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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27:9-26
강설날짜 2020-06-14

하나님의 뜻대로 바울이 로마 압송.......2(행27:9-26)

 

강설 즉 설교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민되고 어렵습니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드러내야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잘 드러내지 아니하면 왜곡된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왜곡된 설교는 바른 교회로 나아갈 수 없도록 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중국에서 삼위 하나님에 대해 설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이용하여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는 세상의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국인만 이런 설교를 하는 것입니까? 국내는 어떠합니까? 일부 사역자 중에도 있다는 것이 슬픔입니다. 이런 설교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도록 합니다. 건전하지 못한 설교는 성경의 메시지를 왜곡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성경을 가지고 성경으로 풀어 전해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전해야 하는 교회입니다.

 

성경을 온전히 전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인이 역사를 제대로 전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인에게 역사가 중요한 것처럼 신자들에게 성경은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을 강설로 듣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님의 섭리로 이끌어 가시는가를 듣겠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는 도덕적이고 교훈이 담긴 설교를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을 닮기 위해 강설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맥락과 구절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알기에 성경의 말씀대로 생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릴 때 참된 신자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신앙고백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고자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을 위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안에 계시 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번 법정에서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부활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을 통해 본문의 뜻을 제대로 해석함으로 강설이 풍성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주 강설을 떠 올려보십시오. 오늘 제목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여러 번의 재판과 청문회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도록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재판은 무죄였지만,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도록 하는 길이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 자신의 무죄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고 있는 가운데 바울은 그들과 구별되어 약간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청문회가 마무리된 후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해 백부장 율리오 책임하에 이송되도록 했습니다. 로마로 가는 길에는 바울과 함께한 동료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은 더욱 생생한 바울의 여정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다고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 때 열매를 맺은 성도였습니다. 바울의 로마 압송은 험하고 어려운 여정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리스다고는 비중이 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비교하면 어떠합니까? 복음을 안 후 그의 삶은 헌신이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소동이 일어날 때도 바울과 함께한 신자가 아리스다고입니다. 이제는 바울이 로마로 압송된다는 것을 안 아리스다고는 죽음의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길을 막지 않고 동행했습니다.

 

율이오의 책임하에 출발한 배는 순탄하게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시돈에 도착한 바울은 다른 죄수에 비해 자유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신자들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시돈을 떠난 배는 구브로 섬에서 해안을 끼고 항해해야 했습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라에서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갈아타고 떠나면서 위기가 왔습니다. 그 당시의 배는 돗을 이용하여 항해했습니다. 돗은 역풍에는 취약합니다. 그래서 방향을 옮겨 미항에 간신히 도착합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수동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오늘은 수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로마로 압송되고 있는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누가는 로마로 가고 있는 지리적 경로를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오늘 본문 9절입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알렉스드리아 배는 더 위태한 항해를 해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와 관련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인 나팔절부터 사람들은 참회하고 회개하고 또한 경건히 지내다가 열흘날이 되면 대속죄일로서 그날은 금식합니다. 이것은 레16:2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팔절은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날입니다. 유대인의 7대 절기 중 하나이며, 유대인 달력으로 7월 1일이며 신년을 기념하기 위해 나팔을 불었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대속죄일은 1년 중 가장 경건한 기간으로 유대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도록 하는 절기입니다. 이렇게 기록하는 것을 보면 로마로 가는 배는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배의 결정권자들에게 경고합니다. 바울은 ‘권하여’라고 하는데 원어로는 ‘훈계하다’입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야 했지만, 당분간 미항에 머물 것을 강하게 권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시기에는 항해하기 거의 불가능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권고 즉 훈계를 하고 있습니까? 10절을 보시면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배를 타고 항해하며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중에 57년으로 추측됩니다. 그때 바울은 고후11:25절에 의하며 여러 번 위험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시기적으로 어렵다고 한 것입니다. 미항까지 오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배가 이곳까지 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험한 바람 때문입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초막절과 유월절 사이에는 항해하지 않도록 권고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물과 선체 자체도 문제고 우리의 생명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난을 만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의 결정권자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목소리는 더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무시되었습니다. 11절을 보시면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바울은 경험과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손실을 이야기했지만, 백부장은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러면 선주와 선장은 미숙한 자들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바울에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아무리 좋은 알렉산드리아 배라도 섬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것을 아는 그들은 미항보다 다른 곳에서 보내기를 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12절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좀더 겨울 나기에 좋은 뵈닉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하루 거리라 선장과 선주는 쉽게 결정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러면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고자 아니 한 것입니까? 항만이 작고 추워서 거센 폭풍을 견디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와 반대로 뵈닉스는 미항에 비해 겨울을 나기에는 좋았습니다. 모든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강한 바람을 막아주는 반달 모양의 항구였습니다.

