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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8:11-20
강설날짜 2018-04-15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1-20)

 

지팡이교회는 마태복음을 강설한지 2년이 넘었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을 마무리하는 강설이기도합니다. 긴 시간이었지만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은혜의 방도의 말씀을 들었던 지체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강설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즉 주일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왔습니다. 그 때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주의 천사는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주의 천사에 대한 모습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이라고 함으로 사실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주의 천사로부터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함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사흘 동안 죽음의 영역에 계시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우리들에게도 죽음의 고통에서 살아나게 하실 생명의 ‘주’가 되신 사실을 알린 것입니다. 주의 천사는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함으로 부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장례식을 무덤 밖에서 보았고, 또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와 부활의 첫 증인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배신을 하고 도망을 간 것을 아실 것입니다. 주의 천사가 말한대로 예수님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달려가던 중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발을 붙잡았을 때 당신님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도록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는 것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갈릴리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기록을 하고 있지 않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을 근거로 하면 제자들은 여인들과 다르게 모두 배신을 하고 자신의 살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시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심으로 귀중한 사역의 복음 증거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강설을 통해서 마태복음의 긴 여정의 강설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방도를 통해서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제자들을 세워서 복음의 증인자가 되도록 하신 것처럼 지팡이교회에서도 그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라고 마태복음은 기록을 합니다. 그러면 그들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무덤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이 있었습니다. 사복음서는 그들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을 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주의 천사가 여인들에게 나타났을 때 경비병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예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제자들이 부활의 최초 증인자가 되어야 하지만 놀랍게도 여인들과 경비병이었습니다. 특히 경비병은 부활하신 것에 대해서 예수님을 죽인 종교지도자들에게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인자가 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알리려 갈 때, 경비병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경비병들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숨어버렸고, 그 중에 몇 명이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고 경험한 일을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경비병이 근무지를 이탈 하는 것은 사형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두려워서 자신들의 목숨을 구할 방법을 찾고자 시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의 말을 들었던 자들은 12-13절에서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함께 모여 의논을 한 것입니다. 경비병을 돈으로 매수하여 진리와 사실을 거짓으로 증거 하도록 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거짓으로 주님의 부활을 악의적으로 모독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참된 구원자로 신뢰하고 의지한다고 말을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종교지도자들을 보시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자신들의 종교적인 힘과 정치적 영향력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경비병에게 어떻게 말하라고 합니까? 종교지도자들은 경비병에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와서 스승의 시신을 도둑질하여 갔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경비병은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의 말에 협력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교회에 대해서 세상과 같은 기업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과연 주님이 있는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은 돈으로 경비병을 매수하여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속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부활의 증인자가 되어야 하고 복음의 강설이 되어야 하지만 일부 교회이긴 하지만 어떠합니까? 부활의 복음이 있습니까? 세상적인 기업과 같은 교회와 종교지도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비병은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14절을 보시면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로마의 총독과 그들은 서로를 위해서 상생을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경비병들에게 해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여론을 조성하여 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총독은 그들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만일 거짓 소문을 듣고 너희들을 죽이려 한다면 자신들이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경비병은 실제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보시면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경비병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말한 대로 거짓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사실대로 전하였다면 복음은 더욱 값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는 유대인 사이에 두루 퍼지면서 오랫동안 이야기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도둑질 하여 가는 동안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은 사형감입니다. 경비병 모두가 잠이 들어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무덤을 굳게 닫아 놓았던 돌을 굴리기 위해서는 몇 사람의 힘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돌을 옳기는 과정에서 당연히 큰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경비병은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보니 시신을 도둑맞았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군대에서도 작전에 실패한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비에 실패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거액의 돈을 받음으로 거짓을 증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인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마태는 갈릴리에 가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기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신 것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지팡이교회도 정신 차리면서 잘 들음으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의 길을 잘 가시기를 소망합니다. 16절에서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주의 천사로부터 들었고,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났던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전하자 그들은 갈릴리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당신님과 창설 맴버인 제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인 산이 어느 산이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제지들에게 갈릴리에 있는 특정한 산을 말씀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그 산에 대해서 당신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하신 변화산으로 추측을 합니다. 산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산에서 가르쳤고, 변화산에서 변형되셨습니다. 이제는 다시 산에서 제자들을 만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여 주신 대로 부활하신 것을 본 제자들을 마태는 어떻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까? 17절을 보시면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다른 복음서를 참고하면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를 보고 놀라기도 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때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를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병행본문인 눅25:41절은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경배를 한 제자도 있었지만 의심을 하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자주 당신님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 무엇이라는 것을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직접 눈으로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적을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평소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가르쳐 오신 것과 연결하고자 하지만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심리적으로 그리고 자신들이 배신한 것에 대해서 어리둥절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자 중에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도마’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진정한 사랑으로 도마를 만나십니다. 