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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20-02-23

사도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에 서다(행23:1-11)

 

한국 최초의 교회를 아십니까? 서상륜과 서경조 형제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긴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는 1883년 설립된 소래 교회였습니다. 그 후 많은 교회가 생기었지만, 일본 강점기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북한 지역 중에 평양이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다면, 남한은 광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광주 최초의 근대병원 제중원이(현 광주 기독병원) 1905년에 개원합니다. 그런 후 수피아 여학교, 북문안 교회가 설립됩니다. 이렇게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광주를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들은 부활을 소망하며 양림동 묘역에 잠들었습니다. 많은 선교사 중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서평 선교사입니다. 제가 자주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잘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녀는 한국인처럼 생활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서서평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한센병 즉 소외당하는 자들의 어머니였습니다. 서서평은 복음을 위해 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영양실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광주 시민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주 최초의 시민 사회장으로 주님의 품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이처럼 선교사들의 노력은 광주 최초의 목사가 배출됩니다. 그는 깡패였습니다. 최흥종은 흥미로 복음에 관심을 보이다가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 후 선교사와 생활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최흥종은 포사이드라는 선교사를 만나면서 인생이 완전히 변하게 됩니다. 목포에서 오는 포사이드를 마중 나가던 중 최홍종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봅니다. 길에 쓰려진 한센병 여인을 보고 있는데 포사이드 선교사는 자신의 말에 태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최흥종은 놀랍니다. 바로 그때 선교사는 길에 떨어진 한센병자의 지팡이를 주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워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습니다. 목회자인 저라도 망설였을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최흥종은 깊은 생각을 합니다. 선교사는 말에 병자를 태우기도 하는데, 왜 나는 지팡이도 주워주지 못하는가였습니다. 그 후 최흥종은 한센병자들이 치료될 수 있도록 제중원에서 섬기었습니다. 그러던 중 1921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합니다. 목사가 된 최흥종은 광주에서 목회 활동을 합니다. 그 시대는 일제 강점기였기 때문에 목회는 쉽지 않았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한 후 그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세상과 단절을 했지만, 무등산 산속에서 신림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예배당을 세운 장소는 절 대지였습니다. 그곳에서 최흥종 목사는 결핵 환자와 30명 정도와 생활했다고 합니다. 또한, 고아와도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왜, 입니까? 이웃을 하나님처럼 섬김으로 복음을 증거로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성도가 깨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현실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최흥종은 86세에 병으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죽음을 알고 있는 광주 시민은 1966년 5월 18일 사회장으로 마지막 길을 보내어 주었습니다. 복음은 이처럼 낮은 자의 섬김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섬김입니다.

 

서서평과 최흥종 등이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놀라운 신비의 책입니다. 신비의 책인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알기 위해 지팡이 교회는 강설을 듣고자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사도 바울이 누구인지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한 신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한 누가도 중요합니다. 하여튼,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 오직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일꾼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헌신 때문에 오늘날 내가 복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늘도 말씀을 통해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저번주 강설은 “바울이 천부장에게 나는 로마 시민권자”라고 말한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구출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예루살렘을 떠나도록 했던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바울은 소동을 일으킨 자들에게 자신이 아나니아를 만난 사건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잘 알 수 있도록 누가는 사실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생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잘 알지 못하면 위험한 것입니다, 대구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교단마다 이단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이때 지팡이 교회도 성경 말씀에 충실할 수 있도록 잘 배워야 할 것입니다.

 

선민사상으로 우월한 유대인들은 바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천부장의 군인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성경은 이웃 사랑을 말하지, 폭도로 돌변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태가 심각한 것을 느낀 천부장은 바울을 영내로 들어가게 한 후 심문하도록 했습니다. 심문을 통해 소동이 일어난 사건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백부장에게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을 알립니다. 놀란 백부장은 천부장에게 보고합니다. 천부장은 정말 그러한가를 알고 싶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에게 와서 정말 그러하냐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러하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들은 천부장은 나는 많은 돈을 들여서 시민권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천부장의 이야기를 들은 바울은 나면서부터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천부장은 자신이 한 행동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행23:26-27절에서 거짓 공문을 보냈었습니다. 천부장은 왜 이런 소동이 일어났는가를 알기 위해 이튿날 제사장들과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그 앞에 세웠습니다.

 

