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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5:12-16
강설날짜 2018-08-26

초대교회에 사도들이 행한 표적의 의미(행5:12-16)

 

지팡이교회는 “초대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두 주에 걸쳐서 강설로 들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지상대명령”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대로 충실하게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 배운 대로 가르칠 때, 초대교회는 그 말씀대로 따를 때 우리가 생각하는 “유무상통”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았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동참을 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어 버린 것입니다. 그 누구도 모든 것을 팔아서 교회에 내놓으라고 한 일이 없고,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일부분을 내놓아도 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부부를 죽인 것입니까?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거짓말은 성령을 속이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약의 열 가지 계명” 즉 십계명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공의를 다른 말로 좀 편안하게 표현한 것이 은혜입니다. 공의하면 무거운 느낌이지만 은혜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사랑하는 성도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공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을 은혜라고 할 때가 있는데 이것을 공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공의와 은혜는 다른 의미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공의의 뜻을 “공정한 도의”라고 합니다. 은혜는 무조건적인 사랑, 도와주는 것, 심판이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공의와 하나님의 공의는 다른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은 죄인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죄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돌이킨 사람들은 죄인에서 양자됨을 얻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즉 공의가 적용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죄인이기 때문에 행동도 죄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모두 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사람은 죄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공의가 적용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돌이킨 신자들에게는 공의 즉 은혜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사탄에 끝까지 속한 사람에게는 공의가 적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묵묵히 청지기의 정신으로 초대교회처럼 유무상통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일꾼이 되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나는 저 사람보다 더 충성되고 칭찬받는 자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에 따라 신분을 나누는 것은 교회가 봉건주의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이면 모두 같은 신분입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공의 즉 은혜가 아니면 어느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를 자랑하고자 했지만 성령을 속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인의 열심과 충성은 교회 안에서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오히려 심판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보상의 개념이나 행위의 구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린이 찬송가에서 잘 부르는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믿음의 생활을 하십니까? 교회 안에서도 직분을 선출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것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와 삽비라를 통해 교회의 순결과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토나스 크레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광의 길도 무덤으로 나아갈 뿐” 이것이 세상에 속한 사람의 결과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는 교회 안에서 영광의 길은 무덤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부활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 징기스칸, 세종대왕이라도 영광의 길도 무덤이지만 바디메오, 세리 마태, 폴리갑,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 등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믿음을 소유한 신자들에게는 무덤은 부활입니다. 이것은 나의 행위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즉 은혜입니다.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오직 감사의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죄인은 자신을 스스로 바꿀 수 없습니다. 구원도 자신이 스스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죄인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도 쉽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만 그러합니까? 오늘날의 기독교를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과 같은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주식회사라고 합니다. 교회는 주식회사입니까? 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의미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결국 주식회사 즉 기업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현실주의자가 아니고, 낭만주의자들도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구성된 신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신자들의 모임이라면 어떠한 신앙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하고 싶습니까? 타인이 나의 이름을 몰라주어도 주님만이 아시는 이름이 되고 싶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 세상의 직분, 계급 등을 통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용없이 영원한 죽음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옷이나 겉모습, 직분과 계급이 필요 없다는 것을 강설로 들어도 현실은 어떠합니까? 교회가 순결성과 능력을 상실하면 어떠한지를 초대교회와 비교하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복음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믿으십시오. 세상에 속한 것과 복음을 누리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임함으로 성령 충만으로 순결하고 능력이 있는 신자들로 성장해 나아갔습니다. 그럴 때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순결하고 능력이 있을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이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능력이라는 것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든 신자들이든 교회가 병을 낫게 한다고 할 때 그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은사주의를 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병을 낫게 하는데 주력을 하면서 신자들을 모으고자 합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인 가르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할 때 복음의 증거가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교회의 순결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병만 고치고자 하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병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신령한 생활의 문제를 더 중요시합니다. 영혼의 신비는 깊은 것입니다. 