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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8-06-10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8문

 

지팡이교회는 지난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분의 태어나심과 그것도 낮은 여건으로 태어나신 것과, 율법 아래 사신 것과 이생의 여러 비참과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의 저주된 죽음을 겪으신 것과 묻히신 것과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시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영화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내용도 있습니다.

 

오늘은 제28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즉 신학적으로 “승귀”라고 하기도 합니다. 질문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무엇입니까?” 아주 간략한 질문이지만 고백은 의미심장 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시고, 그리고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이 또한 필수적임을 알도록 하는 것이 오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요리문답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무엇입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성육신으로 오셔서 하시려 하신 그 일을 마치려 할 때 요17:5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당하신 후 육체는 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정체성에 있어서는 동일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았을 때 환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목격하기도 하였습니다. 눅24:37-39절에서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부활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당신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비로소 제자들은 ‘죽음에 대한 승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승리는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제28문이 말하는 것입니다. 빌2:6-8절을 보시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심으로 낮아지심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 후 9-11절은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높아지심 즉 승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님께서 높아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낮아지신 모든 것을 높아지시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소요리문답에서 말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은 어떠합니까? 아프고 나이가 많아 늙으면 멸시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죽지 못해 사는 삶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먹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것이 행복입니까? 죽음을 맞이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까? 성경은 부활장이라고 하는 고전15장에서는 새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뿌린 씨가 죽으면 살아나듯 육신도 죽은 후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것이고,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는 것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성도가 취하게 될 부활의 몸은 우리에게 큰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14-19절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부활이 없다면 전도나 믿음이 헛된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불쌍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한계를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몸으로 직접 보여 주신 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이 교회에 영향을 미치도록 부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후에 하실 말씀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28:18-20절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제자들은 복음의 증인 자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전도와 교회를 세우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은 우리의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세로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자랑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도 바울이라도 자신을 곤고한 자라고 했고, 배설물로 여겼던 것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뜻대로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낮아지신 몸은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부활로 영화롭게 변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높아지심을 통하여 더 높은 영광의 몸으로 변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의 인성의 변화가 승천을 통하여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죄의 저주가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타락한 이 세상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나라입니다. 웨스터민스터 대요리문답 제52문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당신님의 부활에서 어떻게 높아지셨습니까?”가 잘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님의 부활에서 높아지심은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어) 사망 중에 썩음을 보지 않으신 것과 고난 받으신 바로 그 몸의 본질적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사망성과 기타 현세에 속하는 공통적 연약성이 없이) 당신님의 영혼과 실지로 연합되어 권능으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을 말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사망과 사망의 권세 잡은 자를 정복하신 것과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심을 친히 선포하셨습니다. 그가 공적 인물로서, 자기 교회의 머리로서 하신 모든 것을 믿는 자들을 칭의 하시고 은혜로 새 생명을 주시고 원수들에 대항하여 이기게 하시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당신님께서 보이는 가운데 지극히 높은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은 온 땅위는 물론 모든 자연 법칙과 물질의 온 중력 위에 영광을 얻으신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승천은 불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모습’ 그대로 땅에서 떠나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기 위한 한량없는 은혜였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행7:56절에서 “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순교 직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스데반만 보았던 것이 아니라 롬8:43절과 벧전3:22절에서도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라고 말합니다. 지팡이교회는 지난 주일에 다윗이 고백한 시110편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그 다윗의 주를 여호와께서 우편에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심으로 모든 원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 밑으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편이라고 해서 오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물론 비유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육체적인 부분을 갖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편이라는 것은 “영광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빌2:9-10절을 다시 보시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사실상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이신 당신님에게 다 속하였던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예수님께 주신다는 사실은 성경이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는 이유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되돌아갔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인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셔야만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이라는 것은 만유를 통치하시는 자리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여전히 제사장으로서 당신님의 속죄 사역에 근거해 중보 사역을 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변호하시고 부족한 신자들의 기도와 섬김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도록 간구하십니다. 또한 여전히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지상의 교회 직분자들을 통하여 통치하시고 보호하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은 당신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늘 당신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라 할 때는 그 백성과 더불어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없다면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량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에서 높아지심은 하나님이시요 사람으로서 성부 하나님의 지극한 은총을 입은 것과 기쁨과 영광과 천지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충만히 가지시고 그의 교회를 모으시고 옹호하시며 그들의 원수들을 정복하시며 그의 사역자들과 백성에게 은사와 은혜를 주시고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에서다”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처럼 영의정 좌의정 하면서 높은 벼슬처럼 있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로 당신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손에 심판을 당하여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당하신 그 대가를 분명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서 벗어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아니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날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지상 사역 동안에 이 날이 언제 임할 것인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도적같이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에도 늘 당신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중보자를 감당하심으로 원수를 정복하여 가시고 있습니다. 고전15:24절을 보시면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 마지막 날 심판의 때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 은혜로운 삶을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가 가득하지만 그 날에는 죄가 없는 세상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셔서 저희로 당신님을 힘입어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큰 권세로 적들을 다 물리치고 심판하시고 그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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