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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8-05-20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4-25문

 

오늘은 먼저 소요리문답 제24문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선지자들께서 하신 일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고, 때로는 예언도 하였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대변자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선지자는 주로 장래 일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시대의 악함을 고발하고, 부정한 왕이나 공직자들에게 경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또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 구원자가 계심을 선포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주기도 했습니다.

 

자! 그러면 선지자에 대해서 소요리문답 24문의 질문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어떻게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십니까?” 우리는 지난 주일에 제23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는 세가지 직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선지자, 왕, 제사장이라고 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선지자에 대한 대답으로 “그리스도는 당신님의 말씀과 영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심으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십니다.” 바울은 엡2:20절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교회는 다른 기초석이 모퉁이 돌에 의존하는 것만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도록 하는 권위를 가지었고, 그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왜 입니까? 자신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예표 했던 모든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여러 가지 가 있지만 핵심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대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이해가 되는데, 예수님을 선지자로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선지자라고 하면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역자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계획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가장 큰 선지자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당신님의 뜻을 전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행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요6:38절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음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가르치셨습니다. 타락한 우리에게 왜 구원이 중요한가를 하나님 나라를 통해 가르치신 것입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미 이야기했던 내용을 선명하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시는 것은 구원에 관한 모든 일에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일을 교회를 통해 감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와 교사가 되셔서 우리에게 구속에 관한 하나님의 은밀하신 목적과 뜻을 완전히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이고, 신앙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행복 그 자체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의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하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맛보게 되었을 때에 가지는 그 평안이라는 것으로 참으로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었고, 세상이 알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로서 선지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같은 임무 아닙니까? 효과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예표 했던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 직분을 동일하게 행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차이는 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대변자와 같은 전달자 역할이고, 예수님은 “천국은 ~와 같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곳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천국 즉 하나님 나라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잘 알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나라로서 가르치셨음으로 더 이상 구약의 선지자와 같은 일을 할 사람이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선지자는 없어졌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목사를 세우셨습니다. 엡4:11-12절을 보시면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목사를 주신 것은 교사로서 잘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목사는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강설하고 성경공부도 하면서 목동과 같은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거짓된 종교는 오직 성경이 아니라 다른 것을 첨부합니다. 성경 그리고 교황, 전통, 몰몬경, 코란, 외경 등을 이용하여 속이고자 합니다. 특히 카톨릭의 교황은 사도직 승계론을 주장을 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사명을 교황을 승계함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다는 권리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중요했다면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을 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인데 어떻게 기록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에도 계속하여 하나님의 대변자와 같은 선지자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선지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목사는 성도와 같은 신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잘 가르치는 교사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목사와 성도가 같은 신분이라고 생각하여 단순히 개인적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목사를 통해 당신님의 뜻을 전하시는 줄 알고 진지하게 받아 들여야 해야 합니다. 목사도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잘 전달해야 하는 어려운 직분인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선지로서 오늘날에도 오직 성경을 통해서 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목사를 통해 일시적인 일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 시대의 하나님이 자녀들보다 더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은혜의 덕을 맛보며 신앙 생활하는 것이 한없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가르쳤던 그 본질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주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는 무엇이었고, 율법은 어떤 의미였고, 성전의 의미를 분병하게 밝히 드러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의 잘못이 무엇이고, 고난의 의미를 알도록 예수님께서는 감당하여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로서 당시의 상황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런 것처럼 완벽한 마지막 선지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소요리문답에 있습니다. 혹시 아시겠습니까? 제24문의 답을 보시면 “그리스도는 당신님의 말씀과 영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심으로”라고 고백합니다. ‘말씀과 영’ 중에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영으로 우리의 구원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영’이라는 것은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벧전1:1절을 보시면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선지자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미리 증언하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성도 즉 교회에 내주하시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생각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요14: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조명과 감화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보혜사란 곁에 있어서 변호사와 같이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능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성령은 성경을 사용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심으로 교회를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행5:32절을 보시면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고 하심으로 성령도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만 복음의 증인자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증인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나와 동행하여 주심으로 고난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하나 둘 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가셔서 성령을 보내시고 그 일을 계속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새삼스럽게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을 그대로 계승해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제25문으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입니다. 우리는 제사장 하면 거의 사무엘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 왕에게 찾아가서 회개하라고 한 나단도 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대표하여 제물과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제25문은 “그리스도는 어떻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십니까?”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서 증보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 죄의 값을 동물에게 대신 지도록 하셨습니다. 그 중보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사실 죄를 지은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대신에 제물이 된 동물을 사용하여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소요리문답은 “그리스도는 신적인 공의를 만족시키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려고 당신님을 희생제물로 단번에 드리심으로서,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계속하여 간구하심으로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히5:1절을 보시면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라고 하심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소요리문답은 세 가지로 정리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키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님을 희생제물로 단번에 드린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계속하여 간구하십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중보자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벨기에(벨직) 신앙고백서 제21항을 통해서 잘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아실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http://reformch.org/index.php?mid=board_BdrP57&page=2&document_srl=5166를 보시면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리라고 맹세로 확정 받으셨음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위치에서 당신님 자신을 당신님의 아버지 앞에 내어주시고, 만족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만족시키시고, 십자가 나무 위에서 당신님 자신을 바치셨고,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와 같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는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도다.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리고 비록 본디오 빌라도가 처음에는 그분을 무죄하다고 선언했을지라도,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범죄자로 정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의인으로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몸과 영혼이 고난 당하셨고,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무서운 심판을 느끼셔야 했고, 그분의 땀은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외치시기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견디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함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우리는 그분의 상함으로 위로를 발견하고, 한번 드려진 속죄제사 외에 하나님과 어떤 다른 화해의 방편을 찾거나 만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자들은 이 한 번의 속죄제사로 말미암아 언제나 완전하게 됩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천사가 그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예수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제사장의 직무를 그리스도가 감당하신다는 것을 히7:25절은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라고 고백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제물의 생명 즉 피를 통해 제물을 바친 자의 죄를 속한다는 구약의 제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죽음을 맞으심으로서 완성되었습니다. 벧전1:19절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고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님의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하게 만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어린 양’으로 단 번에 제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롬5:10절은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감사만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깨닫고 자신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에 반응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의무요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자가 성도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2: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구원의 기쁨과 확실성이 내 안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히 기도하심으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가 스스로 구원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과 열심” 그리고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존재와 우리를 향한 사랑과 열심과 기도와 일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떠한 존재가 되었겠습니까? 이것이 참된 은혜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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