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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4:18-25
강설날짜 2021-01-31

예수님께서 첫 제자를 부르신 후 사역의 개관을 소개(마4:18-25)

 

 

한국 교회는 방역 지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교회 중 예배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은 질병관리청에서 규정하는 방역 지침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론을 오해한 것입니다. 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웃을 위한 사랑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원치 않고 긍휼”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대에 이웃을 위한 긍휼함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최소 인원이 모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도를 위해 영상을 이용해야 하며, 심방을 통해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무엇인가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코로나가 그것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일부 교회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모여서 예배해야만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히 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는 이웃을 섬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래서 집사를 세워 교회의 신자와 이웃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교회는 구제를 감당했습니다. 초대교회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시대도 그러했습니다.

 

 

방역 당국이 코로나 19를 잘 대처하는 가운데 기독교의 선교단체 중 하나인 그들은 지침을 어기고 수련회를 했습니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경찰 단속”을 잘 피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가 문제가 되자 홈페이지에서 동영상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다음 세대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세대를 위한다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해열제를 먹으며 감염을 은폐했습니다. 그 결과 세상으로부터 교회는 달걀의 투척을 당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데 일부 교회로 인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이 원하는 대학을 위해서라면 교회에 보내지 않고 학원에 보내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학원을 더 의지하는 것은 비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예배시간은 신자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신자들은 이상한 목사들과 사이비에 잘 속아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문제가 된 선교사는 통역관 근무도 사실이 아니고, 관광 영어학과를 졸업했다고 하지만 그 대학에서는 그런 학과가 없다고 합니다. 모 교단에서는 강도사 시험에 합격한 사실도 없다고 할 정도니 황당할 뿐입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성경 말씀에 따라 장성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최선을 다해 성경을 전해야 할 것이며, 학교를 세워 성경에서 말하는 삶을 적용하며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학생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일반 학문도 세상의 학교보다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후원을 해야 합니다. 꼭 기독교 학교만이 아니라 일반 학교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학문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 안에서 세워져 가는 성전입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입니까? 주님의 제자는 교회에서만 제자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지난주 강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가버나움에 정착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이방인들에 의해 침입을 가장 먼저 당해야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의 침입이 있다 보니 혼혈인들이 생활하는 지역으로 변했습니다. 또한, 갈릴리는 경제적으로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들이 그리 좋아하는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정착하심으로 그들은 처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듣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에 정착하신 후 그때로부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사망의 그늘에서 새 생명을 얻은 백성입니다.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첫 제자를 부르신 후 사역의 개관을 소개하신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신자들을 위해 회개하도록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도록 제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버나움에 정착하시면서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18절을 보시면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디어 첫 제자를 부르시기 위해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태는 그렇게 기록함으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공생애의 첫 알림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고 이어서 제자를 부르시고 말씀을 전하시며 사람을 고쳐주신 일을 소개함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증하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제자를 부르시는 사역이었습니다.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특별한 제자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도라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 가장 먼저 네 명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 후에 8명을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새 이스라엘을 대표할 열두 사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해변은 사실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호수입니다. 큰 호수이다 보니 갈릴리 호수라고 부르기도 했고, 게네사르 바다 또는 게네사렛 호수 등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어족이 풍부하여 “고기 마을”을 뜻하는 마을도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 지역을 “뱃세다”라고 합니다. 그곳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형제로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그 당시 어부는 부두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대단찮은 존재였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형제로서 생업을 위해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생업에 전념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제자로 부르시고 있었습니다.

