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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5:20-26
강설날짜 2021-03-28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1TotyNNHgkw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마5:20-26)

 

오늘 첫시작은 헤르만 바빙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빙크는(1954.12.13.-1921.7.29.) 네델란드의 신학자요 목회자였습니다. 신학 공부를 하는 목회 후보생이라면 누구나 바빙크의 책을 읽어야 합니다.

 

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 1854년 12월 13일 ~ 1921년 7월 29일)는 네덜란드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이며 목사이다. 바빙크의 영향력을 받는 학자들은 코닐리우스 반틸과 루이스 벌코프입니다. 우리나라의 신학도 바빙크의 영향력에 있습니다. 그만큼 바빙크는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바빙크의 “찬송의 제사”라는 책에서 신앙고백에 따른 신자의 삶을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신자는 교회의 공예배를 지키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제행위를 하면서, 기독교적 교육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매인 자들과 옥에 갇힌 자들을 돌아보면서, 헐벗은 자를 입히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면서, 우는 자를 위로하고 난폭한 자를 교훈하며 핍박하고 불신하는 자들에게 권면하는 가운데,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흠 없이 지키고자 소망하면서 신앙을 고백한다."입니다. 바빙크가 기록한 찬송의 제사 내용은 경건한 개혁가들의 글에서 거의 나오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언제나 성경에 기초한 사역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은 삶의 생활에서 겸손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깨달은 대로 주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더 많이 성경을 보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은혜를 구하며, 받은 믿음에 따라 판단과 확신으로 땅에 있으나 매이지 않고, 하늘에 속한 자로서 그 영광을 소망하며, 실제 삶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즉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로서 삶의 예배를 하다가 오늘은 모이는 교회로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는 지난주 강설을 기억해 보십시오. 지난주 강설 제목은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를 아십니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에 관해 이야기하신 것은 산상수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산상수훈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아는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깊은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비밀을 알기에 귀한 성도입니다. 우리는 산상수훈에 대한 기초를 알기에 지상명령을 감당하기 위해 삶의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을 믿고 우리와 함께 같은 신앙고백을 하며 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빛과 소금의 선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선교적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통해 더욱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말씀 중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이며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이루어 오신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님과 율법 그리고 선지자와 어떤 관계를 이야기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는 오실 메시야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지금 너희들에게 예언된 메시야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율법과 선지자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부인하지 말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일점은 글자와 글자 사이를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가장 작은 부호입니다. 일획은 히브리어의 가장 작은 글자입니다. 예수님꼐서는 가장 작은 것도 즉 구약의 말씀을 다 온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지극히 작은 한 부분도 부인하지 아니하며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누어 생각했고 지키었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내용이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잘 지킨다고 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나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말씀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말씀의 주인이신 당신님께서 바르게 알려주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말씀을 오해하거나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모르기 떄문에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산상수훈을 모른다는 것은 구약의 말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입니다. 말씀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정착 말씀을 모른 것입니다.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이 율법의 자리에 앉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23:2절에서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하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성경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 말씀과 연결됩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언약의 열 가지 말씀”(십계명) 중 여섯 번째 말씀인 “살인하지 말라”는 것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 하면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히 하기 위해 즉 수정하기 위해 이야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율법에 대한 피상적이고 왜곡된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을 생각해 보고, 다음 주부터는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사랑에 관한 말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대표적인 것을 이용하여 바르게 해석하여 주심으로 당신님이 율법의 주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복하여 사용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21절 27절, 33절, 38절, 43절에서 너희는 옛사람에게 말한 바를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신적 권위를 강조하셨습니다. 율법을 주신 예수님께서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더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율법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온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일점일획도 다 이루시겠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오늘 본문 20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은 화들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율법을 가장 잘 지킨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은 종교지도자들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보다 더 낫지 못 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보다 더 낫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니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의 허망함과 위험을 드러내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백성의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한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기초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가지고 있는 성도입니다. 종교지도자들과 다른 의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고상한 의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의를 믿는 교회입니다. 의를 아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생활하는 성도입니다. 종교지도자들처럼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가장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 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삶이 예배하는 성도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종교지도자들과 다른 마음과 동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참되게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1절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 하면에 대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입니다. 여기서 옛사람은 율법을 처음 들은 사람들입니다. 옛사람은 율법을 처음 듣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입니다. 애굽의 생활을 누렸던 모세는 하나님을 안 후 새로운 삶의 생활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더 나은 의 즉 세상의 삶에서 새로운 삶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의 즉 율법을 주신 참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살인하지 말라에 대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너희는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율법에 관한 것을 배웠으나 원래의 뜻은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옛사람에게 말한 바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율법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의도적인 살인은 금지되었고 형벌은 사형이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의도하지 아니한 살인은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직접 살인해야 살인죄로 인정하며 재판을 통해 처벌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것만 생각하고 율법을 주신 참뜻을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비록 의도적인 살인은 아니더라도 감정적인 마음으로 언어폭력을 하는 것도 심각한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소유하고 있어서 더 엄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종교지도자들보다 더 낫은 의를 말씀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살인만 하지 아니하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형제 사랑에 관해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어폭력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죄입니다.

