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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계2:1-7
강설날짜 2020-07-19

사랑을 잃어버린 정통주의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말씀1(계2:1-7)

 

오늘부터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오늘날 교회가 알아야 할 기록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나아갈 것인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현재의 교회는 밑바닥까지 추락한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에 일곱 교회에 보내어진 편지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일곱 교회는 사도 요한이 개인적으로 밀접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곱 교회에 편지는 엄밀하게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단지 일곱 교회에 대한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입니다. 특히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반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각 편지의 메시지가 각 지역 교회만을 위해서 주어졌다기보다는 보편적으로 더 많은 지역의 교회에 주어진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그 당시만이 아니라 재림의 주가 오시기까지 모든 교회에 주어진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항상 우리에게 심오한 문제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타락한 인간에게 온전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다 보니 이 세상과 구별된 교회라도 심오한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인 저는 일곱 교회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이 무엇이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장단점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분부하시고 책망하신 것을 가지고 지팡이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지향하며 하나님 나라를 구현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곱 교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교회에 필요한 권면과 경고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참된 말씀으로 이기는 신자에게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는 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분별해 보시기를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는 사도 요한이 감독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설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를 감독하며 에베소 교회에서 주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일곱 교회를 통해 가르치고 책망하고 인도해야 하는 감독이었습니다. 그러면 각 교회는 다른 교회입니까? 교회는 하나라고 했습니다. 하나의 예배당에 모든 신자가 모이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지역에 교회로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처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에베소,서머나,버가모, 두아디라,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들은 사실상 하나의 단일한 교회이며, 나아가 이 일곱 교회는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여러 이방 지역들에 흩어진 교회들과 더불어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제각각 독립적인 별개의 교회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의 모든 교회를 통일한 의미를 소유한 하나의 교회로 보았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 교회들은 별개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인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오늘은 일곱 교회 중 에베소 교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에베소는 상업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특히 에베소는 로마 원로원에서 임명한 감독 또는 지사라고도 할 수 있는 장관이 와서 통치하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아시아의 수도는 버가모였지만, 실질적으로 에베소가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순회 재판소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도시였기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중심지였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여신상이 있어서 미신이 성행한 지역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교회의 사명을 다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아데미 신상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를 섬겨야 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에베소 교회 예배당은 다 폐허가 된 현실입니다.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지만 지금은 조그만 촌락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에베소는 늪 같은 평야에 있는 에베소만으로부터 약 13킬로미터 거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네게서 그 촛대를 옮긴다”는 말씀처럼 이루어진 것을 보면 쓸쓸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사도 요한이 세운 교회입니까? 우리는 사도행전을 강설로 들었기 때문에 누구인지 아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세운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3개월 동안 변론했습니다.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를 변론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을 떠나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학문과 토론을 하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 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사도 바울의 열매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좀 더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에 올려진 행18장과 19장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사도 바울 후 디모데가 사역을 하다가 사도 요한이 그 교회를 담당하여 사역했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나중에 구원받은 백성은 확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전진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한번 1절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편지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 사이에 다니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에 계시가 된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묘사입니다. 여기서 붙잡는다는 의미는 단순히 잡는다는 의미를 넘어 요동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는 돌보는 목회자요 감독이었습니다. 요한이 돌아보는 교구(일곱 교회)의 머리와 같은 것처럼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 하나를 놓고 책망하시면서 너희 교회만 내가 이렇게 관계하고 있는 것만 아니라 모든 교회를 직접 감독하고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는 에베소,서머나,버가모,두아디라,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 교회 모두를 왕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통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에베소 예배당은 폐허가 되었지만, 참되게 믿는 신자는 한결같이 돌보고 계십니다. 이런 것을 알고 있다면 지팡이 교회는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교회를 돌보시는 주님께서는 2절과 3절에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2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 그리고 인내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성도의 행위는 전체적인 삶을 표현한 것입니다. 행위적으로는 칭찬받을 만큼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수고가 발 보충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노력의 차원이 아니라 노동을 동반한 최선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에베소 교회는 인내하며 주님을 믿었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며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행29:29-30절을 보시면 에베소 교회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의 출현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에베소 교회는 선한 행위와 수고 그리고 인내로 거짓 교사들을 강하게 대적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교회를 조롱해도 즉 신자들을 조롱해도 참고 버티며 주님의 교회를 믿고 지장명령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선한 행위가 무엇이었습니까? 악한 자들 즉 거짓 교사, 자칭 사도라고 하는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교회의 신자를 보호했습니다. 