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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5:13-16
강설날짜 2021-03-14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9cJ7ZWPe45U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성도의 영향력 즉 소금과 빛(마5:13-16)

 

 

사람의 공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 구원받은 성도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다섯 번에 걸쳐 5장 1절부터 12절까지 강설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신령한 신앙의 태도와 질이 무엇인가를 산상수훈에서 왕으로서 선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구원받은 성도는 산상수훈의 팔복을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전의 삶과 다른 삶입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의 생활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성도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죄로부터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죄로부터 정결하게 하신 주님께서는 당신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화목하게 하심으로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 등으로 세상 속에서 화평을 추구하며 생활합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성결과 주님의 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하고 존경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세상은 교회 즉 신자들을 대적하고 핍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이에는 깊은 단절과 이질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도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 고난은 결국 십자가의 극치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이런 것처럼 지팡이 교회도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사망의 음침한 길이라도 가야 하는 사명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명 자입니다. 이것이 행복이요 기쁨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거룩한 순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지존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주님의 백성인 신자들을 미워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미워해도 성도는 화평하게 하는 자로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화평한 삶을 생활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신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핍박받는 성도는 복되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 즉 하나님 나라가 성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배님도 이것을 알기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주의 사명의 길을 갔습니다. 천국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활해 온 믿음의 선배님들은 거룩하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선지자들도 핍박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신앙의 길입니다.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겪을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를 미워하는 세상에 대하여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대적해야 합니까? 오늘 말씀은 바로 이처럼 믿는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당하는 것에 대하여 어떤 태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를 주님께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 사람도 잘 알고 있는 “소금과 빛”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세상에서 구별하여 세우신 교회의 뜻과 목적에 대하여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소금과 빛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교회의 존재를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오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으로서의 교회와 세상을 밝히는 교회를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교회는 윤리적이고 도덕적 역할에서 세상을 정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며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합니다. 당연히 교회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올바른 가치관입니다. 세상 사람과 구별된 교회는 더 성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치시는 소금과 빛은 윤리와 도덕을 위해 가르치신 것입니까? 교회는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합니까?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데 이런 일도 있습니다. 교회의 성공을 위해 사회사업가, 복지단체장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지역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며 기업과 같이 성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는 목양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입니다. 세상의 기관과 다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영혼 구원입니다. 사회사업을 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상실하고 다른 일에 관심이 많다면 교회를 무너지도록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하신 소금과 빛의 이미지를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성도의 영향력”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소금과 빛으로 사용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예를 끌어다가 비유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소금과 빛이 가지는 모든 물질적 특성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여기서 땅의 소금은 14절의 세상의 빛과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소금은 과거나 오늘날에도 아주 중요한 물질입니다. 소금은 음식에 사용하는 것만 아니라 방부제, 재설재, 비료 등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소금은 로마 군인들에게 월급으로 주기도 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문맥을 따라 해석하면 예수님께서는 소금의 성질이나 맛이 변질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이를 보존하며 또한 맛을 내게 하는 이미지를 빌려서 세상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표현했습니다. 성경에서 소금은 성결하고 변치 않는 상태나 모습과 관련짓는 것은 사랑과 성결 그리고 화평을 추구하며 사는 성도의 모습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소금은 거룩한 이미지와 같은 것으로 교회도 소금과 같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과 같이 부패한다면 소금은 필요 없습니다. 이처럼 교회도 같습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가 부패한 길을 간다면 소금의 역할을 못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소금과 같은 존재로서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명을 감당하게 하심으로 세상 사람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소금과 같은 맛을 내야 합니다. 그럴 때 참된 맛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예가 바로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염치도 없는 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 자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진정한 십자가의 부활을 안 후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2:9절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주님을 알고 나서는 바로 자기 자신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새로운 존재됨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 태어난 존재라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 교회는 소금과 같은 존재로서 맛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맛을 내고 있습니까? 소금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 제 기능을 상실하면 무엇으로 소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고대 사회에서 소금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오늘날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소금의 기능이 중요한 것처럼 그보다 더 교회의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교회론은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습니다. 다시 읽어 보십시오. 고대 사회에서 소금 없이 생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소금이 사람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듯이 교회의 이런 역할 역시 세상 사람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소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소금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짓밟힐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사명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짓밟힐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소금의 맛을 상실하니 세상이 교회를 정화하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교회는 그저 인생에서 시간에 따라 생활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과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필요해서 당신님의 백성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소금의 이미지를 말씀하신 후 14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빛이 가진 이미지는 소금의 경우와 같아서 그 둘은 신자들이 세상에 대해 갖는 영향력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빛은 소금과 다른 또 하나의 측면이 있습니다. 빛의 기능은 사실이나 진리를 보이게 만들어서 그 보이는 것에 의해 방향과 안내를 해주는 것입니다. 빛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소금의 이미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빛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이 세상의 실제를 드러내도록 하신 최초의 창조물입니다. 빛은 캄캄한 세상 속에 있을 때 드러나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15절에서도 등불을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빛과 등불은 마귀에게 속아서 마귀를 따라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서 참 생명으로 인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교회는 등대와 같아서 사람을 구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등대가 어둠 속에서 빛을 내지 아니하면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는 말씀으로 무지한 백성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교회는 영생에 이르는 길을 비추어야 합니다. 사회사업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존재는 영혼 구원입니다. 사회사업은 신자들이 세상 속에서 흩어지는 교회로서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님들은 3가지가 있어야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말씀의 강설과 성례 그리고 기도 즉 권징입니다.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가 중요하기에 주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어주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를 허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당신님을 어떻게 소개했습니까? 세상의 빛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빛이라고 하신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비추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은 부정함에 대립되는 순수함,거짓이나

