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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9-03-10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6-69문

 

67문의 질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잘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질문은 “제6계명은 무엇입니까?” 답은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68문은 “무엇이 제6계명에서 요구됩니까”입니다. 답은 “제6계명은 우리 자신의 생명과 다른 이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합법적인 노력을 요구합니다.”입니다.

 

69문은 “무엇이 제6계명에서 금지됩니까?” 답은 “제6계명은 우리 자신이나 이웃의 생명을 불의하게 빼앗거나 거기에 이르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금합니다.”입니다.

 

지난주 지팡이교회는 제5계명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생명을 전달하고 양육하는 부모님에 대한 공경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도록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간에 세우신 질서와 권위를 인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제는 제6계명에서도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즉 마7:12절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외를 제6계명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제6계명은 더 귀한 것입니다. 사람이 동물을 잡아먹는 것을 살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도 살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동물을 양식으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홍수 후는 다릅니다. 창9:3절을 보시면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셨습니다. 동물을 죽이는 것이 인간의 타락의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인 사람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동물과 다르게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사람도 이웃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해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05문은 “생각과 말과 몸짓으로 더구나 행동과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나의 이웃을 악용하고 미워하고 해치거나 죽여서는 안 되며, 모든 복수심은 다 없애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내 자신을 상하게 하고 원해서 위험한 것에 내 자신을 내주어도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집권자들이 살인을 방지하기 위하여 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제6계명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요구하시는가?입니다.

 

이번에는 대요리문답을 읽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주의 깊은 연구와 합법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의 생명이든 불법하게 빼앗아가려는 모든 사상과 목적에 대항하고, 모든 격분을 억제하고, 모든 기회와 시험과 습관을 피하는 일이다.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 하나님의 징계를 조용한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참고 견디며, 술과 약과 수면과 노동 및 오록을 절제 있게 하며, 자비로운 생각과 사랑과 인애와 온유와 우아함과 친절과 화평과 부드럽고 예의 있는 언행과 관용과 화해되기 쉬움과 상해의 관용 및 용서 또한 악을 선으로 갚음과 곤궁에 빠진 자들을 위로하고 구제함과 죄 없는 자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것이다.”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6계명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이 생각하도록 하는 의무가 있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누구의 생명이든 부당하게 빼앗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이웃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주의 깊은 연구와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창9:6절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사람의 가치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은 누구나 부요하든, 가난하든 기본적인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6: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만큼 사람이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죽이는 모든 것이 살인입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공적인 재판과 전쟁 등을 통해 그리고 정당방위를 하다가 살인한 것도 살인입니까? 과연 그렇습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성경에 기초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하면 가인입니다. 창4:8절을 보시면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동생인 아벨을 형 가인이 살인을 한 것입니다. 최초의 살인은 동생 아벨의 피가 복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고 기록을 합니까? 창4:10절을 보시면 “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께 땅에서부터 호소를 한다는 것입니다. 살인을 한 가인은 발뺌을 하는 중에 있지만 아벨은 하나님께 호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법정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당시 가인의 죄를 살인죄라고 하여 죽이고 싶어도 사형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의 사건에서도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 것이지 노아가 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 출22:2절을 보았으면 합니다. “도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율법 책들인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안에서 “언약의 열 가지 말씀”에 대한 영감 된 해석을 허락하셨을 때, 분명하게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죽일 필요가 있을 때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살인을 한 사람은 계속 할 것입니다.(?) 출애굽에서 말한 말씀은 내 가족들에게 입힐 해악으로부터 내 가족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좀 도둑이 아니라 살인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살인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또한 정당방위를 위한 결과는 살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경우도 마치 정당방위와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치자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가 침략하여 학살을 하는 것을 두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 전에 군사적인 행동을 하여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롬13:4절을 보시면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다스리는 권세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종들이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실행하여 네게 선을 베푸는 일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보다 처벌할 책임 있는 당국에 형벌을 맡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자들에게 주신 권세입니다. 그렇다면 다스리는 자들은 함부로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공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 종교처럼 사람이 국가의 의무를 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군대에 복무하는 가운데 국민을 보호할 의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생명은 몸뿐 아니라 마음, 영혼에 이르기까지 의존을 의미합니다. 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전인적인 유쾌함을 유지하가 위해 노력하고, 또한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특별히 약할 때에도 나의 생명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도록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소중이 여기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거나 돌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모르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리스도인은 늘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양자됨을 입은 백성입니다. 롬14:8-9절을 보시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즉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공로로 우리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웃도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웃을 살인할 수 있습니까?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인내와 평화와 온유와 친절 등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증거 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의 것입니까? 나 자신의 것입니까? 이웃의 것입니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문이 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나 죽으나 몸과 영혼이 오직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협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내가 주의 것이기에 주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시고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기꺼이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위로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고 내가 어떤 목적을 향해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김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제6계명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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