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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8-05-06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0-21문

 

오늘은 제20문을 통해서 죄의 비참함을 해결하는 구속자에 의한 은혜언약을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20문을 보시면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죄와 비참함의 상태에서 멸망하도록 내벼려두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인류는 전쟁과 질병 그리고 재난과 가난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하는데 달라진 게 무엇입니까? 기독교에서 선택설을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라고 하면서 지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거짓말쟁이 아닙니까?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제 20문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그 죄와 비참함에 그대로 내버려두셨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선배님들은 “하나님 당신님은 순전히 선한 기뻐함으로 모든 영원으로부터 어떤 자들을 영생으로 택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죄와 비참함의 상태로부터 건져내시고, 그들을 구속자에 의한 구원의 상태로 이끄시기 위하여 은혜언약을 맺으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생으로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속받은 자를 영생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이고 순전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입니다. 그들을 건져내어 데리고 가시는 것은 죄의 비참함의 상태로부터 은혜언약 관계로 선택함을 받은 남은 자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흔히 행위언약이라 칭하는 첫 언약을 위반하여 타락한 죄와 비참한 상태에서 멸망하게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은혜언약이라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택한 자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타락한 사람의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은 창3:15절에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신 것이 바로 원시복음 즉 은혜언약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행위언약을 구약성경으로 은혜언약은 신약의 언약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음의 도표를 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구분

행위언약

은혜언약

같은점

1. 언약의 성격: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어서 피조물이 행한 것에 대하여 축복과 상급을 요구할 수 없다.

2. 언약의 당사자: 하나님 편에서 자발적으로 낮추시어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다.

3. 언약의 외적 형태: 상급과 약속과 벌

4. 언약의 상급: 영생

5. 언약의 벌: 죽음

6. 언약의 목적: 하나님 나라

다른점

사람의 상태

아담은 순종할 수도, 안할 수도 있었다.

죄와 비참함에 빠진 죄인들은 순종할 수 없다.

중보자

 

중보자가 필요

조건

완전한 순종

증보자 예수님 믿음

조건을 돕는 약속

 

하나님은 성령을 죄인들에게 주시어 그들로 믿고 싶은 마음이 일게 하고, 또 믿을 수 있게 하신다.

계시

하나님의 법이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었고, 금지된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사람들에게 본성으로 일부분이 알려진다.

사람이 스스로 알 수 없고,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이 내용이 전도자에 의해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믿음을 통해 알게 된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반역한 것을 생각하면 멸망에 이르도록 두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그 대가는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구원하여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도덕적인 선과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 장난감을 선택할 거야? 장난감은 모두가 똑같기 때문에 그 이유가 장난감에서 발견될 수 없습니다. 모두 동일한 조건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택한 이유는 따라서 전적으로 장난감을 선택한 자신 즉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사람은 말할 수 없습니다. 엡1:4-6절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심으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보다 더 명확하게 가르치는 교리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이 하나님의 무한성과 영원성과 불변성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이 문제 또한 여전히 신비지만, 신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무한성과 영원성과 불변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듯 이 문제를 믿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람을 놓고 볼 때에는 상대적으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선하다하는 차이가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실 만큼 선한 사람이라든지 그런 선한 행위를 한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골라서 영생을 준 것이 아닙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를 당신님의 선하신 뜻대로 영생을 주는 것이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하심으로 죄의 대가를 다 치러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순전하신 선한 뜻입니다.

 

그렇지만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를 생각할 때, 사람의 구원을 자동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으로 선택하셨다면, 그 때는 내가 무엇을 행하든지 간에 구원에 이를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이단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자동적으로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당신님의 뜻에 따라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복음의 증인 자의 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입니다.

 

특히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신앙생활에서 주일을 지키는 것은 인생 전체의 초점이 어디를 두고 향하느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일은 ‘영원한 안식’을 이 땅에 사는 동안 보여주는 표상이자, 샘플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안식이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나라 즉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대고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이 땅의 것에 있지 않고, 항상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삶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지만 특별한 주일을 구별하여 신앙고백과 예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고백하는 교회요 성도가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만이 나의 영원한 안식이자 지향점”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신앙을 실천적으로 고백하고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도록 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당신님의 영광을 위해 자유롭게 정하시고 그대로 이루시는 사랑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조건으로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에게 선택의 이유가 무조건적이란 사실에 오직 감사만이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1문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구속자는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을 통하여 그 구속자가 누구인지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택자들의 유일한 구속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니,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인데 사람이 되셨고, 그래서 두 개의 구별된 본성이지만 한 인격을 영원히 가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입니다. 유일한 구속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확인하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구속자라는 말은 기독교에서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노예의 몸값을 치르고 해방시키는 분을 구속자라고 합니다. 또는 속량 즉 되산다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팔린 것을 값을 주고 되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오해하기도 합니다. 검사가 누구를 구속했다라고 할 때 쓰기도 하기 때문에 오해하기도 합니다. 같은 단어지만 전혀 다른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자로 노예의 상태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값을 치루시고 자유인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왜 구속자가 필요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중보자요 구속자로서 당신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며 성부 하나님과 한 신체이시며 동등하시며 때가 차매 사람이 되셨습니다. 한 위에 두 가지 다른 양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오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역사적 실존 인물이십니다. 이 세상에 오셨고,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에서 당신님이 백성을 통치하시고 보존하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보아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타락한 사람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인간으로 오심으로 모든 것을 다 겪으셔야 하는 것이고,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그 죄의 벌인 사망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하신 분이 구속자 예수님이십니다. 왜 구속자 즉 중보자는 반드시 사람이어야 하는가?입니다.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성품을 붙들어 주시고 율법을 순종하시고 우리의 성품을 입고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대신 간구하시며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여 불쌍히 여김으로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입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도 신경을 사용하여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 중에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즉 유일한 아들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빌2:5-8절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유일한 구속자는 두 개의 구별된 본성으로 신이시면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속에 있는 두 성품의 연합과 구별로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이 인간의 성품과 구별될 수 없도록 연합되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두아들이 있다는 것과 두 인격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두 성품이 한 사람 속에 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본성들은 한 인격 속에서 매우 밀접하게 연합하여서 심지어 당신님의 죽음에서도 구별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외에는 그 누구도 구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도, 인격이 아주 훌륭한 성인군자도, 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도 구속자가 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도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 입니까? 죄인을 위해서 값을 치루시고 대속물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마8:17절은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시는 것을 마태는 기록한 후 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셨다는 것을 알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죄의 값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사형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만족하심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하나님 나라로 구원하셨습니다.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성령이 오심으로 회개를 하고 새사람이 되도록 하심으로 교회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행4:12절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증언한 말로서 우리의 유일한 구속자임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지 못하고, 배타적인 종교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기독교만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지 비아냥대기도 합니다. 다른 신에 대해서 구원이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종교다원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세상에서 믿음 생활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잘 참고 견뎌야 합니다. 이웃이 비난한다고 해서 신앙을 양보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가신 길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가를 대신 감당하심으로 우리를 회복하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길을 성령을 의지해서 가야 합니다. 두 번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요일1:1-4절을 보십시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 사귐이 있는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복음을 감당하는 것이 사귐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움과 고난이라 할지라도 사귐에는 기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사귐의 공동체로 있다는 것이 은혜요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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