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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4:5-11
강설날짜 2021-01-17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DQSbOh17VnI&t=1564s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이기셨다2(마4:5-11절 중심으로)

 

 

 

지팡이 교회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7문을 알 것이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 중 “여섯째 간구는 무엇입니까?”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을 강설로 듣고 있습니다.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신뢰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순종이 무엇인가를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께서도 요리문답을 통해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만으로는 너무나 연약하여 우리는 한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사오며, 우리의 절천지 원수인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신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영적 전쟁에 패배하지 않고,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강력하게 원수를 대적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로 정리하여 교육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님들께 감사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탄은 혼자 당하지 않게 하려고 사람을 멸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공격하는 악랄한 사탄입니다.

 

 

 

사탄이 주는 시험은 굉장히 파급력이 강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동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여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교회인 성도와 동행하여 주십니다. 그러면서 시험에 이기는 길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십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로부터의 시험을 무엇으로 승리하셨습니까? 결국,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더 깊이 있게 들으며 주의 길을 가는 지팡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강설은 오늘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이기셨다”입니다. 지난주 강설을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은 후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광야로 갔습니다. 광야로 간 이유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지식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에 승리하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승리하려면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광야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셨습니다. 40일 동안 밤낮으로 금식을 하셨기 때문에 육체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 때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에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 비법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그것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아닙니까? 물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셨으니 당신의 권세를 이용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마귀는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금식하셨기 때문에 마귀는 그것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유혹하고 시험하는 마귀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이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귀도 사람이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받을 때 떡을 먹을 때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이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만나”입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기 위해 떡만 좋아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생활하지 아니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힘입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생활하기를 소망합니다.

 

 

 

