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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종교개혁를 생각하면서 고난과 인내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전은덕목사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위해 계획하고 실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 안에 들어있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자신의 업적을 높이고자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지도 않았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독일 출생으로 1483년 11월 10일 출생하여, 1546년 2월 18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신 낙원으로 가셨습니다. 루터는 처음부터 목회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의 생각대로 법학을 공부 하였습니다. 부친은 광산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였기 때문에 루터도 세속적으로 출세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루터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루터는 함께 길을 가던 친구가 벼락을 맞는 것을 보고 그 때부터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로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은 벼락이 비껴가는 경험을 한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루터는 1512년 28세에 신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대학에서 부여해준 권위에 따라서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직에 충실하게 됩니다. 교수직을 해도 루터는 자신의 죄성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만 알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성실하게 소개하는 교수직을 하면서 성경의 권위 아래 복종하려고 노력을 한 루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로마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면 자신의 죄성을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자신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 갔습니다.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에 대해서 대학에서 이미 강의까지 하던 시기였습니다.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아직 회심이 무엇인지 “참으로” 알지 못하였던 때였습니다.

 

늘 회개를 하고자 고해성사를 해도 불가능했던 어느 날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하여, 밤낮으로 묵상을 하는 중 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롬1: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입니다. 루터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루터 자신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하나님의 선물, 곧 믿음으로 살게 하는 그런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심판자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의롭게 하시는 그 수동적 의이며, 그래서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러면서 루터는 목회자로 교회를 섬기던 신학자요 설교자로서 “목양적 양심” 또는 “목회적 배려”로 종교개혁을 하고자 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루터에게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회개를 하고자 고해성사를 했지만 롬1:17절의 말씀을 통해 자유 함을 얻었던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선택하심이고 단지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루터는 세속 권세에 맞서서 정권을 뒤엎으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개혁해 가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카톨릭은 부패와 관습과 거짓된 관행으로 극심하게 타락한 때였습니다. 로마교황청은 세속적인 이익에만 몰두하였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타락한 현실을 하나씩 개혁해 나가고자 했습니다. 개혁은 하나님의 율법과 정의를 교회와 세상 속에서 정착시키는 것이고,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것입니다.

 

루터 당시 카톨릭은 만성절이라고 하여 미신적인 관행을 정당화하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것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로 든 것은 요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이용한 것입니다. 원래 그곳은 성 안과 밖으로 오가면서 기르던 동물에게 물을 먹이는 장소였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요5:4절을 보시면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병자는 그곳에 들어가고 싶어도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예수님께서는 요5:8-9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고 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장소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11월 1일이면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점을 악용하여 성직자들은 자신에게 찾아와서 먼저 기도를 받아야만 기적이 일어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병을 낫고자 하는 자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돈과 재물을 쌓고자 했던 것입니다. 과연 성경은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모르는 현실에서 성직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순교자들에 대한 기념축일입니다.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을 기리는 것으로 사도들과 모든 성자들과 순교자들과 의로운 신앙고백하는 자들의 유품들이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성도에게 의로움을 가져다주는 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로 그 날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등이 서로 다르지만 로마카톨릭은 11월 1일로 생각하고 지킵니다. 그 날이 되면 로마카톨릭은 그들의 유품들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특별한 기적이 일어나는 날로 가르친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미신적 행위지만 기적신앙으로 퍼지게 됩니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성직자들은 수많은 유품들을 성당 안에 모았습니다. 어느 해가 되던지 11월 1일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당 안으로 모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면죄부입니다. 면죄부를 구매해서 연옥으로부터 구출되는 효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용서함을 받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악용을 한 것입니다. 면죄부가 필요했던 이유는 로마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화려하게 건축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을 완성함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라는 것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면죄부만 아니라 대성당을 짓기 위해 성직매매도 하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외적인 것이 있었다면, 루터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루터의 개혁은 성경 신학적인 성취로 이루어진 것이고, 신자들의 삶과 생활을 바꿔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반 백성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 당시 성경 번역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것입니다. 루터는 고난을 이겨내고, 인내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길을 걷고자 했던 믿음의 선배님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 복음이 전해진지 100년이 지난 현실을 보십시오. 믿음의 선배님들이 남기신 신앙의 유산이 숨 쉬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루터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는 주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난과 인내는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핵심입니다. 루터는 로마교황으로부터 파면을 당해도 죄의 노예 상태에 있는 인간의 부패에 대해서 오직 은혜라는 것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만이 인내와 고난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주의 길을 잘 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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