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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28:11-16
강설날짜 2020-07-05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qvxQ3_s1hcA&t=222s

드디어 바울이 로마에 입성하다(행28:11-16)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참된 믿음으로 합니까? 진짜처럼 보이는 짝퉁과 같습니까?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타락하면서 짝퉁 신자가 많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가짜로 믿고 있는 자들이 거짓으로 고백하며 교회 안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도록 한 목회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서로 경쟁하며 세상의 기업처럼 성공자 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바르게 전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성장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건물을 보면 십자가가 많이 보인다고 합니다. 서로 자신들의 예배당이 좋다고 하면서 건물 맨 위에 경쟁하듯 십자가 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십자가 탑이 나쁜 것입니까? 예배당을 알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좋은 의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교회를 자랑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서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인데도 서로 경쟁하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합니다. 거룩한 공교회는 신자들이 서로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한 몸 공동체인 교회는 서로 성도의 교제를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떠합니까? 세상 기업처럼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 안에서 장사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참된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입니다. 사도 바울은 엡4:23-24절에서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 모이는 공동체로 새 사람을 입은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우리와 같이 새사람을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전신갑주를 입기를 소망합니다.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도록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더욱 든든한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광풍 때문에 바다에서 14일 동안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사건이 있는 가운데 백부장은 수영을 할 수 있는 자들부터 섬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수영하지 못하는 자들은 배의 물건에 의지하여 가도록 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276명이 안전하게 도착한 곳은 멜리데 섬이었습니다. 모두 생명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구원받았습니다. 섬에 안전하게 도착한 사람들을 위해 멜리데 원주민들은 불을 피워 따듯하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원주민들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주민으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가운에 바울은 나무 한 묶음을 불에 올려놓고자 했습니다. 바로 그때 놀란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어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원주민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공의가 바울을 죽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의 값을 치른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바울은 뱀을 불에 던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바울은 생명에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위기에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치명적인 독사라도 바울이 로마로 가지 못하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복음이 전해질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명자가 사명을 감당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공의가 바울을 심판한다고 생각했던 원주민들은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온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보블리오는 자신의 토지에 머물도록 배려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블리오를 통해 멜리데 섬에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왜 그런지 아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보블리오의 아버지는 열병과 이질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쉽게 치료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보블리오 아버지가 누워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안수를 통해 병으로부터 회복되도록 했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고친 것을 알고 있는 멜리데 원주민들은 사도 바울을 찾아 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분들을 거절하지 않고 고쳐주었습니다.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보낸 바울은 로마로 가야 했습니다. 그때 원주민들은 고마움과 감사의 표시로 음식과 필요한 경비를 바울에게 주었습니다. 말씀 다시 생각해 보았으니 오늘 말씀을 잘 들음으로 장성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드디어 바울이 로마에 입성하다”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입성하기 위한 길은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멜리데 섬에서 어느 정도 있었다고 11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까?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바울은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보낸 기간은 3개월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바울이 겨울을 보낸 후 탄 배는 알렉산드리 소속의 곡물 화물선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화물선의 머리 장식이 어떠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배의 앞부분에 부착된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였습니다. 디오스구로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을 뜻합니다. 여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쌍둥이 아들의 이름은 카스토르와 폴룩스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쌍둥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디오스구로라는 명칭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고 다닌 것입니까? 폭풍 가운데에서도 안전하게 해 주는 행해의 수호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전의 배도 알렉산드리아 소속이었기 때문에 같은 모양이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광풍으로 곤경에 처한 276명을 돕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276명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지팡이 교회가 믿는 신은 사람이 만들어낸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심으로 믿도록 하셨습니다. 멜리데 섬에서 276명이 함께 로마로 출발했는지 기록은 없습니다. 저자는 그들보다 바울이 어떻게 로마로 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누가는 디오스구로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누가 안전하게 지키시며 바울을 로마로 인도하고 보호하고 있는가를 알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멜리데 섬에서 출발한 배는 어디서 3일 동안 정박했습니까? 12절을 보시면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수라구사였습니다. 이곳은 당시 시칠리아 섬의 수도였으며 두 개의 항구가 있었습니다. 이 섬은 아덴과 같은 명성이 있는 곳으로 대형 극장과 아폴론 신전이 있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덴과 같은 명성을 알 수 있는 것은 “제국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도시”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로마가 이 섬을 점령하기 위해 3년간 전쟁하였습니다. 로마의 맹공격에도 수라구사는 전략적 위치와 튼튼한 요새로 견디다가 결국 정복되었습니다. 참고로 수라구사는 유명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왜 이섬에서 3일 동안 머물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다시 태풍을 만났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짐을 내리고 새로운 짐을 싣고 가기 위해 3일 동안 정박한 것 같습니다.

