넉히 이겨내셨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했을 것입니다. 사람을 음식으로 생명을 유지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 금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금식 정신과 달리 금욕이나 고행을 위해 주리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단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감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키시고, 당신님의 공생애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순종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마태는 마귀로부터 승리하신 시험을 기록함으로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가 누구인가를 알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3절을 보시면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입니다. 40일 동안 금식한 예수님에게 마귀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힘든 시기에 마귀는 시험을 통해 자신이 이기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마귀는 유혹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아닙니까? 바로 얼마 전 물 세례받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지금 당장 돌이 떡 덩이가 되도록 명령하십시오. 당신은 그럴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능력이 있는데 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충분히 금식했으니 이제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 돌을 이용하여 떡 덩이를 만들어 굶주림을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 같이 우리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야 마귀와 대적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고묘한 마귀의 시험에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떡으로만 사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육신으로 오셨으니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떡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며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시는 것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지팡이 교회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당하신 시험은 사람이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밥을 잘 먹고 잘사느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 길로 유도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하시기 위해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4절에서 무엇이라고 마귀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입니다. 마태는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각 시험에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한 것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경험한 것과 연결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8: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배고픔과 초자연적인 만나 공급을 통해 하나님의 시험을 생각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으로만 이라고 하심으로 사람이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먹어야 하기 때문에 돌을 떡으로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며 하나님을 의지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을것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기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4절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존을 지탱하는 것은 음식이지만, 먹는 음식 이상의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신8:2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수많은 말씀 중에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말한 말을 인용한 것입니까? 애굽으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하다가 마침내 가나안 땅 진입을 앞에 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모세가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하여튼 모세는 자신의 임무를 다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마지막 유언을 하듯이 율법을 자세히 설명하여 가르친 것이 신명기입니다. 그러면서도 출애굽을 하며 광야에서 생활하며 얻은 교훈을 생각하며 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명기에서 중요한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면 살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불신앙과 불순종은 반드시 실패하고 멸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말씀을 잘 알고 있으므로 신8:2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존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게서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람의 본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입니다.

 

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현존성과 영원한 효력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런데도 자신이 말을 더 중요시합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더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달로 오묘한 말씀을 사모하며 묵상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은 어려움을 닥쳐왔을 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어려운 시험은 교회인 성도를 단련하고 연단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시험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것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광야에서 시험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예배를 많이 드린다고 한들 더 중요한 것은 참되게 예배하는 순종입니다. 복과 성공을 위해 예배하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또한,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은 광야에서 불순종한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이런 현실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통해 순종의 길을 가도록 하셨습니다. 성령이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로 안전하게 인도하도록 하십니다. 나는 순종하는 성도입니까? 불순종하는 불신자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당신님의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낮추시고 주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것입니다. 목마르고 굶주리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한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를 죽이려고 이곳으로 끌로 왔는가”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먹을 양식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맛볼 수 없었던 상상을 초월한 양식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만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주어지는 양식이었습니다. 이 만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만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종 즉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영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이기셨다”는 말씀 중 첫 번째 시험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종말을 알기에 어떻게 하든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처음으로 시작하며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하며 승리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메시야의 지상 사역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길이었습니다. 마태는 이것을 알수 있도록 마태복음을 통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한 것입니다. 공생애의 시작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을 감당하심으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러 가셨으며 결국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연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시험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이 함께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친밀하게 동행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귀처럼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절대적인 순종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순종은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말씀처럼 “고통에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시험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이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만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의도는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왜 하필이면 시험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이런 목적을 이루려 하시는가에 대하여 대답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기에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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