지난주 강설을 이해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은 그것에 이어서 “사도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에 서다”라는 말씀을 통해 풍성한 은혜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비공식 공회 앞에 선 바울은 먼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입니다. 천부장에 의해 끌려온 바울은 유대인의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심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천부장이 이렇게 한 이유는 심문을 통해 바울을 죽이고자 했던 것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공회 앞에 선 바울은 자신 있게 주목하여 ‘여러분 형제들아’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소동이 일어난 후 변론할 때 ‘부형들아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정중한 인사였습니다. 하지만, 공회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공회는 최고의 기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형제들아라고 사용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러면서 같은 형제로서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라고 했습니다. 심문을 받는 바울 입장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말한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표현은 너희가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에 대한 반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권력에 무릎을 꿇지 않고 양심에 따라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한 양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즉 믿음에서 난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으로 말한 바울의 이야기를 들은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더한 말을 했습니다. 2절을 보시면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입니다. 대제사장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이었습니다. 그러면 법에 따라 심문을 해야 합니다. 선한 양심으로 심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2절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바울이 만난 아나니아와 같은 인물입니까? 오늘날에도 같은 이름이 있는 것처럼 그 당시에도 그러했습니다. 하여튼 대제사장 아나니아로 행22장의 아나니아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죄가 완전하게 드러나기 전에 ‘입을 치라’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교묘한 수단으로 십일조를 착복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친로마 정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선한 양심이 없는 자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바울을 심문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는 가운데 바울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회칠한 담을 사용하여 말합니다. 3절을 보시면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불공정한 재판에 선한 양심으로 맞서는 것입니다. 회칠한 담이라는 것은 겉은 깨끗한 것 같으나 속은 썩어 빠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나니아의 위선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23:27절에서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 즉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종교지도자들에게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더 알고 싶으면 홈페이지를 보십시오. 선한 양심으로 재판을 하지 않는 아나니아에게 바울은 당당하게 선한 양심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나니아에게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냉정하고 차분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것입니다. 바울은 회칠한 담 즉 무덤으로 들어가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실제로 아나니아는 암살을 당합니다. 마치 친일파와 같은 자들이 당한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을 들은 공회원들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4절을 보시면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고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대제사장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공회원들로부터 비난과 욕을 당하는 바울은 선한 양심 즉 하나님을 의지하며 5절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입니다. 바울은 오랫동안 이방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와보니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을 치라는 자가 아나니아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문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 의견이 있으나 아마도 대제사장은 급히 일시적으로 소집된 공회에 왔기 때문에 온전하게 옷을 입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함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지금 알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전달해주기 때문에 더 자세한 것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인쇄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아나니아가 선한 양심으로 심문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으로 공회에 선 바울은 화제를 바꿉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을 바리새인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한 것입니까? 부활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시면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입니다. 아니니아는 사두개인으로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바리새인은 부활을 소망했습니다. 사두개인은 로마의 정책에 호의적이었고, 바리새인은 로마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사두개인은 천사와 마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바리새인은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은 부활을 꺼낸 것입니다. 바울의 소망은 부활입니다. 바울은 부활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는 신학적인 견해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았던 바울은 이것을 이용하여 논쟁이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논쟁이 되도록 함으로 바울 자신의 주장은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꽃이요 소망이며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으로 인해 공회는 다툼이 일어납니다. 7절을 보시면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우리말에는 다툼이지만, 큰 논쟁을 벌인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부활로 인하여 크게 두 패로 나뉘었습니다. 자신들이 서로 올바른 주장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10절을 보시면 그들의 신학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은 현실 지향적이며, 부유한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내세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바리새인은 내세를 인정하며 부활과 천사 그리고 영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세상의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세상의 것을 좋아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한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산헤드린 공회의 소수 인원은 바울의 석방을 주장했습니다. 서기관은 대체로 율법 전문가로서 바리새인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석방하자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9절에서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입니다.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하도록 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바리새인이 주장하 것이 아니라 일부가 일시적으로 바울을 지지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안전하게 로마로 갈 수 있도록 이끄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받도록 함으로 소동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알고자 했지만, 오히려 다툼은 더 커졌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했습니까? 10절을 보시면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일부 소수 인원의 발언은 더욱 분쟁이 일어나도록 하게 한 것 같습니다. 공회는 전쟁터와 같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명령을 한 것입니다. 공회의 분쟁으로 바울이 찢길 것을 두려워하여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영내로 데리고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를 통해서도 바울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이 로마에 전하여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섭리로 통치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 ‘빼앗아 가지고’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실임을 잘 표현하는 것입니다.

 

공회에서 일어난 사건은 바울에게 있어서 고난 중의 고난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공회에서 일어난 그 날 밤에 음성으로 바울에게 깊은 위로와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행9:15절에 대한 말씀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입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다시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방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완전무장 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말씀하심으로 진리를 증언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에게 보내리라는 말씀은 그 당시에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를 구원하도록 하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천부장은 공회를 소집해 바울을 심문하고자 했습니다. 소동이 일어난 이유를 알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공회의 다툼이 크게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바울이 말한 이유였습니다. 그것은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신학은 서로 달랐기 때문에 심한 분장이 일어난 것입니다. 공회는 선한 양심으로 이스라엘의 최고기관이 되어야 했지만, 자신들의 욕심과 야망에 의해 세상의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그들은 바울의 문제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함으로 산헤드린 공회는 사법적인 일을 잘 감당해야 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을 두고 그들은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바울의 기본적인 사상, 심오하게 말한 근거를 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재판할 수 있는 양심과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열악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여 주신 선한 양심을 통해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할 수 있도록 성경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단들은 성경을 왜곡하여 전하기 위해 강압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더욱 하나님을 알고자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반대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교회는 더욱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과 같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만 담대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힘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대제사장 아나니아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증거 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위한 십일조를 착복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붙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 반대로 바울은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에 합당한 길을 가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변질되지 않으며 주의 길을 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성경을 사모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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