요20:24-29절을 읽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몸을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 도마는 더 이상 부활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복음의 증인자로서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위험을 감당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다운 순종을 보여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역경과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제자들도 같았던 것입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던 제자들은 고난 앞에서 모두 도망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도망쳤던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면서 행1: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의 제자요, 성도요, 교회요, 일꾼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든 세상 사람이든 마28:18-20절의 말씀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지만 성공하기 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신 후 당신님의 부활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심을 의미한다고 가르쳐 주시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이유는 신약의 교회가 창설이 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낼 것인가를 생각하셔서 그것을 나타낼 가장 구체적으로 보이는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성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는 근본적으로는 보이지는 않으나 교회인 성도를 통해서 남은 자를 구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확고하지 못하고 연약한 믿음을 책망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책망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오히려 연약한 자를 위로하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책망하시지 아니하시고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알리시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비록 연약하지만 예수님의 놀라운 권세를 힘입어 담대하게 복음의 증거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상 대명령”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여 주셨습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만들어 놓으신 것들이 있습니다. 믿음, 순종, 성장, 권세, 긍휼, 사랑,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담대하고 진실한 메시지를 전하도록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의 어느 한 부분에 제한되거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심으로 그들이 모든 나라에 복음의 증인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요 선택된 민족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왜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셨는가를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12:3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하게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나라의 보존과 통치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이스라엘은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참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모든 민족이 알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보존과 통치는 정복하고 짓밟고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에 대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고 하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기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몸을 내어주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영생의 축복을 주심으로 진정한 섬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권세를 19절에서 ‘그러므로’라고 하심으로 제자들의 능력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통치를 위임받은 제자들이 또한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스리고 시행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형태의 다스림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열한 제자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동일한 은혜를 입도록 가르치고 배우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세례를 배품으로 언약의 공동체에 입교하도록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를 회개케 하기 위한세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줌으로 당신님의 죽음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롬6:3절을 보시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세례는 예수님과 신뢰의 교제요 복음의 증인자를 동참한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말로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고 하늘과 땅의 권세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죽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이전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용을 가르칠 뿐 아니라 순종의 행동을 훈련시키고 지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새로운 제자들에게 전달해야 할 실질적인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는 것은 열한 제자의 사명이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먼저 삼위 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고 그리고 말씀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친히 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지상 대명령을 주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드러내어 가면서 가르쳐야 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하나님의 백성을 깨우쳐 가르침으로 새로운 언약 백성이 되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은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사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능한 것은 예수님께서 죽을 죄인을 사랑하여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창세 전에 택하시고 때가 되어 부르신 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무지하고 완악한 우리를 변화시키심으로 부패한 옛 사람은 죽고 신령한 새 사람의 교회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제자들과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적으로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드러내어야 하는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것은 강력한 아가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날까지 그 이후에도 늘 한결같이 항상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우리 안에서 다스리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보존과 통치를 받는 성도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당신님의 보존과 통치 안에서 살게 하도록 “지상대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온누리에 당신님의 다스림에 순종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대명령을 내리시는 것은 교회요 성도인 우리가 명령을 완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라고 하심으로 세상의 종말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공생애 사역에서도 심판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습니다. 세상 끝날까지라고 하심으로 교회는 신앙 공동체로서 그 궁극 지향점이 종말이므로 더불어 계신 주님을 따라 제멋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여 주신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주님의 재림을 예비해야 하는 교회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 하는 기간인 동시에 교회가 주의 잔치를 현재적으로 누려야 하는 기간입니다.

 

사랑하는 지팡이교회 성도님, 구원받은 성도는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인내하고 견뎌서 마침내 구원 받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내를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오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어느 때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존 오웬이 말한 것처럼 죄의 상대적 지배 아래 우리는 신앙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믿음의 길에 서서 주님을 바라보는데, 바로 그 믿음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성도의 뚝심이나 인내가 아닙니다. 죄 많은 인생들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가슴 저린 깨달음과 확신 때문입니다. 은혜의 방도인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다시금 십자가를 붙들고 일어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진실한 진정성은 주님만이 아시는 것을 믿으시고 주의 길을 잘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을 주시고 왜 힘들게 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시작이라고 하는 교회가 많은데 왜 그러십니까? 사랑하는 성도님, 진실한 성도를 불안과 염려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서 당신님을 의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하심으로 사단과 세상의 유혹 및 그들 안에 만연된 부패성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보존하십니다. 이것을 아시는 지팡이교회는 주의 길을 잘 가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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