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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2:38-45
강설날짜 2016-09-11

우리는 지난 주 시간에 “예수님과 바알세불 나의 선택은?”이라는 말씀으로 강설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리고, 벙어리고 장님인 한 사람을 치유하셨을 때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가 온 것으로 크게 놀랐습니다. 그래서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계속하여 어떻게 하면 음모를 꾸미면서 죽이고자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귀신의 왕 바알세불로 둔갑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당신님이 하셨던 일들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이 하셨던 일들을 통해서 그러내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셨던 일들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는 바리새인들만이 아니라 이제는 서기관들도 자신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대변이라고 주장하는 자신들을 위해서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3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외식을 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타당성을 위해서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높여 드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종종 사용한 표현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말에는 정중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지난주에 배운 말씀처럼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로 몰아세운 것을 보면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신 일들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성은 예수님에게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증거를 당장 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해 오신 이적과 기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표적을 보여주지 아니하면 책임을 질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유대인들의 구약적인 전통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전달과 함께 초자연적인 표적을 통하여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외식하는 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면 아마도,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충분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님의 정체성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거부를 합니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도 거부한다는 것은 외식을 하는 자들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보여 주었어도 거부하고 어떻게 하면 표적을 통하여 다른 흠을 잡을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에 악을 드러내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9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악을 드러내신 것을 알기 때문에 너희가 나를 시험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요나는 사흘 즉 삼일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서 있었던 것처럼 당신님도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큰 메시야가 하나님 나라를 전하여도 회개하지 아니하는 그들을 향해 당신님께서 직접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표적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하심을 다른 어떤 무엇보다 확연히 다른 무덤에서의 부활로 당신님이 진정한 메시야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거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으로 당신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40절에서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고 분명히 하시고 있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직접 증거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도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확증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과거 니느웨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회개를 했지만, 지금 바로 너희들에게 전하는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큰 분임에도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1절을 보시면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고 하십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이 있어도 성경을 읽지도 않고 믿지도 아니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요나의 시대는 말로 복음을 들었고, 신약의 시대에는 말과 글로 복음을 들었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하여 주신 성경이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특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복음의 말씀과 성경을 무시합니다. 심판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이야기를 하신 후 곧 바로 다른 예를 들고 계십니다. 42절을 보시면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남방의 여왕도(아마도 오늘날 아라비아 남서부로 즉 예멘에 있는 시바인으로 봄) 하나님을 잘 몰랐지만 솔로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믿었습니다. 그런 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어찌하여 지금 너희들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어도 복음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새로운 새 생명을 여시는 메시야가 바로 당신님이라는 것을 요나보다 크시고, 솔로몬보다 크시다는 것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구약의 인물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예표하고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기다리던 예수님이 오셨지만 불신앙과 배척하고 반역을 하면서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은 언약 밖에 있던 이방 민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던 선민적 특권도 누리지 못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거의 받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희미한 가르침에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복종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를 수도 없이 많이 받았던 백성이라도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직접 예수님을 보고서도 그리고 마지막 표적까지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런 그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끝까지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면류관을 받음으로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악한 세대를 위해서 예수님은 이제 마지막으로 배척하는 그들에게 준엄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43-45절의 말씀을 통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비유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먼저 본문을 보시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고 하시면서 더러운 귀신의 예를 들면서 악한 세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비유를 통해서 전하시고자 하는 의미는, 만일 이스라엘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주어진 기회를 자기 것으로 취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보다 더 나쁜 형편에 처한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이 형편이 마치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도 나가서 물 없는 죽음의 땅을 배회를 한다는 것은 귀신이 물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라 귀신들이 광야와 같은 황폐한 곳에서 산다는 상징성으로 보아야 합니다. 귀신이 광야를 배회를 하지만 쉴 곳을 얻지 못하면서, 아무 사람에게나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귀신이 더욱 자신이 나왔던 사람에게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와서 보니 그 집은 비고 청소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수리도 잘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합니다. 왜 일곱 귀신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일곱은 완전이라는 의미와 충만한 상징의 숫자이므로 귀신이 많고 강하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귀신이 들렸던 사람은 더러운 귀신이 들렸을 때보다 더욱 심한 형편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 악한 세대가 그렇게 된다고 선고 하셨습니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지팡이교회의 현실을 들여다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교회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지 아니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세상의 욕심을 위해서 세상의 통치를 좋아하는 나를 아십니까?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은혜를 받기 전보다 더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향해서 말씀하여 주신 말씀을 정리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직접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나의 왕이 되어 주셨습니다. 진정으로 나의 왕으로 모셨으면 예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읍시다.

 

교훈과 적용

 

1.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이적과 기적들을 보고서도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하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2.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할 때 예수님은 왜 악한 세대라고 하면서 요나의 표적과 남방 여인을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3.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볼 때 예수님은 어떻게 책망을 하시고, 나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4. 예수님은 악한 세대를 귀신을 사용하여서 설명하십니다. 마치 이 세대는 귀신 들린 사람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 시대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시기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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