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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26:1-12
강설날짜 2020-05-10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다(행26:1-12)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많은 것을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바꾸어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지역사회 확진자가 0명이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 19가 진정되면서 생활 속 거리 두기를 하며 방역으로 전환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태원 클럽에서 일어난 바이러스는 염려와 두려움이 생기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정말 잔인한 바이러스”라고 중앙대책본부장이 말할 정도였습니다.

 

과거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어난 흑사병은 유럽 여러 도시를 초토화 되도록 했습니다. 유럽 나라 중에 스위스가 30%정도 사망한 것을 보면 인류 역사상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였습니다. 가장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돌이킬 수 있도록 일꾼을 준비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노아, 모세 등 여러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신약의 시대는 인류의 구원자이신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는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요즘에 일어나는 코로나도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에게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십니다. 예배가 이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모이기를 싫어하는 시대에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의 전능하신 이름을 경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들이 해야 할 예배입니다. 신자들은 흑사병과 코로나가 주는 교훈을 생각해야 합니다. 잔인한 바이러스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생활 속 거리 두기를 하며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이 고비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태원 클럽발(?)의 중대한 “고비”라고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바이러스에는 민감합니다. 그와 반대로 영원한 지옥과 천국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두려워하는 것이 죄악 된 사람의 마음입니다.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가운데 종교개혁가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렸습니다. 자신의 몸보다 성도의 구원을 위해 목회했습니다. 쯔빙글리도 흑사병으로 죽음의 위기가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의지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심으로 사람은 참된 신앙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쯔빙글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쯔빙글리 시대는 오늘날처럼 전화, 인터넷, 텔레비전 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의 고통과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바이러스가 되어 주었습니다. 흑사병이라는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영적인 바이러스 처방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처방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특별하게 주신 성경책입니다. 성경책을 이용하여 강설(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서신을 통해 신자들과 사람들이 흑사병으로부터 이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죽음과 고통으로부터 사람의 유일한 위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였습니다. 영원한 삶이 무엇인가를 전했습니다. 이처럼 쯔빙글리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을 감당한 위대한 종교개혁가였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성경책에 기록된 하나님을 믿으며 참된 길을 가는 신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이방인의 사도로 준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부패한 시대,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영적인 바이러스가 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길은 고통과 인내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유대인 특히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로마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 죽음의 길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을 말씀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저번 주 강설을 요약하겠습니다. 베스도는 사도 바울의 재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무죄라고 판결해야 했지만, 유대인과의 관계 때문에 사도 바울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받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거절하고 가이사에게 가서 재판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어쩔 수 없이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스도에게 방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아그립바 2세 왕과 그의 여동생 버니게였습니다. 버니게는 이혼한 상태였지만, 근친상간하고 있던 아그립바 왕의 여동생이었습니다. 근친상간은 로마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대였습니다. 베스도는 사도 바울을 어떻게 로마로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황제에게 재판받을 수 있도록 바울에 대한 편지를 보내야 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이 대수롭지 않으면 베스도의 체면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고민을 하는 가운데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찾아온 것입니다. 베스도 입장에서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가이사랴에 부임한 자신이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 대제사장들과 유대 높은 자들이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재판할 것을 요구했지만, 자신은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베스도는 가이사랴에 자신과 함께 가서 고소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와 함께 와 바울을 고소했지만, 로마법으로 죄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문제는 종교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받을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문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울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말에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기회였습니다. 바울의 죄를 찾을 수 없었던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일 바울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청문회와 같은 준비를 했습니다. 청문회에 온 사람들은 베스도, 아그립바, 베니게, 천부장들과 가이사랴의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왕을 위한 선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왕을 위한 청문회를 통해 베스도는 바울을 어떻게 로마로 보낸 것인가에 대한 편지를 준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청문회를 준비한 베스도는 바울에 대해 기초연설을 했습니다. 베스도는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했기 때문에 자신은 그를 로마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베스도의 기초연설을 들은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의 이야기에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26장에서 바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변론하는 사도 바울에게 시선을 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청문회에 모인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된 것입니다. 청문회 주인공은 아그립바였기 때문에 바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기회를 준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마도 현명한 판단을 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기회는 오히려 아그립바 왕이 복음을 믿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것이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변명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변명할 기회를 얻자 가장 먼저 말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2절을 보시면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변론을 정중하게 아그립바 왕에게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고소하는 자들에 대한 것을 아그립바 왕에게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정중하면서도 간결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자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당신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으니 다행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늘 복음만을 전하고자 하는 바울의 심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3절에서 아그립바 왕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당신은 유대인의 풍속과 문제를 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에게 이야기하니 너그럽게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아그립바 왕은 로마 시민권자로 로마에서 양육 받았습니다. 또한, 로마 귀족과 고위층에게 유대인에 대해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바울의 말은 사실로 유대인에 대한 생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양육 받은 아그립바 왕은 결국 분봉왕으로 유대 지역으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여튼, 바울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줄 것을 정중하게 요구했습니다.