 

선주와 선장이 뵈닉스로 가고자 했던 이유가 또 있었습니다. 13절을 보시면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남풍이 순하게 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적절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순풍이 불고 있을 때 선주와 선장은 득의양양했습니다. 그래서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에 바짝 붙어 서쪽으로 항해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순풍에서 광풍으로 돌변한 것입니다. 14절을 보시면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그레데 섬으로부터 불어닥치는 강한 북동풍 유라굴로가 그 배의 방향을 지중해 한가운데 쪽으로 사정없이 몰아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련한 선주와 선장이라도 광풍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아프리카 방향으로 밀리다가 암초와 부딪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파선됩니다. 참으로 위태로운 상황으로 돌변했습니다. 바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항해를 강행하였을 때 배와 하물과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당해야 했습니다. 15절을 보시면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배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음대로 부는 바람에 의해 배는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표류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선주와 선장 그리고 율리오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들을 걸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배는 그레데 섬으로부터 약 38km 거리에 위치한 가우다라는 작은 섬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16절을 보시면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배는 약 38km 거리까지 밀려났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우다 섬 가까이 밀려 온 것입니다. 작은 섬이지만 조금은 광풍을 막아줄 수 있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거루라는 것은 큰 배가 침몰할 때 탈출하는 작은 배를 의미합니다. 비상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폭풍 때문에 작은 배를 갑판으로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누가는 ‘간신히’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겨우 끌어올렸다는 것입니다. 작은 배를 간신히 끌어올린 다음 17절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밧줄로 선체를 감았습니다. 스르디스는 북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사주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북아프리카 해변 일대에 있는 광범위한 암초 지대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배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배에 있는 사람들은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18절을 보시면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공들은 짐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다음 19절에서는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짐을 버려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자 이제는 배의 모든 기구를 자신들의 손으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까지 버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20절을 보시면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여러 날 동안 배 안에서 자포자기로 있는 가운데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진 것입니다. 별을 보아야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지만, 별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포기하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바로 그때 바울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한 자들에게 수동적인 모습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21절을 보시면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광풍에 의해 사람들은 지독한 멀리를 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바울은 그들 가운데 서서 당신들이 나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불행한 처지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내 말을 듣고 그레데 섬에 있는 미항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이 배는 타격과 손상을 면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이야기함으로 책망하려는 의도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자신이 했던 말이 바른 말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힘입어 판단하고 지시하는 일에 따르라는 메시지입니다.

 

이제 바울은 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여 메시지를 전합니다. 22절을 보시면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위기와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바울은 소망으로 이끄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흑암과 혼란이 깊을수록 믿음의 사람들의 영적 지도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10절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며 안심을 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자신 있게 전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23절을 보시면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자 즉 천사가 어젯밤에 나타나 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행27장의 핵심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언급하는 이유에는 이 일을 계기로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 근거와 원천 되시는 하나님을 소개함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선한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한 말은 이것입니다. 24절을 보시면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하나님의 사자가 한 말을 그대로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선원들은 각자 섬기는 신들에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가운데 바울은 그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전했습니다. 선원들은 생명의 갈림길에 있지만, 바울은 가이사 앞에 서야 해서 그의 생명은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의 생명을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원들이 자신과 함께 살 것을 믿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바울이 말한 이야기를 구원의 빛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바울은 25절에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선원들과 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바울과 같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로 사람들은 하나님은 누구신가에 관한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는지 모르지만, 복음을 통해 믿는 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가 전해 준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26절을 보시면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누가는 바울의 말을 듣고 얼마나 믿었는가에 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가는 바울이 침묵을 깨고 전한 메시지가 중요했습니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장래에 일어날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같이 살리겠다는 말처럼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인이 금식하는 절기 즉 대속죄일이 지났습니다. 유대인의 달력으로는 7월이지만, 태양력으로 계산하면 9월 또는 10월이었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위해 여러 번 바다 항해를 해본 결과 이 시기는 위험하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경고했지만, 백부장은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바울의 경고는 무시되었습니다. 그들은 겨울을 나기에 좋은 뵈닉스로 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미항은 작은 섬이라 취약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뵈닉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있을 광풍을 모르고 선택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한 결과를 무시한 참혹할 사건이 일어날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더 좋은 곳으로 가서 겨울을 안전하게 보내고자 했습니다. 설마 하룻길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듣는 자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미항을 출발할 때는 순탄했지만, 상황은 돌변했습니다. 광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면서 배를 때리는 무서운 광풍이었습니다. 사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바람이었습니다. 배는 점점 더 극심한 위기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짐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것만 아니라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에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진 가운데 바울은 지도자들의 과욕과 잘못된 판단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지적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삶을 포기하고 있는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전하여 준 것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바울은 혼자 살기 위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전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번영신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전하여 준 메시지를 왜곡하여 전하지 않았습니다. 진실하게 전했습니다. “24.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일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기에 극심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 오로지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소망이 지팡이 교회도 있기를 믿으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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