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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1-6
강설날짜 2020-10-11

마태복음을 시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6)

 

마태복음은 신약 성경에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책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생생하게 기록한 저자이기도 합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을 기록하며 유대인과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유대인들이 기다려왔던 메시야였기 때문입니다. 메시야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기기 위해 마태는 하나님 나라와 통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마태는 유대인 중심으로 기록하고 왕이신 예수님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로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읽기가 쉬울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복음서도 중요합니다. 사복음서라고 하는 것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복음서는은 마치 서로 다른 여러 개의 멜로디로 이루어진 주제들이 한데 어울려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교향곡과 같습니다. 마가는 로마인이 수신자이고, 누가는 헬라인이고 요한은 모든 인류입니다. 예수님의 모습도 공관복음서마다 다릅니다. 마가는 종이고, 누가는 인자고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했습니다.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마가는 이적 중심으로 기록했고, 누가는 비유로 요한은 개인적인 만남으로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히브리식 이름과 헬라식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중적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중적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와 마가는 마태를 레위라고 불렀습니다.(막2:14, 눅5:27-29) 레위라고 하는 것을 볼 때 마태는 레위인의 후손일 것입니다.

 

마태에 대해 우리가 온전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쳐준 만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는 자신이 기록한 마태복음에서 세리라고 했습니다.(마10:4) 마태 자신이 세리라는 것을 이야기한 이유는 아마도 사도의 반열은 고사하고 감히 복음서 저자가 될 수 없다는 고백이 담기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리는 로마 제국을 위해 세금을 거두는 자였습니다. 마태는 세리로서 가버나움 근처 세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세리는 같은 민족으로부터 좋은 평판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리는 정직하지 않다고 인식하며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당시 유대는 로마에 의해 직접 다스려지는 총독 정치였기 때문에 각 사람은 인두세와 토지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총독이 직접 책임을 지고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그 외에 잡세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 일을 도운 자들이 세리였습니다. 로마에서 거두라는 금액보다 세리는 더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차액을 남기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마 권력을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리를 매국노와 같은 자로 증오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세리는 율법을 지킬 필요도 없었습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던 이방인들과도 자유롭게 거래했습니다. 언약의 열 가지 말씀 즉 십계명에 있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도 필요 없었습니다. 마태는 세상의 부를 더 좋아하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새로운 세상의 삶을 생활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만난 후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만난 후 세리의 직업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는 말에 응답한 것입니다. 마태는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리라는 직업 즉 부자에서 마태는 자발적으로 가난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복음의 증인 즉 일꾼이 되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태에 관한 것을 알았다면 오늘 본문 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입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라는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호칭은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당신님께서 사람의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것을 전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에게 기름 부은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함께 쓰는 이유는 예수님이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사역을 담당하실 메시야라는 것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천사가 말한대로 예수님께서는 임마누엘로 시작하여 임마누앨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지상명령으로 잘 알고 있는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라”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마태는 유대인들이 알 수 있도록 특별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것은 세계라는 의미입니다. 세계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족보, 계보, 대략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단순히 혈통을 가리키는 족보의 의미보다 역사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세계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역사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경에서 역사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사용된 단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의 내용과 의미를 바꾸어 놓을만한 중대할 일과 사건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죽음과 저주의 역사가 시작할 때, 아벨의 죽음으로 경건한 혈통이 끊어졌으나 셋을 주심으로 경건한 혈통의 이어갈 때, 홍수의 사건의 새 인류의 역사를 시작할 때,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역사적 즉 획일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의미합니다. 특히 다윗과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함으로 하늘과 땅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사건을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그것을 첫 절부터 선언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요 구약에서 예언한 성취자이시며 당신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창세기는 세상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면 마태복음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역사적 족보로서 어떠한 역사적 의의와 정통성이 있는지를 어떻게 기록했습니까? 그리고 어떠한 역사적 인물들이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과 다윗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약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래야 유다의 왕적 정통성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라고 하는 것은 언약의 시조인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다윗은 혈통을 따라 출생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왕권을 회복하심으로 장자 메시야 왕국을 세우실 것을 부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이 복을 받게 될 것을 마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두 인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 인물은 이스라엘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을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말한 것이고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가르쳐준 것입니다.

