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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5:1-6
강설날짜 2016-12-04

우리는 또한 성령께서 영원으로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다고 믿고 고백합니다. 성령께서는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나신 것도 아니라 다만 성부와 성자로터 나오셨습니다. 순서에 있어서 성령께서는 성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이시고, 성부와 성자와 함께 본질과 위엄과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이시고 동일하시고,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바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네델란드 고백서)는 제10항에서 삼위 하나님의 제2위인 성자의 신성을 고백한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제11항에서는 제3위인 성령님(성신)의 신성을 고백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님에 대해서 많은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순절 사건은 더욱 구체적으로 성령님을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의 상징으로 성령님이 임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성령님을 많이 생각하지 못하고, 성령님을 모독하는 말들을 예사로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한국 교회의 분위기에서 오늘 성령님을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감사한 것이라 믿습니다.

 

지팡이교회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3문에서도 성령님에 대한 것을 배운 것을 기억하십까? 질문은 “성령께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첫째,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그분은 또한 나에게도 주어져서 나로 하여금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며 나를 위로하고 영원히 나와 함께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한 것은 우리가 사도신경을 사용하여 고백하는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고백을 한 후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는 고백을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을 잘 알아야 하는데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성령님에 대한 신성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것은 지팡이교회 홈페이지(reformch. org) 상단에 ‘개혁주의 신학자’라고 하는 곳을 클릭하면 이승구 교수님의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 동영상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또한 성령께서 영원으로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다고 믿고 고백합니다. ‘성령께서는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나신 것도 아니라 다만 성부와 성자로터 나오셨습니다.’라고 믿음의 선배님들은 믿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례를 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선배님들은 성령님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면서 부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니케아 신경에서 성령님을 하나님과 예수님과 같은 신성을 가진 성령 하나님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를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주요, 생명의 수여자인 성령을 믿는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니케아 신경에서 괄호 안에 ‘와 아들’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받은 원문에는 없지만 서방 교회가 후에 삽입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성령 하나님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인 베드로는 행5:3-4절에서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여기서 베드로는 ‘성령’과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교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성령님을 속이는 것이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함으로 성령님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성령님께서 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139편에서 특히 7-8절에서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다윗의 고백은 하늘도 스올에도 어디든지 다 계신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피하고 싶어도 하나님 앞에서 그 어디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성령님도 마28: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 분을 요14:16-17절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구하여 보내실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창조 사역에 관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창1:1-2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 말씀을 잘 읊조리시면 천지창조 때에 성령님이 어디에 계신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에 함께 계시면서 성령님이 어떤 일을 행하신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창조에서 활동하시고 수면에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분이 오순 절 사건에 다시 교회에 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요3:3-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남은 말씀을 통한 성령님의 역사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3절에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귀도 드 브레는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 곧 하나님의 자비, 진리, 사랑 거룩 등에 관한 모든 것이 성령님께도 동일하게 진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좀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보시면 “순서에 있어서 성령께서는 성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이시고, 성부와 성자와 함께 본질과 위엄과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이시고 동일하시고,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바입니다.” 이런 성령님에 대해서 ‘영원으로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다’고 하십니다. ‘나오신다’는 의미는 우리말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어떻게 보면 삼위일체를 이해하도록 하지만 좀 어려울 것입니다. ‘나오신다’는 의미는 ‘보내신다’는 뜻과 같은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순절 사건을 위해서 예수님은 요15:26절에서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성령님이 행2:33절에서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베드로가 강설한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의 내적 관계와 활동을 대체적으로 알게 하심으로 바른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성경은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영원히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나오시는가? 우리는 이것을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영원히 나심같이 성령도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히 나오시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신비는 우리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우리는 이성으로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혁교회는 16세기 교회개혁 후에도 이 서방교회의 전통을 따라 “우리는 또한 성령께서 영원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것을 믿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지어졌거나 창조되었거나, 나지 않았으며, 다만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은 참되고 영원하신 성령 하나님은 나를 새롭게 하는 분으로 이롭게 하십니다. 나를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고 산다는 고백을 함으로 늘 예배하는 삶이고 경건한 마음을 누리는 것입니다. 롬12:1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삶 자체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에 아들을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과 달리 성령을 묘사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묘사하기가 참으로 어려우며, 그러하기에 성령님을 그냥 ‘비 인격체’로서 ‘그것’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농후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성령님을 묘사하기 어려운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3장6-8절까지에 나오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볼 수 없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뜻하는 단어는 ‘ 숨’ 혹은 ‘ 바람’ 이라는 단어와 똑같습니다. 바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마찬가지로 성령님을 보거나 또는 묘사하기가 어렵습니다.

 

묘사하기 힘들다고 해서 신비적인 일종의 ‘능력’ 이나 ‘영향력’인 것처럼 비 인격체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하나님과 똑같은 인격체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불리워지는 것 즉 전능하시고 은혜로우시고 친절하시고 거룩하시다는 것과 같은 품성들이 성령님께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이런 성령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시고 또 우리를 의롭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 가운데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새로운 생명에로 살아나지 못했다면, 또 우리가 중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죽은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는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죄나 부정한 것이 있다면 지금 즉시로 회개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매순간 성령님만을 의지하며 성령님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육체의 만에 잘못된 일들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허락해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을 깊이 깨달아 알게 하여주셔서 참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들이 다 되게 하여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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