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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7-01-15

우리는 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방치하시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맡기지 않으시고, 당신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심으로, 당신님의 지시 없이는 이 세상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범한 죄들의 원인자가 아니시며, 그 죄들에 대한 책임을 지실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선은 위대하고 지각에 뛰어나, 심지어 마귀와 악인들이 불의하게 행할 때도, 가장 탁월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당신님의 사역을 미리 작정하시고 시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하여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이상으로 호기심에서 묻기를 원치 않는다. 단지 우리는 가장 큰 겸손과 경외심으로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공정하신 판단을 존경하고, 이런 한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이 당신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만 배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교리로 어떤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날 수 없고, 오직 우리의 은혜로운 하늘 아버지의 지시로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나 그 많은 수도 세시기 때문에, 참새 한 마리도 우리 아버지의 뜻 없이는 떨어질 수 없도록(마10:29), 당신님의 능력 아래 만물을 두시는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 우리는 이것을 신뢰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억제하셔서, 당신님의 허락과 뜻이 없이는 그들이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으시고, 모든 일을 우연에 맡긴다고 말하는 에피쿠스학파의 가증스러운 오류를 거절한다.

 

지팡이교회는 제13항을 공부를 할 때, 위에서 왜 이렇게 기록해야 하는 환경을 생각해야 합니다. 벨기에(벨직) 신앙고백서의 저자인 귀도 드 브레와 네델란드 지역 중 벨기에 주위의 사람들은 카톨릭으로부터 박해와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강설을 듣고 싶어도 비밀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귀도 드 브레는 자신의 자유와 생명이 불확실한 가운데 , 제13항을 기록하면서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주권적이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불확실한 생명의 환경에서, 자신은 안전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맨 처음 시간에 그의 죽음의 모습을 배웠습니다. 다시 기억을 해 봅시다. 개신교에 대한 우호적인 귀족들이 보호받으면서 목회를 하지만, 일부 개신교가 성당을 점령을 하면서 성상파괴라는 혐의로 당국에서 군대를 동원해 귀도 드 브레는 주동자라는 이유로 1567년 교수형으로 순교를 당합니다. 교수형을 당하기전 수감자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의 형제들이며, 나는 오늘 하나님 아들의 교리를 위해 정죄를 받아 죽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런 영예를 내게 주실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은 자신의 목숨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교하지만 죽음도 안전하다는 부활의 신앙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귀도 드 브레가 안전하다고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앙고백서의 흐름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1항에서 시작한 하나님의 교리를 이제 제13항에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신앙고백을 간략하게 표현하면, “영원하고, 불가해하며, 보이지 않고, 불변하며, 무한하고, 전능하며, 안전히 지혜롭고, 공의로우며, 선하고, 모든 선이 흘러나오는 원천”이신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귀도 드 브레와 그 시대의 사람들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배시간에 신앙고백을 하는지 아십니까?

 

