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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20:1-7
강설날짜 2019-11-03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KaR3sXzyfE

바울이 마게도냐와 헬라를 거쳐 드로아에서.... (행20:1-7)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인 성도(신자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참되게 믿는 교회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하나님의 주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믿고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믿는 신자들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이 크게 뉘우치며 믿음, 소망, 사랑으로 지상명령을 감당합니다. 초대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신 지상명령을 감당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여러 지역으로 피신을 하면서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초대교회는 서로 협력하며 도왔습니다.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을 위해 구제 헌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를 보면 개교회주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 타협하면서 교회 성장을 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종교지도자들처럼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중세시대처럼 교황의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해 사도 바울과 제자들은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열정과 열심히 헌신한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신자들은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자들은 정기적으로 모이면서 새 언약의 교회로 조직화 되었습니다. 조직화 된 교회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공적인 시간을 통해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이 예배한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배당에 모여 예배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예배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주님의 선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을 강설로 듣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에게 주신 계시입니다. 계시의 말씀을 통해 교회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당신님)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계시 의존 사색”(고 박윤 목사, 한국 최초의 66권 집필) 하며 바르게 강설해야 합니다. 바르게 강설함으로 단순히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기 때문에 무슨 의미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참사랑은 안 후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아시아와 유럽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전도 여행을 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신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주님의 백성으로 구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한 죽음, 지옥으로부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신자들이 모인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과 진리로 예배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가운데 우리는 지난주 강설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혹시 강설 제목이 떠 오르십니까?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는 기억하실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의 결과”였습니다. 그 전주는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이었습니다. 아데미 여신상을 통해 돈벌이하는 자들에 의해 일어난 소동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연극장에 모인 무리 중 많은 사람이 왜 모였는지 몰랐습니다. 소리는 요란했지만,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유대인들은 알렉산더를 불러내어 우리를 위해 변명하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피해가 생길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메시지로 인해 유대인들은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을 두려워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유대인들을 위한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소동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렸습니다. 알렉산더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하면서 “두 시간” 동안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의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에베소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데미 여신상이었습니다. 이처럼 우상을 믿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더메드리오의 연설로 시작된 소동은 결국 에베소의 서기장에 의해 해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서기장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서기장은 에베소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기장은 소동을 잠재워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로마로부터 어떠한 질책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사람의 자긍심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신전지기라는 것을 통해 자신들이 아데미 여신상을 보호하는 ‘수호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기장은 이번 소동은 근거가 없으니 ‘조용히 해라’는 것입니다. 서기장은 바울이 전한 메시지보다 자신이 더 중요했습니다.

 

소동을 안정시킨 다음 서기장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위해 말합니다. 그들은 “신전의 물건”도 도둑질하지 않았고, “우리 여신을 비방”도 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하지 아니한 자들은 붙잡아 온 것을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 또한 경솔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잘못이 있으면 법정에서 해야 합니다. 에베소에는 합법적인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법정인 소송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민회도 있습니다. 연극장에서 열리는 시민의 회의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소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연극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서기장은 말을 듣고 흩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기장을 통해 소동을 잠재우심으로 에베소에서 복음이 전하여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는 믿음을 소유한 신자들에게 중요합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에베소서를 잘 읽어 보십시오.

 

서기장에 의한 연설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을 잠재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행20장의 첫 부분을 강설로 듣고자 합니다. 행20장은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두 지역을 경유해 예루살림으로 올라가는 과정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여행을 상세하기 기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고별 강설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별 강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차분하게 강설하여 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3년 동안 에베소에서 사역한 후 어디로 이동하였습니까? 1절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마게도냐입니다. 행19장을 배워서 아실 것입니다. 마게도냐로 이동하기 전 바울은 에베소의 제자들을 불러 권면합니다. 아마도 사회적인 압박과 위협이 있을 것을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에베소 제자들도 같습니다. 그럴 때 성도는 지혜롭고, 성실하게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격려하고 권면하며 또한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로 이동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동역자인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먼저 그곳으로 보낸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잘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고자 한 것입니다. 에베소 사역 가운데 가장 극적인 사건의 하나였던 소동이 마무리된 후 바울은 마게도냐로 이동했습니다.

 

마게도냐는 유럽에 속하는 도시입니다. 또한,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베뢰아 등의 도시가 속해 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 도착하자마자 늘 해왔던 방식대로 사역합니다. 2절을 보시면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전도 여행했던 장소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많은 말을 하며 권면한 것입니다.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자주색 장사를 하던 루디아를 만났던 장소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를 통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등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이런 점을 추측하면 마게도냐에 속한 도시를 돌면서 제자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했습니다.(이 지역에서 사역한 내용은 행16장과 17장에 있습니다.) 마게도냐에서 제자들을 권면한 바울은 헬라로 이동합니다. 헬라는 고린도가 위치했던 아가야 속주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아가야는 행18장에서 복음을 이미 전했던 장소입니다.)