 

우리는 2절부터 17절까지 족보에 나타난 복음의 메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님께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 역사를 주관하시고 간섭하셨으며 섭리하였는가?”를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분이신가? 즉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경륜과 하나님의 역사와 계획 등을 족보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마태는 족보를 기록할 때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기록하는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열 네 대씩 세 번으로 나누어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단순하게 족보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깊은 의도와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 세 계열로 이루어진 단락들은 시대적인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마태가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는 시대적인 구분을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첫째는 2절부터 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서 다윗왕까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정시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둘째는 7절부터 1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왕에서 바벨론 포로까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왕정시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12절부터 1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포로기 시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상당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태가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태가 보기에 성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인물을 누구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태를 통해 우리는 아브라함, 다윗,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은 바벨론 포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태는 족보를 통해 구약 성경 전체를 압축하여 독자들이 알기 쉽게 했습니다.

 

마태가 기록한 것을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 2절부터 6절까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가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의 족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나라가 형성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네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족보와 같이 이스라엘 족보도 비슷합니다. 그것은 족보에 여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가 기록한 족보에는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들은 이방인이었고 유대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정한 여인들이었습니다. 마태는 여인들을 족보에 기록함으로 무엇인가를 나타내고 전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이방인 여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방인 여인의 이름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입니다. 대체로 들어본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말은 가나안 사람 즉 이방인으로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그의 후손을 자기에게서 유지하기 위해 부적절한 관계를 한 여인이었습니다.(창38:11-14) 이러한 속임수의 열매가 우리가 믿는 주님이신 예수님이시며 그리고 예수님의 선조가 바로 이런 사람임을 기록한 것입니다. 라합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여리고 출신이며 기생이었습니다.(수2장) 라합은 가나안 정탐꾼이었던 사람들을 도와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신약 성경 즉 히브리서에서 라합은 믿음의 모델로 등장하기도 합니다.(히11:31) 믿음이 있는 기생 라합이 우리 주님의 선조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룻은 도덕적으로 네 여자 중에서 가장 문제가 없는 선한 여자이긴 하지만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이방인 출신으로 근친상간의 죄를 지은 롯의 후손입니다.(창19장) 그래서 그런지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한 종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방 여인이 다윗의 할머니가 되었고 우리 주님의 선조였습니다. 마태가 마지막으로 기록한 이방인 여인은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마태는 밧새바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우리아의 아내라고 간접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윗의 합법적인 아내가 아니므로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태는 숨기고 싶은 역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태는 족보에 기록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어떤 인간의 공로나 의를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메시야의 혈통이 사람의 실수에 대한 하나의 초월적인 회복과 전적인 은총이라는 구속사의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연인을 기록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는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 즉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허물 많은 이방인 여인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임마누엘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방인 여인들을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인종을 초월하시며 유대인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방인 여인은 대체로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비정상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을 극복하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죄가 있다 하더라도 정결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요구하시는 것은 회개함으로 정결한 주님의 일꾼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똑하고 능력 있고 모든 세상적인 자격을 갖추어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자격이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사랑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사랑에 자신을 헌신하며 생활해야 합니다.

 

마태는 여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여인이면 당연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의 아내 라헬과 레아가 족보에 들어가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여인들이었습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의 조상을 족보에 넣지 않고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기록했다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깊고도 넓은 사랑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마태는 복음이 무엇인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인 사회에 있어서 한 사람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의미 외에도 그 사람의 인품이나 특성 혹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주실 때도 같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첫 시작을 함으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메시야로 기다리고 있던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는 새로운 시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함으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야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모든 구속 역사의 성취 자라는 것을 족보를 통해 기록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해 아브라함과 다윗을 이야기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유대인의 조상으로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삶을 생활한 위대한 조상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었습니다. 하여튼 아브라함과 다윗은 언약과 관련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약을 성취하신 메시야였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족보를 통해 예수님의 정통성을 이야기합니다. 구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 것입니다. 마복복음 1장을 읽어보면 낳고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쉽게 넘어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마태는 열네 대씩 세 번으로 나누어 기록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중에 2절부터 6절에 나타나 있는 인물 중 중요한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고 정결한 여인보다는 부정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야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메시야를 믿는 지팡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을 이해하며 주님의 사랑을 아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록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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