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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7-01-22

제13항 하나님의 섭리(2) 우리는 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방치하시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맡기지 않으시고, 당신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심으로, 당신님의 지시 없이는 이 세상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범한 죄들의 원인자가 아니시며, 그 죄들에 대한 책임을 지실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선은 위대하고 지각에 뛰어나, 심지어 마귀와 악인들이 불의하게 행할 때도, 가장 탁월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당신님의 사역을 미리 작정하시고 시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하여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이상으로 호기심에서 묻기를 원치 않는다. 단지 우리는 가장 큰 겸손과 경외심으로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공정하신 판단을 존경하고, 이런 한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이 당신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만 배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교리로 어떤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날 수 없고, 오직 우리의 은혜로운 하늘 아버지의 지시로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나 그 많은 수도 세시기 때문에, 참새 한 마리도 우리 아버지의 뜻 없이는 떨어질 수 없도록(마10:29), 당신님의 능력 아래 만물을 두시는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 우리는 이것을 신뢰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억제하셔서, 당신님의 허락과 뜻이 없이는 그들이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으시고, 모든 일을 우연에 맡긴다고 말하는 에피쿠로스학파의 가증스러운 오류를 거절한다. 오늘은 저번 주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의 섭리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유지와 보존을 하시면서 통치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방치하시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맡기지 않으시고, 당신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심으로, 당신님의 지시 없이는 이 세상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믿음의 선배님들은 고백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115:3절에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주권 안에서 모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작정을 하셨습니다. 제13항의 신앙고백에서도 “당신님의 지시 없이는 이 세상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엡1:11-12절을 보아도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대로 계획을 따라 예정을 하신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교리는 일찍이 서양의 사람들은 인정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작정을 하시고 유지하고 보존하시면서 통치하는 방법을 설명할 수 없지만 성경의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교리는 제13항에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교리로 어떤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날 수 없고, 오직 우리의 은혜로운 하늘 아버지의 지시로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나 그 많은 수도 세시기 때문에, 참새 한 마리도 우리 아버지의 뜻 없이는 떨어질 수 없도록(마10:29), 당신님의 능력 아래 만물을 두시는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 우리는 이것을 신뢰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억제하셔서, 당신님의 허락과 뜻이 없이는 그들이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하심으로 위로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는 엄청난 불행들을 드러내었습니다. 사람들은 1차 대전, 2차 대전,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무서운 공포를 생각합니다. 이런 엄청난 불행들에 직면하여,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확실히 다스리지 않으신다, 만약 사랑의 하나님께서 다스린다면, 이 모든 불행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 두 가지 현실, 즉 과학적 지식과 엄청난 불행에 대한 자각은 우리 시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섭리의 교리에 의문을 일으키게 하고 그 교리를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과학이 하나님 위에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죽었다고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베드로가 사도의 대표로 신앙을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오늘 오전에 강설한 내용을 다시 주보를 통해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하신 후에, 당신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통치와 다스리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통치와 다스리라는 명령 속에 포함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에 백프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 책임은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제13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천사의 타락이나 아담의 범죄도, 그리고 모든 인류의 모든 범죄까지도 전부다 하나님이 작정하셨고 섭리하신 것입니까?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3항에서 그렇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은 범한 죄들의 원인자가 아니시며, 그 죄들에 대한 책임을 지실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선은 위대하고 지각에 뛰어나, 심지어 마귀와 악인들이 불의하게 행할 때도, 가장 탁월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당신님의 사역을 미리 작정하시고 시행하시기 때문이다” 엡1:11절의 말씀처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은 당신님의 계획을 따라 모든 일을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은 죄를 짓도록 하는 분이 아니시며,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죄의 책임은 언제나 죄를 범한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과 섭리에 의해 발생했지만, 하나님께는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지의 행위와 허용을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즉 하나님은 천사나 사람들이 죄를 짓겠다고 나설 때 그것을 허용하신 것이지,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그들의 범죄를 의도하시거나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이런 생각을 강력하게 비판합니다(기독교강요 1권 18장 참조). 칼빈은 오히려 모든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저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허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창세전에 계획한 바대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서 섭리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구절로 칼빈은 여러 구절을 제시하지만, 우리는 단 하나의 사건만 봐도 이 내용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로마정권이 합세하여 무고한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행을 마지못해 허락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예수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의도하셨습니다. 그 일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에 의해서 생겨난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의도하셨다고 했으니, 하나님이 친히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빌라도에게 예수를 못 박아 죽이라고 명령하셨거나 또는 그렇게 하도록 친히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셨거나 또는 그런 마음이 들도록 유혹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악행을 명하신 적도 없고 명하실리도 없는 것입니다. 