 

알렉산드리아 곡문선은 수라구사를 출발하여 어디고 가고 있었습니까? 13절을 보시면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레기온이었습니다. 레기온은 이탈리아에 속한 섬으로 장화의 발가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루 동안 정박했습니다. 그런 다음 알렉산드리아 배는 보디올로 갔습니다. 바울이 안전하게 로마로 입성할 수 있도록 순풍이 불었습니다. 그전과 다른 모습을 보면 바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견고한 돌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충실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 같습니다. 보디올은 “작은 샘”이라는 뜻으로 바울은 이제 로마에 더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더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탈 필요가 없었습니다. 보디올과 로마의 거리는 220킬로미터 거리로 마치 남양주에서 대전의 거리라고 생각됩니다. 어른이 발걸음으로 일주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인이라 약간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보디올에 머무르는 동안 그곳에서 신앙생활 하던 현지 형제들이 바울을 초청했습니다. 14절을 보시면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보디올은 그 당시 국제적인 항구도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정착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던 형제들이 바울을 초청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유는 보기 드문 것으로 아마도 로마 군사와 동행했을 것입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광풍 가운데 바울이 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대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인이라 약간의 자유를 준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파하지 않았지만, 이미 기독교 신자가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믿고 신자들이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한 것 같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바울은 일주일 동안 형제들과 교제했습니다. 형제들은 바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온 것을 알고 있는 형제들은 기쁨과 감사를 하며 환영했습니다. 형제들이 바울 자신을 환영해 주니 마음이 든든해졌을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잘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원문을 생각해 보면 황제나 장군을 맞이할 때와 같은 환영이었습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입성하는 장군과 같았습니다. 낯선 장소에서 바울은 환영을 받으며 로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로마의 끝에 도착한 바울이 중심부로 가기 위한 교제입니다. 바울은 귀한 교제를 통해 로마를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들과 교제한 바울은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로 요약합니다. 아마도 로마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요약적 진술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오고 있다는 소식은 빠르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던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마중 나왔습니다. 15절을 보시면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바울은 일주일 동안 보디올에서 머문 후 도보로 로마로 향한 여행이었습니다. 로마로 오면서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에서 마중하러 나온 형제들과 교제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 여행을 하지 않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입성하고 있는 가운데 형제들이 먼 거리까지 마중하러 왔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서로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가는 분명하게 그곳에서 즉 로마에서 신앙생활 하는 신자들이라고 언급합니다. 이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형제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 같지만 공동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공동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형제들의 진심 어린 환영은 바울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담대함은 이처럼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의 사역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자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한 교제는 큰 힘과 용기 그리고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관심사보다 하늘을 향한 푯대를 바라보았습니다.

 

형제들과 교제한 후 바울은 드디어 로마에 입성했습니다. 16절을 보시면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긴 여정을 통해 바울은 로마에 입성했습니다. 율리오 백부장은 사도 바울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과 함께 따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바울을 감옥에 잡아 가두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자유를 누리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도주할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랬다면 멜리데 섬에서 원주민들과 생활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여러 차례 도주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로 오기 위해 열심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로마로 가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로 오늘 길에서 그 어떤 것도 바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막는다고 막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는 파급력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탄압할수록 더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입니다. 참으로 신비롭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더욱 믿음을 굳세게 하심으로 세상 사람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믿도록 하십니다. 바울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 형제들과 교제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로마로 입성하는 것을 강설로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바울이 로마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멜리데 섬에서 석 달 동안 겨울을 보낸 후 안심하고 항해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알렉산드리아 곡물선을 타고 로마로 향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배는 시칠리아에 있는 수라구사에 입항했습니다. 그곳에서 3일 동안 있고 난 뒤 레기온을 거쳐 보디올에 도착합니다. 보디올은 이탈리아의 끝에 위치합니다. 마치 장화의 끝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형제들과 일주일 동안 교제를 했습니다. 로마로 가기 위해 바울은 그들을 통해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 후 바울은 로마로 향했습니다. 바울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로마의 형제들은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마중 나왔습니다. 로마의 형제들은 먼 거리까지 와서 바울을 맞이했습니다. 이미 로마에는 신자들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교제하며 로마로 함께 왔을 것입니다. 바울을 환영하는 것은 신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보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경쟁하는 것처럼 교회도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라고 하면서도 세상의 기업처럼 성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도 합니다. 바울을 맞이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바울이 잘못되면 자신들도 어떻게 될지 모를 수 있습니다.

 

드디어 바울은 형제들의 환영을 받으며 로마에 입성했습니다. 세상의 중심부에 도착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토록 도착하고자 했던 로마였습니다. 바울은 도착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을 것입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백부장의 도움으로 약간의 자유를 얻으며 일반 주택에서 머물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경비는 당연히 바울이 해결해야 했습니다. 아마도 로마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던 형제들이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바울과 동행한 분들과 함께 필요한 경비를 벌었을 것입니다. 약간의 자유로움을 누리는 가운데 로마 병사와 함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사도로서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가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잘 만들어 놓은 도로를 이용해 복음이 세상으로 전파되는 것을 보면 놀랍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과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믿음은 같아야 합니다. 같은 신앙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지만, 배도의 시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바울을 맞이하러 온 형제들과 같은 믿음이어야 합니다. 시대는 달라도 하나님을 믿는 것은 같아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힘든 시대에 교회는 하나된 신앙 고백을 하면 굳건한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참되게 믿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자신을 헌신한 일꾼이었습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드디어 로마에 입성한 바울의 마음을 각자 생각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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