마귀는 첫 번째 시험에서 패배했습니까? 그러면 거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귀는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어떻게 하든 예수님이 패배하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험과 세 번째 시험을 마무리함으로 예수님께서 어떻게 승리하셨는가를 알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십시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패배한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은 바로 성전 꼭대기였습니다. 교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 꼭대기는 거대한 기드론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성전 탑의 남동쪽 구석 자리”를 말합니다. 그곳은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굉장한 높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학자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시험하였습니다. 왜 그러면 마귀는 성전 꼭대기에서 시험하고자 한 것입니까? 기적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과시욕을 예수님이 누리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과시욕을 누릴 수 있도록 6절에서 어떻게 시험하고자 했습니까?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쉽게 말하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당장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시험처럼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 같습니다. 마귀가 말한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겪으실 때 유대인들이 사용했습니다.(마27:40)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기에 생명도 주셨습니다. 하여튼, 마귀는 교묘하고 사악한 사탄입니다. 마귀가 간교하고 교묘한 의도를 속이며 예수님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지 아니한가? 그러면 당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뛰어내리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분명히 살려줄 것입니다. 분명히 구하여 주실 것이니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한 말은 좋은 의도 같으나 실은 교묘하게 속이는 속임수입니다.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시91편 중에 11절과 12절을 인용하여 말한 것입니다. 시편91편의 말씀은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자녀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마귀가 우리에게 이런 시험으로 유혹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왜 내가 뛰어내려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과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대답을 했다면 마귀는 승리한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마귀는 하나님을 의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왜 뛰어내려 하면 하나님의 의심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실제로 뛰어내림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는지 생각이 들게끔 유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도록 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예수님이 불순종 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처럼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신뢰와 사랑을 파괴하기 위해 오늘도 지금도 시험에 들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지팡이 교회는 말씀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 즉 시험을 어떻게 승리하셨는가를 아십니까?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첫 번째 시험에 승리하신 것처럼 두 번째 시험도 승리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유쾌, 통쾌, 상쾌입니다. 7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였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가감하게 하나님 말씀으로 반박했습니다.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정확한 답변을 마귀에게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영과 육이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이 말씀이 무엇인지 즉각적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신6:16절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하던 중 르비듬에 이르러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 없었습니다. 물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항의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한 말은 왜 우리를 애굽으로부터 출애굽 하도록 했는가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곳에서 목이 말라 사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모세를 원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출17:1-7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니 계신가?를 의심하던 장소라하여 그곳 이름을 맛사라고 불렀습니다. 맛사는 “시험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가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나에게 물질을 주시는지, 내가 원하는 기도를 들어주시는지 의심하며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이런 생각은 르비딤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의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며 불순종하는 교회가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마귀는 똑같은 방식으로 교회가 타락하도록 하여 하나님을 의심하도록 합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더욱 신뢰하며 주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영생을 누린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도 패한 마귀는 예수님을 어디로 데려갔습니까? 세 번째 시험을 위해 간 곳이기도 합니다. 8절을 보시면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즉 ‘지극히 높은 산’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산에서 마귀가 예수님께 보여준 것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높은 산이라도 천하만국을 볼 수 있는 산은 없습니다. 마귀가 보여준 높은 산은 실제가 아니라 상상입니다. 마귀는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상상을 이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높은 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마귀는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에 대한 야망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겠습니다. 영광도 예수님의 것입니다. 사람의 야망을 부추긴 것입니다. 저는 마귀의 제안에 솔깃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야망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역사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전쟁을 통해 나라를 확장하고자 하지 않았습니까? 천하를 얻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파리처럼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나라와 나라는 어떠합니까? 보이지 않는 무역 전쟁을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가족이라도 부모를 죽이기도 합니다. 그와 반대로 자녀를 어떻게 합니까? 이런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은 결국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첫 번째 시험에서 물질적 약점을 이용한 것이고, 두 번째는 정신적 허영을 이용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메시야의 순결성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마귀는 설정된 장면을 이용하여 예수님이 하나님께 불순종 하도록 시험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야망과 정욕에 약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야망과 정욕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낌없이 투자하기도 하고 희생을 합니다. 그것을 마귀는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9절에서 무엇이라고 계속 말하는 것입니까? 마귀는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자신에게 엎드려 예수님이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영광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달콤한 유혹 아니겠습니까? 잠시 눈감고 경배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타락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미래에 있을 하나님 나라 통치에 이르는 지름길을 지금 누리라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지 말고 지금 세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지 말고, 마귀는 자신에게 순종함으로 천하만국과 영광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권능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단축해주는 것이니 지금 당장 가지라는 마귀의 유혹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권세를 행사하지 않는 것은 마귀의 공범자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팡이 교회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10절에서 가감하게 말씀하심으로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인지 10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한 감정을 드러내시며 사탄이 물러가도록 했습니다. 사탄을 이제는 더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대처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개인적 이름인 사탄을 사용하였습니다. 사탄은 세 번째 시험에서 자신의 성격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이라는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꾸짖었습니다. 사탄이 누리고 있던 것을 이제는 예수님께서 점진적으로 파멸하시기 위해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을 경배하도록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록되었으되’라고 했습니다. 철저하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으로 돌아가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시고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시면서 성경의 말씀으로 반박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천하만국과 영광을 준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바라고 추구해야 할 최고의 것이 무엇인지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합니다. 세계도 아니고 천하도 아닌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마지막 시험을 신6:13절로 이기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입니다. 이 말씀은 우상숭배 금지 명령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예수님께서는 마귀는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해 성육신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6:13절과 오늘 본문 10절은 차이가 있습니다. 신명기에서는 경외하라고 하셨고, 마태복음에서는 경배하다는 말로 바꾸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섬기며라는 말에 다만이라는 말을 덧붙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신6:13절 일부를 인용한 것보다 신6장 전체의 내용을 담아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명기 6장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친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모세는 전한 것입니다. 그것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여, 하나님의 백성이여,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라, 우리의 경배와 섬김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더는 시험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권세에 대항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비참함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며 지옥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11절을 보시면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입니다. 결국, 마귀는 예수님에게서 물러갔습니다. 사탄은 방금 자신이 예수님께 호의적인 지배자가 되겠다고 제안했지만, 예수님의 권세 있는 말씀과 사탄의 움추린 순종이 누가 참된 지배자인지 분명히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 역설적입니다. 사탄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참되게 회개함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지만, 사탄은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의 겉에서 떠난 뒤 어떠한 일이 있었습니까? 천사들이 예수님을 수종 들었습니다. 천사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셨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시험으로 인하여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닥치는 시험에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만 바라보고 생활해야 하는가?입니다. 내 인생의 목표와 목적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가?입니다. 세상의 지혜보다 하나님 말씀이 더 중요한가?입니다. 세상의 권력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가?입니다. 이것 말고도 질문해 볼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마귀는 이런 점을 이용하여 우리를 지옥으로 유혹합니다. 성경은 단호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소망이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랑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한 분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얻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것을 아는 마귀는 손쉽게 내어주고자 했습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말고 마귀인 자신에게 경배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지 말고 지금 천하만국과 영광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말은 세상을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고난이 닥치면, 생명이 위협받는 위기에 처하면 우리의 마음은 의심과 낙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어 주심으로 승리하며 이기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려 의심하고 시험하게 하려는 마귀의 시험을 당하셨으나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좇아 생활하는 성도에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고난이 닥치면, 생명이 위협받는 위기에 처하면 우리의 마음은 의심과 낙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성도가 사는 길은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 뒤에 내가 거할 곳은 오직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을 안다는 교회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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