 

 

생업에 열심히 하는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9절을 보시면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일상적인 생업을 버리고 당신님과 온종일 동행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적이고 신적 권위로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들은 그냥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어떤 의도로 말씀하셨는가를 알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자신을 위한 성공의 길이 아니라 모든 삶을 하나님께 의존하는 청지기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사람을 구출하는 일에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적인 권위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베드로와 안드레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0절을 보시면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런저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즉시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생업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삶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사명에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헌신 된 생활로 살아가겠다는 순종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온전하지 못한 순종이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온전한 순종이었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온전한 순종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두 명의 제자를 선택하신 예수님께서는 계속 갈릴리 호수를 다니시다가 누구를 부르셨습니까? 21절을 보시면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요19:25절에 의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사촌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특히 요한은 제자로서 유일하게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십자가의 최후를 지켜보는 사도였습니다. 그리고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사망하기까지 돌보는 제자였다고 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물을 깁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여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제자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것 같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어부를 먼저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까? 종교 지도자들도 있고, 부자도 있을 것이며, 선한 사역을 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부와 복음을 전하는 사역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어부는 학문적으로 뛰어나지 못하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갈릴리 지역에서 생활하는 분들은 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뜻을 온전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어부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신분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같이 비슷한 이유로 제자를 부르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쓸모없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지만,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꾼으로 삼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부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고귀한 사역자로 부르셨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그 즉시 예수님를 따라갔습니다. 22절을 보시면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야 사명에 동참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업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하던 일들을 포기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를 좇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포기한 것입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명령만 좇아 제자로서의 소명에만 전념하기 위해 아버지의 권한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는 예수님과 네 명의 제자들과 첫 만남을 인상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에 정착하시면서 평소 그들을 눈여겨보셨을 것입니다. 그 당시 율법을 배우기 위해 제자들은 스승을 먼저 찾아다녔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직접 제자를 찾아다녔습니다. 네 명의 제자들을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이제는 사람을 구원하는 제자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중요한 일들을 감당하는 제자였습니다.

 

 

23절부터 25절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의 개관을 소개하는 구절입니다. 특히 산상수훈을 위한 도입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무엇인가를 당신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구절입니다. 23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택하시고 당신님의 따른다는 것에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한 것을 섬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갈릴리 지역에는 2백여 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역마다 회당이 있다고 생각하면 예수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을을 다니며 전하셨습니다. 회당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 율법을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율법을 해석하고 교육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야로서 당신님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면서 백성 중에 소외되고 병든 자들을 고치심으로 선지자들이 예언한 시대가 지금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치면 메시야가 왔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이 시작되었으니 너희들은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처럼 생명의 빛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치유하신 목적은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욕망을 위해 예수님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맛보기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날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전하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다는 소문은 여러 지역에 퍼졌습니다. 24절을 보시면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입니다.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병을 온전케 한다는 소문은 유대 지역을 넘어 이방인 지역까지 퍼진 것입니다. 수리아는 갈릴리 북쪽 이방인 지역으로 다메섹과 지중해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이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쳐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고칠 수 없는 것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고쳐주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 병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적을 통해 메시야로서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타락된 흑암의 세계에서 생활하며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회개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성경으로부터 들은 자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까지 퍼져서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따라 다녔습니다. 25절을 보시면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의 소문은 엄청나게 넓은 지역으로 퍼졌습니다. 25절에서 소개된 지역은 사마리아를 제외한 이스라엘 전체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데가볼리는 알렉산더 대황이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와 노장들이 헬라인 도시를 건설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데가볼리는 이방인의 거점도시로 성장하면서 유대인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갈릴리까지 찾아 왔습니다. 갈릴리로 모여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사역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이 마무리된 후 5장부터는 산상수훈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질병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온전한 제자가 되었다면 열두 제자처럼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이적과 복만 탐내지 말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버나움에 정착하신 후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최초의 제자로 택하셨습니다. 공생애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마다 제자들 부르신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 생사를 좌우하는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도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교회를 가리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교회의 초석이며 기둥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에 의해 하나님 나라는 세워져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알려 주시기 위해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천국 복음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우리의 병든 것과 약한 것을 치유하여 온전케 하는 것임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역을 위해 사람을 낚는 어부로 제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사람을 낚는 영혼 구원자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전에 누리던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아니하는 삶입니다. 전적으로 주님께 나의 삶을 의존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생활하겠다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로서 사명을 다하는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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