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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16:16-19
강설날짜 2019-07-28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rKT6ITO9AU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친 후 실라와 함께 바울이 옥에 갇히다.(행16:16-19)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a7c000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40pixel, 세로 327pixel 한국인을 위한 최초의 여성 선교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저도 신학을 하였지만,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남서울은혜교회당에서 홍정길 목사님께서 자신이 서서평 선교사님으로부터 섬김을 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저는 서서평 선교사님을 가끔 생각합니다. 한국 이름은 서서평이지만, 그녀는 독일인 출신으로 본명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입니다. 한국인을 자신의 몸처럼 섬기고 사랑한 분이었습니다. 독일인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카톨릭에서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장로교 예배를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카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간호사로 봉사 활동을 많이 하던 중, 조선 즉 한국에 치료를 받지 못하여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선교사로 지원하여 왔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녀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만, 주여!입니다.

 

광주 지역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섬기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한국인을 더 사랑한 서서평 선교사였습니다. 선교를 위해 한국어를 배웠고, 옷도 한국식으로 입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외국인이었지만, 한국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봉사의 섬김을 하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도 많았지만, 사람들이 꺼리는 나환자분들을 섬기었습니다. 고아와 과부 등을 섬기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나환자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서서평 선교사를 1934년 54세에 당신님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a7c60e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35pixel, 세로 447pixel 의 품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녀가 사망한 후 장례 길은 울음의 바다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것을 옆의 사진이 잘 보여줍니다. 수많은 여성이 소복을 입고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장례식은 광주 최초의 시민 사회장이었습니다. 외국인 선교사였지만, 서서평 선교사의 업적은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다운 삶을 교회요 성도로 드러낸 것입니다.

 

한국인을 사랑한 선교사 서서평이 있었다면, 바울은 이방인을 자신의 몸처럼 섬긴 서서평과 같은 사역자였습니다.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의 길을 걸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은 이방인을 사랑하는 바울에게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통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유럽 최초의 기독교인을 전도하였습니다. 그녀가 루디아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지난주 강설 즉 줄거리가 떠 올라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날 터기 지역에서 마게도냐(오늘날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으로부터 독립)로 이동하였습니다. 바울은 터키 지역인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를 향해 배로 이동을 하기 위해 사모드라게와 네압볼리로 갔습니다. 두 장소는 마게도냐를 가기 위한 정거장과 같은 항구였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바울 일행은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 성에 도착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인천항과 같은 것입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이었던 빌립보도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곳은 로마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식민지인이라도 조건 없이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라고 하는 이유는 아시겠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아들 이름을 사용 한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으면 저번 주 강설을 참고해 주십시오. 바울은 빌립보 성에서 휴식하던 중,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위해 강가로 간 것입니다. 강가는 기도하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여인들을 본 것입니다. 여인들은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있던 여인들에게 남자가 같이 참여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바리새인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여튼, 바울은 그곳에서 선교의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바로 루디아 성도입니다. 그녀는 두아디라 시에서 자주 장사를 하기 위해 빌립보로 온 것입니다. 부유한 상인이었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과거 바리새인과 같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그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루디아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심은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루디아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도록 나를 일꾼으로 즉 청지기로 사역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루디아와 그 집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루디아는 강권하여 자신의 집에서 유하도록 했습니다. 바울이 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거점이 되어준 것입니다. 루디아는 복음을 위해 섬긴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복음을 잘 전하고 있는 바울에게 고난이 온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영광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을 잘 전하고 있던 바울이 사탄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던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그러면 시민들은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감옥에 갇히게 된 사건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전화위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화위복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떠한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이 힘쓰면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 즉 내가 노력하면 좋은 결과 즉 나로 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영광을 받도록 전화위복하도록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은 “실라와 함께 바울이 옥에 갇히다”라는 강설을 통해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씀선포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이 유럽에서 전도할 수 있도록 루디아를 준비하셨습니다. 안전한 휴식처를 제공하신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승리할 수 있도록 섭리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오늘 본문과 다음 주 강설을 통해 알 될 것입니다. 사탄이 먼저 싸움을 걸어 온 것입니다. 사탄의 처지에서는 이때가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런지 차분하게 강설을 들으십시오. 오늘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바울 일행은 어느 날 기도하기 위해 가던 중이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전도하기 위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사탄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한 사람을 만나도록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점을 잘 보기 때문에 주인들은 큰 유익을 얻는 즉 금광과 같았습니다. 한 여인을 통해 한 명의 주인만 먹여 살린 것이 아니라 여러 주인을 잘 살도록 한 것입니다.