이제 우리는 제13항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고자 합니다. 섭리 교리는 ‘천지창조’ 교리만큼이나 믿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인간의 지혜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 주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 무한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죄송하지만 사실 ‘천지창조’를 보여 드릴 수 없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은혜 주시는 데로, 인간의 한계는 있지만 최선을 다하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한계는 있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의 선배님들의 고백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7문에서 섭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기억을 떠 올려 보시기 바립니다.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합니다.”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당신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붙드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유지’ 또는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감사합시다. 오늘도 말씀의 풍성한 은혜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제13항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제목을 다루지만, 내용으로 들여다보면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성경이 하나님과 당신님의 창조하신 우주와의 관계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웠던 제12항에서 “성부께서 말씀, 곧 당신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무에서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고백을 하면서, “또한 우리는 성부께서 당신님의 영원한 섭리와 무한한 능력으로 모든 천지만물을 계속해서 유지하시고 통치하심”으로써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인간을 섬기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창조에 대한 것만 구체적으로 기록한 반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것은 간략하게 “유지하시고 통시하심”으로 소개합니다. 제13항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서의 첫 시작을 보면 “우리는 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방치하시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맡기지 않으시고, 당신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심으로, 당신님의 지시 없이는 이 세상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무에서 유로 하늘과 땅을 그리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시계를 만든 후 동작을 하든 말든 내버려두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시계를 만든 후에는 그것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지할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버려두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고 통치”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자신들의 생명이 어느 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순간에도 이런 고백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하면 ‘운명이나 우연’에 두시는 것이고, 마귀에 손에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운명과 우연으로 두시지 않고, 직접 섭리로 사람이든 식물이든 모든 자연만물을 붙드시고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다스리고 통치’하십니다. 오히려 창조를 받은 만물은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104:29-30절을 보시면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만약에 그냥 두었다면 지금 세상은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느혜미야는 느9:6절에서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만물을 보존하시고 유지하시고 통치하심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창조함을 받은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 의존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유행하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성경 말씀 외의 가르침을 따라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자신들을 위한 ‘장로들의 전통’을 만들어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분명하게 잘못된 사상을 경계하고 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전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신앙고백서를 만든 것입니다. 귀도 드 브레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가증스러운 오류와 잘못을 배격한 것입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은 에피쿠로스(주전 342-270)의 사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는 신들에 대한 생각들이 많았지만 좀 특이한 경우이기도 합니다. 신들은 그리고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우연히 창조된 것을 가르칩니다. 영원한 것은 물질이고, 사람도 물질이고 영혼도 물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물질이라고 하면서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라고 하면서 종교는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종교가 있다면 죽음은 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로마와 그 주변 사람들은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의 끝으로 생각함으로 괘락을 좋아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스토아 철학에서는 모든 것은 물질이라 보면서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운명입니까?

 

이러한 사상은 그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시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종교개혁의 시대에도 되살아나기 시작을 하면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에피쿠로스파에 속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나중에 인본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당신님께서 유지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임을 전해야 합니다. 단지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것으로 그냥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스리면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한 목적을 따라서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합시다. 욥12:10절은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잠16:1, 9, 33절을 보시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생각하면서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시139:15, 16절에서 다윗은 심지어 주께서 자신이 어머니의 모태 안에서 육체적으로 형성되기 전에 다윗의 생애에서 일어나게 될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하는 자기 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귀도 드 브레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이 교리로 어떤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날 수 없고, 오직 우리의 은혜로운 하늘 아버지의 지시로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나 그 수도 세시기 때문에, 참새 한 마리도 우리 아버지의 뜻 없이는 떨어질 수 없도록(마10:29), 당신님의 능력 아래 만물을 두시는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다윗의 삶을 생각하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다윗의 부모가 될 사람을 결정하시고, 다윗이 목자가 되고, 사자를 죽이고, 사울이 박해할 것이고, 결국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밧세바와 죄를 범하고, 아들 압살롬이 대항하여 반역할 것을 아셨지만 하나님은 당신님의 섭리로 보존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윗의 모습을 떠 올리게 하심으로 특별한 방식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으면서 생활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신앙고백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억제하셔서, 당신님의 허락과 뜻이 없이는 그들이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귀도 드 브레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될지 모르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만물을 통치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많은 사람들은 바른 길로 가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신앙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만들어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이익과 복을 누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는 생각을 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하는 오늘날의 시대에 지팡이교회는 사도신경을 사용하여 고백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인정합니다. 이런 고백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6문에서도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무에서 창조하셨고, 영원한 경륜과 섭리로 그것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때문에,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고백을 믿습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고백을 하지만 우리 시대를 보면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하는 신앙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가르치지만, 우리는 인간의 주권만 인정하고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그냥 외면하지 않습니다. 유지하고 통치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성경에 있는 것으로만 인정하고 그 어떤 잘못된 가르침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은 인간의 이해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 성경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한 사람의 머리카락을 셀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머리카락도 셀 수 있다고 증거 하십니다. 그리고 새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질 수 없도록 안전하게 지키시고 있습니다. 마10:29-31절은 분명하게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성경은 증거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다음 주 시간에 연장하여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좋은 의미로 전달할 수 있도록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각자 은혜 받을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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