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팡이교회

오후모임강설

조회 수 520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1:12-26
강설날짜 2017-09-10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대로 기도와 선한 질서로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어야 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각자가 잘못된 방법으로 끼어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소명을 받게 될 때를 기다려서 확실한 증거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이렇게 하여 자신의 소명이 주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말씀 사역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동일한 권세와 권위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유일한 우주적 감독이시고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거룩한 규례가 훼손되거나 거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 각자가 말씀 사역자들과 교회의 장로들을 그들의 사역 때문에 특별히 존경해야 하며 불평이나 다툼이 없이, 할 수 있는 대로 그들과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초대교회 교부 키프니아누스를 아십니까? 이미 우리가 제28항 “교회에 가입해야 할 의무”에서 배운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 때의 글을 다시 적어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치하지 말 것과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쓸 것을 충고를 하면서, 배교자들이라도 회개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한 것은 당시 로마로부터 핍박을 받으면서 많은 배교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 노아의 방주 밖에 있었던 자마다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처럼 교회 밖에 (바깥에 끝까지) 머물러 있게 될 자 또한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회개를 촉구한 교부입니다.

 

그는 카르타고 출신으로 지금의 북아프리카 출신(튀니지)으로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변호사와 수사학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주후 245-248년 사이에 세례 받은 것으로 생각 됩니다. 세례를 받은 지 오래지 않아 집사로 장립(안수집사, 성경은 서리 집사가 없습니다. 오늘날 안수 집사를 집사로 기록) 되었고 곧이어 장로가 되었습니다. 키프니아누스는 248년 7월과 249년 4월 사이에 카르타고의 감독으로 섬겼습니다. 결국 257년 8월 30일 키프니아누스는 감옥에 갇히고, 그 다음해에는 재판을 받고 처형당합니다. 키프니아누스는 죽기 전 7년 동안 비록 '온건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프리카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사역을 감당한 지도자임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키프니아누스를 이야기 하는 것은 교회의 직분자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에서 태어나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집으로 부름을 받을 때까지 교회의 품속에서 양육을 받고 보호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를 세우고 양육하고 보호하십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첫 부분의 시작을 보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대로 기도와 선한 질서로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어야 함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가르침에 귀를 세워서 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직분자의 선출이 어떠합니까? 돈과 권력입니까? 참 신앙인으로 교회를 위해서 섬기실 분을 선출하십니까? 오늘 제31항에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름으로 직분에 대한 개혁교회의 입장을 분명하게 한 것입니다.

 

직분자들을 선출할 때는 온 신자들(성도)이 다같이 투표하여 선출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원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가룟 유다의 빈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사역자를(사도) 뽑기 위한 것을 행1:23-26절을 보시면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사역자인 사도를 어떻게 선출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내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온 교회 신자들이 세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도 하실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 할 사도라면 당연히 11명의 사도가 뽑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사도 중에 누가 지목하여 선출하면 쉽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 선출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두 사람 중에서 제비를 뽑아 선출했습니다. 사도로 뽑고자 하는 두 사람 다 예수님의 사도로서 적합한 자격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에 아마도 구약에서 때때로 썼던 방법인 제비뽑기로 한 것 같습니다. 성령의 강림이 오시기 전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이후로는 이런 제비뽑기는 이제 하지 않습니다. 성령 강림 후에는 어떻게 직분자를 선출했습니까? 우리도 잘 알고 있는 행6:1-6절의 말씀입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지명하여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셨고, 신약의 교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복음을 들은 후 제자들이 많아지면서 교회 안에서 구제문제로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럴 때 사도들은 구제의 필요성을 알고 너희 중에 일곱 명을 택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워 기도한 후 직분자로 세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직분자를 선출할 때, 사도들은 신자들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라고 기록합니다. 사도들 정도 권위라면 그냥 해도 될 것입니다. 사도들은 주님께서 세우신 것을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 신자들이 선출하도록 한 것입니다. 성령의 강림 사건 후 성도에게 이미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직분자를 선출 할 때 아무렇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선출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위한 것이고 나를 위한 것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대로 기도와 선한 질서로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어야 함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3:1절에서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직분을 사모하는 것은 내적인 부르심이고, 외적인 부르심에는 성도로부터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각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직분자를 어떻게 선출하고 있습니까? 행14:23절을 보시면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선교 여행에 동반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후8:18절은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즉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말씀은 2-3세기 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2세기 교회문서를 보면 “주님께 족하게 여겨지고, 온유하고 돈을 사랑하지 않으며, 진실한 것으로 입증된 감독과 집사들을 여러분들을 위해 지명하라”고 했습니다. 3세기의 교부 키프니아누스는 “훌륭한 목사를 택하고 무자격한 자들을 거절하는 권한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교회는 성경적인 가르침에 충실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성경의 말씀대로 직분자를 선출해야 합니다.