심리학이 아무리 발전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비교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심리학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을지라도 영혼구원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순결성과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교회의 순결과 능력을 위해 오늘 말씀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행한 표적의 의미”를 통해 복음의 증인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알기 위해 먼저 12절을 보시면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5-16절을 보십시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 이 부분만 읽으면 베드로는 신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보다 더 큰 능력과 이적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베드로의 그림자를 통해 병을 낫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적과 기사를 통해 고치었고, 죽은 사람을 고치어 복음을 증거 했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와 반대로 말씀을 통하여 복음이 증거 될 때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복음의 강설은 듣지 아니하고 증거만 바랄 때가 있습니다. 이적과 기적만 있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가르치신 것입니까? 성경에서 오직 이적과 기사를 행하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솔로몬의 성전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후 솔로몬의 행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때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을 시기한 종교지도자들은 두 사도를 잡아서 옥에 가두려 위협을 했지만 증거가 없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복음을 증거 하지 말라고 하면서 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 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어려움이 있어도 어떻게 복음이 증거되고 있는지를 알게 함으로 오늘날의 신자들에게도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이것을 알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잡아다 가둔 것을 통해 복음의 강설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을 소유한 지팡이교회는 차분한 마음으로 12절을 다시 보십시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솔로몬의 행각은 사도들의 복음이 증거 되는 일반적인 장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있었지만 사도들이 교회의 순결성과 능력을 위해 솔로몬의 행각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할 때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셔서 그들이 백성에게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행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스스로 한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표적과 기사를 많이 행하게 하신 것은 완악한 백성으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베드로의 능력은 자신의 신분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만 의지함으로 나타난 능력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 중 일부는 특권적인 능력으로만 생각하면서 병 고치는데 만 열심을 두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사역을 하는 제자들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더욱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13절을 보시면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17-18절을 보시면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다시 옥에 가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진심으로 회심하지 않고는 교회에 가입하는 것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를 칭송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건입니다. 또한 사도들의 특별한 권위와 능력은 더욱 두려움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이처럼 순결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음을 듣고 자신의 완악함을 보면서 교회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회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심을 하지 못해도 교회가 무엇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표적을 통해 14절을 보시면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알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베드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15절을 보시면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은 성령의 능력이 베드로를 통해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복음을 증거 함으로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사도들의 사역은 예루살렘을 넘어 멀리까지 알려졌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고자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손을 붙잡기도 어려울 때 그림자라도 만지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행동은 의심할 것 없이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증거 됨으로 교회를 세워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자신의 신앙이 높으니 능력을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능력을 받기에 나의 믿음이 연약하다하여 높은 믿음으로 도달하기 위해 열심을 내든지, 열심으로 기도하고 금식을 하면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병고치는 은사가 필수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섬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처럼 자신의 것으로 교회 안에서 유무상통의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하며, 복음의 증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일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은사로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딤전5:23절을 보시면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당장 가서 치유의 기도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전도하려고 애쓰는 제자에게 위가 약해서 괴로우니 포도주를 조끔씩 마셔서 치유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님께서 필요하신 대로 병을 고치는 까닭에 그 사람이 언제든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보증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각 신자들에게 필요한대로 “네 은혜가 족하다”는 것을 믿으면서 오직 하나님만 붙드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구절인 16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베드로의 소문은 예루살렘 주변으로 확대되었고 병 든 사람과 귀신 들린 사람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이 사도들을 통해 나타나도록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당신님의 교회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증거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도들의 시대는 끝이 났지만 성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복음을 증거 하도록 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우리가 행복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복음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능력으로 남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 놀라운 역사를 하실 것을 믿음으로 소망하기를 기도합니다. 교회는 언제든지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신자들이 많아야만 꼭 질이 좋은 교회는 아닙니다. 작은 교회라고 해서 교회가 순결성이 높다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교회로서 순결하고 능력이 있느냐 입니다. 교회를 순결하게 만들고 능력 있게 만드는 유일한 힘은 나의 힘이 아닌 성령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성령에게 순종할 때 교회가 순결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주식회사라는 소리에서 순결성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만 바라보지 마시고, 이면에 속한 교회의 순결과 능력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지팡이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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