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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5:1-2
강설날짜 2021-02-07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htx4e6Oqd0

산상수훈 도입 그것을 알고 싶다.(마5:1-2)

 

 

교회 즉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신자들은 세상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삶을 구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삶을 구현해야 하는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은 이해하면서도 “교회 생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 생활이라는 것은 예배당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충성하면 모든 일이 잘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교회 생활도 중요합니다. 모이는 교회로서 해야 할 일도 있지만, 흩어지는 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백성이 누구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중심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분들은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 귀착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성경이 과연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깊이 고민해 보십시오. 참된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하나님 나라의 생활임을 바르게 일깨워주는 방향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행20:32절을 보시면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말씀에 위탁하여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의 강설 즉 설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구원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구원하는 힘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교회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함을 받는 주의 백성입니다.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성도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팡이 교회를 든든히 세우시며 거룩하게 하심으로 기업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코로나 19로 힘든 시대에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부터 지팡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강설하신 내용을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거처를 옮기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관을 사역을 통해 드러내시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지난주 강설을 다시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천국 즉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승리하신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체포된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거처를 옮기신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사역을 위해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제자입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이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고기를 낚는 어부였습니다. 그들을 부르심으로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제자로 부르심은 받은 그들은 각자의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제자들만 그렇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같습니다. 누구나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하는 사명 자입니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갈릴리 여러 지역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구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으니 메시야이신 나를 믿고 구원받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자들을 고친다는 소문은 이방인 지역과 유대 지역으로 퍼졌습니다. 예수님께 은혜를 입는 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전역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서 생활하는 이방인도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공생애의 시작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중요한 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신 것입니까? 그것도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기세를 몰아 예루살렘으로 이동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산상수훈을 통해 천국의 중요한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도 잘 알고 있는 산상수훈 또는 산상설교이기도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바르게 배움으로 정확한 가르침을 전해야 합니다. 사실 바르게 전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시며 하나님 나라로 안전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산상수훈의 서론을 알고자 합니다. 서론을 이해할 때 하나님 나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1절과 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산상수훈의 서론은 1절과 2절만이 아니라 12절까지입니다. 서론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성도의 행복 상태와 그 연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그다음부터는 산에 모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해 무대를 준비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무대는 산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회당보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산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해안가도 좋지 않습니까? 이 또한 좋은 생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유추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산상수훈에서도 그렇지만, 마15:29절에서는 사람들을 치유하시기 위해 산에 오르셨습니다. 17:1절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산에 오르셨습니다. 24:3절에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갈멜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는 28:16절에서 부활하신 후 산에서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산이 반복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이기에 산에서 전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의 독자인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왕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이 말씀하신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산상수훈의 첫 부분에서 예수님의 행동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행동들에 상당한 무게감과 장엄함이 있다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유대인들이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신 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강설하려면 서서 해야 하는데 앉으셨습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와 다른 문화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강의할 때 서서 하지만, 유대인들은 앉아서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앉으신다는 것은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시겠다는 행동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가 당신님을 따르는 것을 아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과 함께 산에 오른 것인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사람들을 고쳤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환호를 받는 인기 절정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앉으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예수님께 집중되었습니다. 어수선한 행동들은 조용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의 상태와 그 연유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과 진리요 생명이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님께로 오는 것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육신이 피곤할 수 있는 가운데 있었지만, 메시야로 오신 당신님의 사역을 감당하고자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앉으신 것을 자세히 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떤 행동을 하셨습니까? 2절을 보시면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입니다. 마태는 입을 열어라는 행동을 통해 예수님의 실제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것과 연결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시내산은 엄숙한 권위가 있는 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도록 산상수훈을 통해 알려주신 것입니다. 시내산은 모세가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주심으로 구약의 말씀은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대체하는 새로운 율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입을 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입을 열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동의 시작을 하신 것입니다. 그 내용은 천국 복음 즉 하나님 나라에 관한 복음입니다.

 

 

산상수훈 도입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과 같은 행동을 하는 교회를 보면 교회는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교회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목적 등과 달라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것이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불신자와 삶과 달라야 하는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신자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이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생활하고 있는 가운데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헌법과 같은 것이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산상수훈은 너무 수준이 높고 현실적으로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수준이 높고 현실적으로 지키기가 쉽지 않아도 문자적으로 지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정신을 취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산상수훈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해야 합니다.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를 신뢰함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주에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가 산상수훈을 실천하게 하도록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의 삶을 통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세상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공로에 의해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주어지는 ‘나라’라는 것을 삶을 통해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예수님만이 이룰 수 있는 수준 높은 삶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의 비밀은 바로 예수님과 연합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의 삶이란 주님 없이는 불가능한 삶입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나의 행위 즉 도덕과 윤리적인 삶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기에 믿음의 생활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주님과 동행하며 삶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생활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면 언제나 교회는 세상을 닮습니다. 주님의 교회인데도 세상을 닮는다는 것은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타락하면 더욱 교회는 빛을 발해야 하는데 오늘날 현실은 어떠합니까? 달걀의 투척을 받을 정도니 마음이 뭉클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교회는 더욱 세상의 짐을 지고 복음이 무엇인가를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영혼 구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을 바르게 배움으로 우리는 세상의 포로 된 신자들이 있다면 다시 구출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산에 오르셔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다’ 이렇게 기록하지 않고 예수님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기록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메시지이기에 그 어떤 사건보다 길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도 다른 말씀보다 길게 강설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의 본질을 아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산상수훈 중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구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짧은 말씀은 우리에게 산상수훈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4장과 5장을 연결하여 주는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 즉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의 성품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게 하려고 산에 올라가 입을 열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강설로 이야기하셨는가를 알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제목처럼 “산상수훈 도입 그것을 알고 싶다”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특정한 사람만 산으로 데리고 가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산으로 데리고 가 복음을 강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따르는 자들을 위해 구약의 메시지를 풀어서 설명하신 것이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꼐서는 당신님을 자랑하거나 무엇을 행한 것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누구시며, 하나님 나라만 전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은 물질적인 축복이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잘 믿으라는 강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야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산상수훈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나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로 제시함으로 세상 사람도 구원할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을 왜 가르쳐주신 것인지 기억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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