 

왜 그러면 귀도 드 브레는 이런 글로 고백해야 했던 것입니까? 당시 카톨릭은 사적인 느낌과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선출했고, 사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귀도 드 브레는 교회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 선출해야 하는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런 후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각자가 잘못된 방법으로 끼어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소명을 받게 될 때를 기다려서 확실한 증거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이렇게 하여 자신의 소명이 주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내적인 부르심과 외적인 부르심으로 확증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신을 선거를 통해 직분자로 선택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말씀 사역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동일한 권세와 권위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유일한 우주적 감독이시고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거룩한 규례가 훼손되거나 거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 각자가 말씀 사역자들과 교회의 장로들을 그들의 사역 때문에 특별히 존경해야 하며 불평이나 다툼이 없이, 할 수 있는 대로 그들과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는 목사이든 장로이든 집사이든 신자이든 모두 동등된 것입니다. 마23:1-1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특히 6-7절은 생각하면 그들은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칭찬 받기를 좋아 한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희는 모두 다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자 위에는 벧전5:4절에서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즉 목자장이시고, 벧전2:25절에서는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즉 영혼의 목자와 감독으로 오직 예수님만 계실 뿐입니다. 그런데도 카톨릭은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했고 오늘날의 교회도 점점 이상한 직분자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혁교회는 교회의 통일성을 위해서 “역사적으로 교회에 대한 유혹이 말씀의 봉사자들인 목사들에게 가장 강하게 표출되어 왔으므로 벨기에 신앙고백은 ”말씀의 봉사자들은 어떤 위치에 있든지 동등한 권한과 권위를 가진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목사들에게 주는 강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말씀의 봉사자들이 교회에 교권체제를 도입해온 사실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2세기까지만 해도 목사와 장로는 동일한 권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장로와 목사에게 같이 사용한 것을 목사에게만 적용을 하면서 감독을 뽑는 것으로 강등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감독들 간에도 대감독을 만들어 차별하면서 교권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지상의 교회에는 교회의 머리가 교황이고 그 아래 대주교, 주교, 대감독, 신부 등의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 사역자들과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가 있어야 합니다. 이 당회는 정규적으로 모여야 하고 목사가 의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가 의장이라는 사실은 목사가 장로들보다 더 권위와 힘을 부여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두 동등된 것이고 회의 진행을 위한 질서입니다. 그러면서 성도는 살전5:12-13절을 생각하면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하심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하나를 유지하면서 섬기라는 것입니다.

  • ?
    함께그린 2017.09.13 21:57
    목사님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
    전은덕 2017.09.15 21:36
    늘 주님의 길을 잘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설교자 성경본문 강설날짜 조회 수
34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8항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전은덕 갈4:1-7 2017-03-12 444
33 제26항 그리스도의 중보 전은덕 갈4:1-7 2017-07-09 382
32 전도에 관한 것- 신계후 성도 전은덕 겔37:1-14 2022-05-01 448
31 16. 교회론-교회의 표지-강설, 성례, 기도(권징) 2 전은덕 고전11:16-32 2020-09-20 494
30 5. 교회론-교회란 무엇을 말하는가? 즉 교회의 표상적 표현들 전은덕 고전12:15-27 2019-12-15 1188
29 제28항 교회에 가입해야 할 의무 전은덕 골3:12-14 2017-08-13 447
2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시작하며 전은덕 딤후3:16-17 2017-11-19 551
27 제36항 국가의 정부 전은덕 롬13:1-7 2017-10-29 280
26 제22항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 전은덕 롬3:1-8 2017-05-28 518
25 제23항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2) 전은덕 롬4:1-8 2017-06-11 452
24 보편적인 교회란? 전은덕 마16:13-21 2023-07-09 103
23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인성과 신성) 전은덕 마26"36-46 2017-03-19 694
22 15. 교회의 표지-강설, 성례, 기도(권징) 전은덕 마28:16-20 2020-09-13 565
21 2. 교회론 –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현재성 file 전은덕 마4:17 2019-11-17 816
20 3. 교회론- 하나님 나라와 교회 file 전은덕 마5:1-12 2019-11-24 652
19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전은덕 마9:13 2023-07-16 111
18 은혜의 방도인 성찬 전은덕 막14:22-26, 마26:26-30 2017-04-02 397
17 1. 교회론 어려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은덕 막1:14-15 2019-11-10 493
16 9. 교회론- 교회의 직분론(목사와 장로 중심으로) 전은덕 빌1:1 2020-05-17 646
15 11. 교회론- 예배 전은덕 빌1:1 2020-05-31 423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