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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4:12-17
강설날짜 2021-01-24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i31QMXOhxk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예수님께서 천국을 전하시다.(마4:12-17)

 

 

오늘 지팡이 교회는 “영과 진리”로 예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4: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사용했던 개역판 성경에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영으로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예배하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아주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말처럼 성도가 지극정성으로 예배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교회가 최선을 다해 예배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번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세계에서 번역이 잘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번역이 미미함으로 원어에서 전하는 의미를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 번역된 개역개정은 잘 번역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학자들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쉬운 것 같지만 오묘합니다. 개역개정은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따른 것입니다. 먼저 “진리”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유일한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 자신과 그 예수님을 통해 온전히 그 의미가 드러난 말씀의 원리를 따라 예배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경에서 가르쳐 주신 방식대로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없던 것을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찾아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영”입니다. 오랫 동안 원어의 의미를 알기 위해 노력해 왔습입니다. 그 결과 “신령”이 아닌 “영”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말은 이처럼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은 사람의 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의미합니다. 과연 성령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의 전체 문맥 특히 요4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영생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의 전체 문맥에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호튼은 영을 대문자로 표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고려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예배시간에 로봇처럼 있으면 되는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성령과 진리 안에서 말씀을 가지고 예배하는 존재가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로 불러 주신 신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믿도록 함으로 선물로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교회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께서 확연히 보여주신 진리와 함께 역사하셔서 살아있는 예배를 가능케 하십니다. 예배는 그러한 마음들로 충만한 곳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이끄심을 받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두 번에 걸쳐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이기셨다”를 강설로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밤낮으로 음식을 드시지 않으시며 금식하셨습니다. 육신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의 약점을 이용하여 마귀는 시험했습니다. 옷은 없어도 어떻게든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음식을 먹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것을 아는 마귀는 음식을 이용한 것입니다. 음식은 육신의 목숨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목숨과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육신의 목숨에 매달려 땅의 것을 바라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말고 육신이 원하는 것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로 말씀한 것을 알았습니다. 마귀는 첫 번째 시험에서 진 것입니다. 그러자 마귀는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해 둔 것이 있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서 시험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면 당장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마지막 시험은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말고 나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며 영광을 누리지 말고 고통 없이 지금부터 누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의 시험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더 이상 사탄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라 할지라도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기회를 저버렸습니다. 세상 사람도 같습니다. 돌이킬 기회는 있습니다. 말씀을 거부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바르게 믿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예수님께서 비로소 천국을 전한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예수님께 들려온 소식은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잡혔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혔던 이유는 헤롯의 간음을 공개적으로 질책했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이렇게 기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앞에 나타나 당신님의 일을 시작하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물 세례를 예수님께 주신 후 곧바로 체포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요3:22) 그런데 마태는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지 않고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고 기록했습니다. 아마도 마태는 예수님의 사역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잡히신 것을 아신 후부터는 갈릴리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직 사역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박해를 받으시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이동하신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이동이었습니다. 13절을 보시면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라고 마태는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 도시 가버나움에 거주하시게 된 일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이동이었습니다. 마태는 매우 간략하게 기록을 하고 있지만, 누가는 눅4:31절에서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가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향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기 때문입니다.(눅4:16-30) 사도 요한은 요4:45절에서 갈릴리에 정착한 이유로 갈릴리 사람들의 영접을 들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동하신 것을 생각하면 사역의 목적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해변의 인구가 조밀하게 많았습니다. 그리고 동방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무역 통로에 위치하여 예수님께서 사역하시기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있어서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비쳤을 것입니다. 메시야의 사역을 하려면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먼 지역부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이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북에서 남으로 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동하신 이유를 마태는 14절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지역은(사9:1-2)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해 좋은 지역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이라는 뜻은 “나훔의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갈릴리 해변의 북쪽인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해변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이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주로 사역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로마의 세관과 수비대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다른 지역보다 안전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세리인 마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마태는 세례 요한이 잡힌 이유를 기록하지 않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기 위해 15절과 16절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입니다. 마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는 것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마태복음을 통해 전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의 말씀을 자주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이루시고 있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갈릴리는 사마리아 지역처럼 유대인들은 “이방의 갈릴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부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주전 722년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이방인들이 들어와 생활하다 보니 혼혈인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순수한 민족을 중요시하다 보니 혼혈인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16절에서 ‘흑암에 앉은 백성’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경제적으나 정치적으로 소외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하던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착하게 됨으로 예루살렘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적 은혜를 먼저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태는 그들에게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이방인 지역에 전해야 했지만, 오히려 스스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은혜와 축복으로 이스라엘을 돌보셨으나 이스라엘은 배은망덕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버려두지 않으시고 구원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초대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갈릴리에서 하시는 것입니다. 왜 갈릴리여야 하는 것입니까? 다른 지역도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갈릴리는 과거부터 이방인들에게 많은 공격을 당한 지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이용하여 당신님의 백성이 돌이키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북쪽에 위치한 갈릴리는 이방인들이 쳐들어오기 좋은 지역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이방인의 침입을 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판을 가장 처절하게 당해야 했던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정착하심으로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을 수 있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가장 뼈저리게 경험했지만, 이제는 가장 먼저 구원의 빛을 메시야를 통해 주셨습니다. 캄캄한 흑암 속에서 절망으로 주저앉아 있던 백성이 큰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고통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의 첫 시작을 하며 한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17절을 보시면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입니다. 여기서부터 마태는 마태복음을 크게 구분하는 전환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알리셨습니다. 당신님께서 오신 이유를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이 때부터’라고 함으로 중요한 전환점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사역을 준비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므로 생명의 빛을 당신님의 백성들에게 비추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영광이요 은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빛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전한 메시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메시지는 어떠한 지식에 대한 설득도 아니었습니다. 토론이나 어떤 논쟁이나 공격을 허용하는 이론의 전개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선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일방적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메시지는 갈릴리 지역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넘어 온누리에 전한 굿 뉴스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전한 천국은 아직도 미래적인 것에 그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전하신 천국은 당신님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왕국이며 당신님의 메지지와 행동이 곧 생동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말씀하신 시대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능력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하나님 나라가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미와 아직“을 알아야 합니다. 가까이 왔다가 지닌 동사는 그것이 이미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 동사는 천국이 이미 가까이 도래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주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이루어지는 날은 주님의 재림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은혜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은혜의 시대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권세) 이기신 후 하나님 나라가 도래가 실현되었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전하며 이적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적들은 메시야적 구원 행위로서 종말론적 성격입니다. 이적만 전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이적보다 말씀을 통해 더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에 동의하고 따라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며 통치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영적으로 여기 임하여 왔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현재성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제대로 믿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이기에 의와 평강 그리고 희락으로 삶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삶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회개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통치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팡이 교회 홈페이지 교회론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체포된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이동하였습니다.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해변 도시인 가버나움으로 옮기신 일과 그리고 그때부터 회개하라고 하시며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로 가셨던 이유는 이스라엘의 어느 지역보다 고통을 많이 당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지역으로 가심으로 그들은 복음의 은혜가 가장 먼저 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방방곡곡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약의 말씀을 이루어가지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예수님께서 전하신 메시지를 기억하며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영적으로 이 세상에 임한 것을 생각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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