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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백화점에서 ‘성찬떡’이란 것을 판다. 얇고 동그란 원 모양의 하얀 모양으로 아주 세련되어 보인다. 세련되어 보여서일까? 언제부턴가 이 성찬용 웨이퍼의 사용이 점점 확대된다. 예전 교회는 카스텔라 빵을 육면체 모양으로 잘라서 사용하곤 했는데, 그것은 유행에 뒤떨어진 같다. 새하얗고 동그랗고 얇은 웨이퍼를 사용하는 것은 더 깔끔하고 이 시대 트렌드에 맞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개혁교회는 성찬의 물질보다도 성찬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성찬 웨이퍼를 사용하든 빵을 잘라 사용하던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성만찬 예식에서 단순히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전체예식이 의미가 있어서, 목사를 통해 즉 떡과 잔이 내게 주어질 때,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내게 주어진 것까지를 포함한다면, 이 떡의 사용도 뗀 떡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얗고 동그란 웨이퍼가 아니라 뗀 떡을 사용하는 데엔 중요한 신학적 이유가 있다.

 

왜 개혁주의자들은 새하얗고 동그란 오블라텐(Oblaten, 편원모양 성찬떡) 사용을 거절하고 뗀 빵을 사용했을까? 이 논쟁이 가장 격렬했던 곳은 하이델베르크였다. 주위의 루터주의는 모두 오블라텐을 사용하고 있을 때, 하이델베르크는 뗀 빵을 사용해야만 했다. 격렬한 논쟁을 통해 뗀 빵을 사용해야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빵을 떼면서 본을 보여주셨고, 그의 제자들도 그렇게 행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성만찬을 제정하시면서 떡을 떼어주셨다(마 26:26-28, 막 14:22-24, 눅 22:19-20). 오순절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 더한 후에도 떡을 떼었다(행 2:42). 주일에 떡을 떼기 위해 모였고(행 20:7), 그렇게 초대교회가 떡을 떼는 것은 하나의 표였다(고전 10:16-17).

 

둘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찢긴 것을 나타낸다. 베자는 뗀 빵이 우리 눈앞에서 놓이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몸이 죽음의 고난을 통해 찢기어진 것과 같다고 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에서 빵이 떼어지는 것(gebrochen)과 그리스도의 몸이 찢기는 것(gebrochen)에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75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몸이 찢기셨으며 성만찬 예식에서 내 앞에 오는 뗀 빵을 보며 나를 위해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뗀 떡은 우리를 위해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보여주며, 우리 죄가 얼마나 무겁고 큰지를 가르친다. 그리스도는 떼신 후에 이것이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고 하셨다(고전 11:24).

 

셋째, 빵을 떼는 것은 교회가 한 몸인 것을 보여준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진 한 몸이다. 뗀 빵을 취하는 것은 원래 한 빵에서 떼어진 것을 취하는 것이니 원래 하나의 빵에 속했다는 것을 더 드러낸다. 한 떡에 참여하는 교회는 한 몸의 지체로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성만찬 예식은 뗀 떡을 사용함으로 성만찬에 참여하는 이들이 한 몸의 지체임을 보여주고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7).

 

개혁주의자들이 오블라텐을 거절하고 뗀 빵을 사용하기 위해서 펼친 수고와 싸움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가는 베른(Bern)의 예로 충분하다. 종교개혁가 아브라함 무스쿨루스(Abraham Musculus)가 1582년에 뗀 빵을 사용하는 것을 시도했으나 반대에 부딪혀 개혁파 도시였던 베른도 1605년에서야 뗀 빵으로 바꾸었다. 여러 개혁주의자들이 뗀 빵을 사용하기를 주장하고 반대자들과 논쟁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어렵게 뗀 빵으로 바꾸었는데, 지금 우리는 선배들이 얻어낸 개혁의 결과를 너무 쉽게 내어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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