 

바울의 강설은 자신에 다한 변론으로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4절을 보시면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바울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것을 유대인이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소 출신이었지만, 학문을 한 것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정신적인 배경이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바울은 성장 배경이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유대 사회에 두루 알려져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바리새인이었고 랍비요 스데반을 죽이기로 한 주동자였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청문회를 통해 선입견을 배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전하고 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과 선입견을 불식시킴으로써 공정한 판단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5절에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바울은 자신을 유대 종교에서 가장 엄한 파 즉 가마리엘 학파에서 바리새인의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선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배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를 섬긴 자였습니다. 바울은 4절에서 유대인도 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내 민족’이라고 했습니다. 나와 민족은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같은 공동체인 나는 ‘우리 종교’에서 가장 엄격한 학문에서 공부했습니다. 바울은 ‘우리 종교’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단순한 외적 의식만 의미하지 않고 내적 경건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이 심문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주신 약속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시면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바리새인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조상들이 말한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란다 함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철저히 뿌리를 둔 것임을 의미합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7절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바울은 유대인이 기다리고 있던 소망 즉 부활을 전함으로 내가 지금 고소를 당하고 있다고 아그립바 왕에게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소망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구약에서 주어진 약속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기에 소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것을 바로 보았습니다. 결국, 그 약속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자들이 자신의 권력의 야망을 위해 자신을 고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야를 믿지 않고 오히려 다른 민족에게 고소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이 온 세계에 전해질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바울이 유대인이 믿는 부활에 대한 소망을 전하는 것은 로마에 대한 반항이나 적대행위가 아닙니다. 또한, 정치적인 문제도 아닙니다. 유대인의 종교적인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으로부터 변론할 기회를 얻는 바울은 더욱 힘을 얻어 적극적인 강설을 합니다. 8절을 보시면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바울은 그동안 자신이 전한 부활을 말했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할 때 한결같이 전한 메시지였습니다. 여기서 ‘당신들’이라고 하는데 청문회에 모인 자들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두 의미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법정에서도 전한 것을 생각할 때 당신들은 유대인과 청문회에 모인 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 당신들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라고 함으로 믿을 기회를 준 것입니다.

 

바울은 9절부터 11절까지 예수님을 대적하던 과거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9절을 보십시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바울은 유대인이 생각하는 부활을 예수님의 부활로 이야기합니다. 바울도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메시야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기 전에는 믿는 자들을 학대하고 죽이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오히려 적대했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함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한편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준주님을 만난 후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신들도 나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말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에는 극적인 전환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강한 설득력을 주는 힘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행했던 과거를 10절에서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과거의 종교는 특히 이슬람은 폭력을 사용하여 사람을 강세로 믿도록 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기독교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예가 십자군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잘못된 신앙을 가진 교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전하고 전통적인 교회는 신앙을 갖도록 폭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바울도 유대 종교를 믿을 때는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거룩하고 의로운 분노라고 생각하며 많은 신자를 가두었고,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모진 박해와 고통을 주었던 인물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11절에 말합니다.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바울의 열심은 유대 지역만이 아니라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있던 동포들에게도 했습니다. 바울의 열심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바울 자신의 열광적인 활동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것은 참으로 지독할 정도였으며 마치 사냥감을 쫓는 자나 적을 섬멸하기 위하여 뒤쫓는 자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심으로 말하면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 했던 유대인들보다 더 능가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감당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베스도로부터 바울에 대한 기초연설을 들었습니다. 그런 후 바울에게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기회를 얻은 바울은 자신에 대한 변론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의 성장과 생활을 누가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까? 유대인들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자들이 나를 고소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소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모두 바라는 소망은 부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전하는 이유로 내가 지금 구금당하고 있으며 죽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로마에 대한 적대행위나 반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종교적인 문제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시니 내 말을 잘 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부활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바울은 적극적인 변론을 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과거 자신을 보면 어떠한 자였습니까? 로마인보다 유대인보다 더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유대만이 아니라 이방 지역까지 가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잡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제사장이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변론을 통해 바울의 유대적 종교와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독자들에게 바울이 부활에 대한 신앙 때문에 재판받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의 변론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이 이스라엘의 소망이자 율법과 선지자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취이며, 열두 지파의 소망이자 모든 유대인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을 위대한 강설자로 묘사함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된 구원의 소식을 밝히 증거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 종교에 열심이었습니다.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좋아했습니다. 그것이 종교와 유대인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부활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죄수의 몸으로 재판을 받아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쁨이라고 생각하며 로마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변한 것입니까?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울이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활처럼 지팡이 교회도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입니다. 바울은 지상명령을 땅끝까지 전달하기 위해 헌신한 일꾼이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과거의 삶을 생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놓고 사역을 감당한 사도였습니다. 바울의 소망은 신자들이 자기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 증인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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