무지와 대조되는 진리와 지식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존재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시기 원하셨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섭리와 경륜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존재가 지팡이 교회입니다. 1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그렇습니다. 빛은 가리거나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의 사명을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말처럼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베드로처럼 지팡이 교회도 절대가치인 소금과 빛과 같은 존재인 그리스도인이요 교회입니다.

 

 

계속해서 주님께서는 15절과 16절에서 14절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십니다. 먼저 15절을 보시면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마치 산 위에 있어 사람들 앞에 환히 드러나 그 빛을 가리는 법이 없습니다. 등경 위에 높이 두어서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환히 보일 수 합니다. 저도 어릴 때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때 호롱불을 사용하여 식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말씀을 이해하기는 더 쉽습니다. 오늘날 전기가 소중한 것처럼 과거에도 특히 고대 사회에서 등경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된 것들을 이용하여 강설하셨습니다. 등경이 집 안을 잘 비추는 것처럼 교회도 어두운 세상에서 진리와 참 생명의 빛을 환하게 비추어야 합니다. 빛이라는 존재는 모든 대상물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이 변질하지 않도록 그리고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신자들이 노력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소금과 빛처럼 세상에 보이는 존재로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독특한 맛을 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메시지로 주시는 강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빛을 말로 가두어서 빛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유대인들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높이 두어서 잘 보이도록 했습니다. 고대의 마을은 흔히 흰 석회암으로 건축되었기 때문에 태양 속에서 빛나는 것이 많은 사람의 눈에 보이고 쉽게 감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밤에는 동네 주민들이 켜 놓은 등불이 주변 지역에 빛이 잘 비추도록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동네가 숨지 못한 것처럼,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는 마치 산꼭대기에 선 자처럼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행실과 언어를 통해 그리스도를 널리 전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절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주님께 도움의 간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교회의 기본 자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16절에서 쉽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교회인 신자들의 행실로 인해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강설은 윤리적이고 도적적인 말씀이 아니라 선교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적 즉 지상명령을 감당함으로 비천한 죄인들이 주님을 믿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이러한 선교의 역할을 하도록 세움을 받은 존재입니다. 구약의 말씀에서도 특히 아브라함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나라를 세우시고 이 나라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복의 근원으로서 사람을 구원하는 사명자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안 사람들은 우리처럼 신앙 고백하게 됩니다. 세상의 것을 좋아하던 자들도 이제는 니고데모처럼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고 새로운 인생을 생활합니다.

 

 

세상은 마귀에게 속하여 마귀를 좇아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세상이 마귀의 소유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마귀가 가지고 있다면 그곳은 마귀의 세상이 될 것이고 지옥이 필요 없게 됩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마귀가 왕처럼 지내지만 결국 하나님에 의해 최후 심판을 당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교회로서 세상 사람도 지옥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핍박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도록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상의 축복과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도록 존귀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미워한다면 즐거워하십시오. 주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의 유일한 통로는 교회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교회는 소금과 빛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세상과 연합하거나 혼합되어 천국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의 본질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에서 천국의 본질을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의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행하여 하나님과 천국을 증언해야 합니다. 소금과 빛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팔복의 내면적 특성을 소유하였을 때에만 비로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다음 주부터 산상수훈을 마무리하기까지 소금과 빛의 생활에 알맞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성도의 영향력 즉 소금과 빛”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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