무고한 자를 누명 씌워 죽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형당해 마땅한 극악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오히려 그런 무고한 자를 누명에서 벗겨 살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종교지도자들, 빌라도는 마땅히 무고한 예수님을 살려주는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악한 마음을 따라 하나님의 선하신 교훈을 파괴하고 예수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예수님이 죽임 당하는 것이 또한 하나님의 작정적 뜻이었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작정적 뜻과 하나님의 교훈적 뜻 사이에는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작정적인 뜻을 이뤄드렸다고 해서 꼭 선을 행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어드렸다고 해서 상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가룟유다 때문에 하나님의 작정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나, 그의 행위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형벌 받아 마땅한 악한 행위인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죽임 당하신 사건에 하나님과 사람, 사단이 함께 일하지만, 그 일을 하는 동기와 역사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를 작정하시고 섭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한 책임이 없으신 것입니다. 먼저 그 동기에 있어서 다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에 죽임당하도록 역사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선하신 동기에 의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실제로 죽이기 위해 합세한 사람들과 그들 배후에서 역사한 사단 마귀의 의도와 목적은 하나님과는 정반대로 매우 악한 것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제5장 5항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말하면서 “가장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기 친자녀들이 각종 유혹에 빠지며 그들 자신들의 부패한 마음대로 행하게 내버려 두신다. 이는 그들이 전에 지은 죄들을 인하여 그들이 징계당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부패하고 간사한 마음이 얼마나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깨달아 겸손케 하기 위함이요(대하32:25,26,31; 삼하24:1), 또한 그들을 깨우쳐 그들이 보전되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에게 더욱 친밀하고 견실하게 의존토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장차 있을 모든 죄의 유인들에 대비하여, 그리고 여러 다른 의롭고 거룩한 목적들을 위하여 그들이 더욱 깨어 있게 하기 위함이다(고후12:7-9, 시77:1,10,1,; 막14:66-72, 요21:15-17).”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셉의 삶의 과정을 기억해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행위가 잘못되었고 자신을 팔아버린 것은 대단히 나쁜 일로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악의 배후에도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주권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고 하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저자인 귀도 드 브레는 감옥에 있으면서 아내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감옥에 있으며 불평과 하나님을 원망하는 글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어느 정도 안 그는 평안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군인들이 단순히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일 뿐이라고 하면서 분노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여 할 수 없게 되지만 그것도 감사했다고 합니다. 성도님, 그 배후에 역사하는 것은 사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과정에서 어떻게 일하시고 역사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군인들이 자신의 악한 본성대로 행하고자할 때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도록 내버려두시는 방식으로 일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허용하는 한도를 넘어서까지 호기심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최대한의 겸손과 존경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감추어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찬양하며,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에 만족하여,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말씀에서 가르쳐 주신 것들만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숨겨진 것과 계시된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29:29절은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고 하심으로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 있고, 우리에게 나타내심을 합당하게 여기신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13항에서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하여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이상으로 호기심에서 묻기를 원치 않는다. 단지 우리는 가장 큰 겸손과 경외심으로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공정하신 판단을 존경하고, 이런 한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이 당신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만 배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는 것으로 만족한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우리가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은 물론 상당히 많이 알고 있습니다. 구약백성들은 모른다고 했지만, 우리는 모른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신약백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경륜의 비밀을 다 아는 자들이고, 그래서 온 세상이 무엇을 목표로 지금 진행되고 있고 또 결말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부다 알고 있고, 또 하나님의 의중의 깊이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만큼 교만한 착각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그 하나님의 의중의 참된 깊이를 결코 다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3항을 배우면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는데, 그 까닭은 어떠한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닥치지 않고 오직 가장 은혜로우신 우리 하늘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서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같은 배려로써 우리를 돌보시고 모든 피조물을 그분의 권세 아래에 두시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털을 다 세고 계시며 그 한 올도, 또한 참새 한 마리도 우리 아버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뢰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억제하셔서, 당신님의 허락과 뜻이 없이는 그들이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하심으로 위로를 주시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많은 나쁜 일들도 나의 삶 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합니다. 왜? 그러나 ‘왜’라고 묻는 것은 잘못된 물음입니다. 비참한 현실에서 하나님은 당신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나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십니다. 욥의 고난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우리는 제13항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준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섭리로 만물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유익입니다. 우리는 어떤 불행 가운데서도 인내할 수 있게 되고, 어떤 번영 가운데서도 감사하게 되고, 미래에 관하여서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게 되며, 어떤 창조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창조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는 창조물은 전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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