그들을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미워했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 즉 죄를 미워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의 행위를 미워한 것입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자신이 떠난 후 흉악한 이리가 너희들에게 들어와서 양 떼를 아끼지 않고, 자기를 좇게 하려고 잘못된 말로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미리 알려주었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는 말씀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바울이 거의 3년 동안 에베소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잘못된 가르침에도 행위와 수고 그리고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짓 교사는 6절에 의하면 니골라당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체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구인가를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계2:14-15절의 의하면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음행의 생활을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무분별한 방종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는 아주 부유한 도시였고 학문적으로도 높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길을 선택한 가짜들이 교회를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가짜 교사들은 자신이 성령의 대변자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목적으로 자신을 위한 행위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만 있지 않았고 고린도 교회도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초대 교회는 가짜 교사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시대입니다. 자신을 참된 교사를 넘어서 하나님이라고 하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시대입니다. 참으로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칭찬하기도 하였습니다. 요한이 본서를 쓰고 약 15년 후에 이그나티우스는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여 그들이 어떤 이단에도 ‘발붙일 곳’을 내주지 않은 것을 칭찬했었습니다. 오늘날 사도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사도들의 제자인 교부들은 사도적인 기능이 사도 시대의 종말과 함께 중지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오늘날 사도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참으로 분별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자신을 사도라고 하며 말과 가르침으로 힘들게 하면 에베소 교회는 과연 그런가?하며 시험에 보았습니다. 거짓 사도가 스스로 자신이 거짓임을 드러내도록 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은 흉악한 이리와 같습니다. 이리는 양떼를 돌보지 않고 잡아먹는 악한 자입니다. 양털과 같은 옷을 입고 카리스마 넘치는 가르침과 옥 구슬과 같은 음성으로 유혹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하는 시대에 오히려 이단들에 속한 자들이 거짓 복음에 속아 가고 있습니다. 거짓 복음에 속은 자들은 기존 교회보다 성경을 더 잘 알고자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이들은 악한 영에 속한 자들로 보아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도 에베소 교회처럼 지적인 능력 즉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판단하려고 하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충분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재판을 판결하는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의 말을 토대로 헌법에 따라 결론을 내야 합니다. 그런 것처럼 교회는 성경을 통해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인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참된 주님의 일꾼이 많기를 소망합니다. 특히 참된 일꾼 중에 목사가 많아야 할 시대입니다. 사실 목사가 많은 시대입니다. 하지만, 진실한 목사가 많은가 할 때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일꾼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주신 특별한 계시인 성경을 통해 일꾼들을 쓰시고 있습니다. 거룩한 말씀과 빛을 나타내야 할 교회를 이 세상에 있도록 하시며 신자들을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며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길을 따라가지 아니하며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요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거짓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교회를 지키었습니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주님을 신자들을 의미하는 공동체입니다. 건물을 지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 신자가 이리에 넘어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지팡이 교회는 온전한 하나님 말씀을 전함으로 이리로부터 신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에베소 교회처럼 이리로부터 교회를 보존하며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는 모든 신자가 다 각각 목사요 장로요 교사는 아닙니다. 많은 신자 중에 일부가 목사요 장로요 교사가 됩니다. 내가 스스로 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신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높아지고자 선택한 길은 결국 교회를 무너지도록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말씀에 나 자신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사도 요한은 3절에서 에베소 교회가 잘하는 것을 칭찬합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는 건전한 덕이었습니다. 이리로부터 교회의 순결성을 지킨다는 것을 어렵습니다. 이리로부터 고통을 피하려면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그렇지만 에베소 교회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순결성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또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한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교회였습니다.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행위와 수고 그리고 인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3절은 2절에서 나타난 사실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신앙의 정절을 지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는 황제 숭배를 강요받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심한 박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을 보면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우상숭배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을 보면 교회로 존재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영지주의 이단들의 도전도 많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복음에 확고하게 서서 정통 교리와 복음을 반석과 같이 지키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는 쇼와 같은 행사와 개그맨 같은 설교를 통해 사람만 늘리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리의 중요성을 상실한 교회가 생기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인가를 성경 말씀을 통해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믿음의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에 있습니다. 정통 신앙을 왜곡하는 시대에 거짓 복음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교리적 순수성이 탁월했습니다. 왜 교리가 중요한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게으르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외적으로는 정치적 박해와 내적으로는 이단과 거짓 교훈들에 시달리면서 무척 수고하고 피곤했으나 신자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교회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강한 의지와 인내와 온갖 고난과 핍박을 감당해야 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에베소 교회는 칭찬받을 만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은 교회를 향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훌륭한 여러 가지 덕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지 생각해 보십시오.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기에 순종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순종입니다. 성도의 기본 조건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힘이 있습니다. 이리로부터 교회를 보존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팡이 교회는 에베소 교회처럼 행위와 수고 그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는 승리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칭찬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 주 시간에는 에베소 교회가 책망받는 이유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남은 자로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하나의 교회 즉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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