 

헬라 즉 아가야로 이동한 바울의 사역에 대해 3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아가야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사역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권면한 것처럼 제자들과 연약한 신자들을 바로 세우며 큰 위로와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기간에 로마서를 작성하여 로마에서 신앙생활 하는 신자들에게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에게 자신이 방문할 것을 준비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체계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복음의 내용을 설명해 주기 위함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장차 로마가 복음 전파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역에 대한 마무리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가야에서 사역한 후 바울은 배를 타고 수리아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바울을 해하려는 음모를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배를 타고 이동할 때 암살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3절에서 ‘공모’라고 기록했지만, 원문을 살려 보면 “필사적인 음모”였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바울은 계획을 수정하여 마게도냐로 돌아서 가기로 작정합니다. 마게도냐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베뢰아, 데살로니가, 빌립보 등을 한 번 더 거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굳건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말씀의 권면을 더 들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수리아는 불행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누가는 바울과 함께 가는 일행을 지명과 관련하여 기록합니다. 4절을 보시면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왜 이렇게 기록하는가입니다. 여기서 일곱 사람은 지난 2년 동안 이방인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궁핍한 신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연보를 냈던 것을 맡아 가지고 가는 사명을 받은 각 교회의 대표자들로 보아야 합니다. 일곱 명의 이방인 신자들은 바울이 공식적인 연보 즉 구제의 헌금(헌상)을 잘 다루고 있다는 보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소바더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로서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합니다. 롬16:21절에 나타난 바울의 친척 소시바더와 동일인인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지만, 동일인물로 보입니다. 아리스다고는 잘 아시리가 믿습니다. 이미 행19:29절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까지 바울을 따라갔으며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하는 데살로니가 출신이기도 합니다.(골4:10, 몬1:24) 세군도라는 분은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한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단지 여기만 나오는 인물입니다. 가이오는 더베 출신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대표합니다.(행19:29). 디모데하면 사도 바울의 제자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디모데를 위해 딤전,후서가 있습니다. 그는 루스드라 출신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대표하는 사역자입니다. 디모데를 잘 설명한 행16:1-3절에 있습니다.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으로 아시아 교회를 대표하며 언제나 바울과 통행한 인물로서 골로새와 에베소교회에 바울의 서신을 전달한 분입니다.(엡6:21, 골4:7, 딤후4:12, 딛3:12). 드로비모는 에베소 출신으로 아시아 교회를 대표합니다.(딤후4:2)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데 고린도를 대표하는 분이 없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가 대표한다고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디모데는 아가야와 고린도 교회에 잘 알려진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먼저 무시아에 있는 항구 도시 드로아에 가서 바울을 기다렸습니다. 예루살렘 신자들이 어려움을 알고 있던 이방 교회들이 모금한 헌금을 전달할 책임자들을 바울은 드로아에서 기다렸습니다. 5절을 보시면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왜 바울은 먼저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드로아에서 기다리는 동안 바울은 무엇을 했습니까? 6절을 보시면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절기인 무교절을 지킨 것입니다. 무교절은 무교병을 먹는 절기입니다. 무교병은 누룩 없는 떡을 말하는 것으로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이용하여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반죽하여 구워 먹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바울은 예수님의 오심과 부활을 생각하며 지켰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 정리해 보겠습니다. 3년간의 에베소 사역을 마치고 바울은 마게도냐와 헬라 즉 아가야에서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본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방문하고 다시 드로아로 돌아온 짤막한 전도 여행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그냥 지역을 다닌 것으로 생각하지만, 바울은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감당했던 사도였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학자들은 주후 57년 초 아가야에서 로마서를 작성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여러 이방인 지역에서 구제 헌금한 것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했습니다. 구제 헌금은 신자들 즉 성도요 교회가 최선을 다해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교회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카톨릭도 교회라고 사용하며, 성공회도 교회라고 합니다. 장로교이든 침례교도 교회라고 합니다. 즉 교회란 하나님을 믿은 신자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즉 그리스도의 지체 된 각 교회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상징해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같은 여행을 하라면 과연 누가 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여기에 주여!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주변 환경이 지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습니다. 역경이든,기쁨이든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 열정은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열정으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는 참된 신앙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현실에서도 바울은 이방인 교회의 구제 헌금을 통해 주님의 교회는 하나라는 것을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에 대한 사역만 관심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을 발굴한 바나바가 있었고, 그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늘 사도 바울을 위한 동역자가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지팡이 교회는 “바울이 마게도냐와 헬라를 거쳐 드로아에서” 일어난 사역을 통해 동역자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험한 세상에서 주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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