 

이것을 잘 알 수 있도록 유대인들이 잘 사용하는 말을 사용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22절을 보시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입니다. 유대인들이 잘 사용하는 말은 ‘라가’였습니다. 이 말은 “멍청한 놈”, “빈 머리”라는 뜻으로 아주 모욕적인 말이었습니다. 사람을 사람 취급 안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파괴의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모든 면에서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며, 가족과 같이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강하고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참뜻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해석하여 주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람의 분노는 이웃을 병들게 하고 사람을 죽이도록 하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기에 사람을 증오하고 모독하는 것을 자신을 영원한 지옥으로 가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만 생각했습니다. 율법이 말하고 있는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으로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예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23절과 2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사하며 자신들은 깨끗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연속성으로 하신 말씀이 23절입니다. 너희의 마음이 온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화를 내었다면 화해하고 와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화해는 죄의 해결을 할 기회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죄 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분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도록 할 수 있으니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서로 화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배보다 형제와 먼저 화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인 성도는 항상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사람들과의 수평적 관계도 중요합니다. 참으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처럼 주의 길을 가야 하는 백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형제와 화해하는 것이 얼마나 긴급하고 중요한가를 재판하는 모습을 통해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25절과 26절입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신이 잘못해서 송사를 당했다면 속히 사과하고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빨리 화해하지 않으면 고발당하여 옥에 갇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에 흔히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말씀하심으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성도는 사람들과 화해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를 받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당에 와 있다고 해서 모든 영광 하나님께 상달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고 따르는 성도의 예배를 받습니다. 사람은 어떤 일을 쉽사리 미루어 버리는 게으른 성향이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기회가 주어질 때 지체치 말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마지막 빚 한 푼까지도 모두 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빚 한 푼까지도 모두 지불 해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가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난을 겪으며 있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의 책임을 물어 심판하시기 전 늘 기회를 주십니다. 지금도 회개할 기회는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주님의 날은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재림의 날까지 회개할 기회는 있습니다. 그날을 기다리다 보면 사람은 언제 사망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것을 사람은 두려워하며 떨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것을 좋아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법은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수준입니다. 사람이 노력하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법은 사람의 힘으로 쉽지 않습니다. 동기와 마음조차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죄인인 우리가 지성이면 감천처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다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늘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시고 주님께서 당신님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님의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의 죄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죄하기만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율법의 참뜻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살인은 가장 큰 죄입니다. 세상 사람도 알고 유대인도 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알고 율법의 참뜻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서기관보다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율법을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율법의 정신을 말씀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더 낫은 의는 단순히 율법주의로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이요 은혜로운 의로 교회인 성도는 구원받습니다. 복음을 믿음으로 값없어 주어지는 것이 바로 구원이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믿음으로 지팡이 교회는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의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값없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멸시하는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살인을 방지하는 방법은 마음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는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죄는 크고 작은 것이 아니라 무섭고 심각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통해 바른 교회로 성장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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