 

왜, 이 여인이 중요한 것입니까? 그 당시 헬라인들은 신비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아폴로 신전을 지키도록 뱀을 두었습니다. 그 뱀을 비돈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돈은 사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즉 ‘점치는 귀신 들린’ 사람을 이용하여 예언하도록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기 전에 ‘비돈’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종에게 가서 점을 치곤 하였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을 위한 점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귀신 들린 여인을 이용하여 주인들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여인이 귀신 들렸다 해도 좋은 이미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볼 때는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주인들을 위해 돈을 벌어주는 가련한 여인입니다. 그 종은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전도 대상자입니다. 주인들은 점치는 여인을 통해 자신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귀신들린 것을 치료하기보다 자신을 위한 이기주의였습니다.

 

점치는 일을 하는 그 여인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점을 치는 여인이 바울 일행을 따라오면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17절을 보시면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주인들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환장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바른 소리이지만, 주인들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닭과 같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에게 하루만 말한 것이 아닙니다. 18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같이 여러 날” 이야기 즉 예언 한 것입니다. 점치는 즉 귀신 들린 여종의 외치는 내용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것도 ‘소리 질러’ 예언 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놀랬을 것입니다. 점치는 여종이 그동안 했던 예언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여종의 말은 바울 일행의 사역을 잘 정리하여 준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복음으로 드러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귀신 들린 여종은 정확하게 바울 일행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나 잘 하세요”라는 광고처럼 한 것이 아닙니다. 18절을 보시면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그냥 읽어도 ‘진실로 그렇습니다.’라는 마음이 생기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담대함으로 말한 것입니다. 때를 기다린 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한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처럼 바울은 빌립보 성에서 자주 기도하였기 때문에 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날 동안 여종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올바른 소리였습니다. 기분 좋은 음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마음은 ‘심히 괴로워하여’ 그 귀신 즉 여종에게 들어가 있는 귀신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왜입니까? 거룩한 복음이 귀신들린 여종에 의해 증거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종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여튼, 그 여종이 올바른 소리를 할 때 하루라도 빨리 귀신을 몰아내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때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차라리, 복음을 전하기보다 고난을 겪기보다 이 여인을 통해 바울이 돈을 벌 기회일 수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 비돈의 영을 지닌 여종의 주인이 될 기회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전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름으로 귀신을 몰아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낼 때 “나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즉시 점을 잘 치는 귀신은 여종에게서 나왔습니다.

 

바울의 행동을 본 사람들은 놀랬을 것입니다. 또한, 여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던 주인들도 놀랬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19절을 보시면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옥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수입원이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인들은 복음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는가? 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돈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을 “맘몬주의”라고 합니다. 그들과 무엇이 다른 시대입니까? 도긴개긴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귀신만 몰아낸 것이 아니라 돈을 못 벌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들은 환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2차 전도 여행을 같이 하고 있는 누가는 어디에 있고, 디모데는 어디에 있었는가입니다. 이때 디모데와 누가는 왜 핍박의 대상에서 제외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점치는 귀신을 몰아낼 때 그들은 다른 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바울과 실라만 관리에게 데리고 간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 여행을 보면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지만, 고난이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들에 의해 죽을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함께 하면서 당신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귀신들린 여종을 고침으로 고난을 당하지만 오히려 복음이 확장되도록 하는 것을 보면 놀라운 것입니다. 고난이 오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오히려 반대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보아도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로마로부터 그리고 유대교와 이방인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해도 성령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도록 하셨습니다. 참으로 신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탄은 거짓으로 속여 멸망으로 인도하지만, 복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귀신 들린 여종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귀신 들린 상태에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을 속이여 돈을 벌어야 하는데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 복음을 전하는데, 아마도 방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친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을 하면 바울은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도 곧바로 확장돼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여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대상자가 된 것입니다. 늘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늘 행복한 길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늘 행복이 있는 길은 오히려 타락한 종교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난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치면 행복 시작처럼 보였지만 바울은 관리들에게 끌려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마5:11절에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로 개종을 한 서서평도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바른길을 가고자 하는 제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므로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데도 결단해야 합니다. 믿음은 세상에 속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지만, 하나님만 나의 구원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친 후 실라와 함께 바울이 옥에 갇히다.”라는 강설을 통해 나를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성도는 서서평처럼, 바울처럼 힘든 길이라도 구원의 소망을 믿으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섬기어주신 사랑처럼 같은 사랑을 세상에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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