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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에 대한 교리설교, 이렇게 한다]

 

며칠 전에 이정규 목사님의 회개에 관한 책,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좋은씨앗>이 출간되었지요. 그때 언급한대로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는 죄에 대한 지적과 회개를 촉구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신학실종에 윤리실종, 결국 세간의 손가락질 대상이 된지 오래지요. 이런 현실 속에서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회개에 대한 교리설교>에 관한 김병훈 교수님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의 글을 포스팅해 봅니다. ~^^

 

<회개 설교가 절실한 지금의 한국 교회>

 

1884년에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하여 진 후 1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복음의 교훈에 비추어볼 때 한국 교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교회의 양적 성장이 매우 빨랐던 탓에 한국 교회에 부흥이 일어났음을 말하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양적으로 수축이 되어가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 이유를 분석하면서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기를 한국 교회가 너무 물량주의적인 양적 성장에만 치우쳤으며, 성경의 교훈에 일치된 신앙을 가르치고 배우며 실천하는 일에서 점차 멀어져 복음에서 이탈된 세속화 현상을 보여 왔으며, 그 결과 복음의 교훈대로 살아가는 일에 무력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까닭에서 인지, 여러 교단들은 2007년이 되자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된 회개의 대각성이 다시 임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표명하고, ‘어게인 1907년’을 표어로 내걸며, 교회의 윤리적 개선과 회개를 강조하는 다양한 형태의 시도들을 하였다. 교단별로, 또는 초교파적으로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신학논문들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회개와 변화를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한국교회의 변화를 뚜렷하게 이끌어 내지 못했으며, 일과성에 그치는 구호와 행사들로 끝나고 만 듯하다.

 

잘 알려진 어느 교수의 말을 빌면 한국교회의 문제는 단순히 심각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판단은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돈, 권력, 명예라는 우상을 섬기는 죄에 심각하게 빠져 있으며, 그 심각성은 회개의 가능성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타락해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렇다면 그 까닭은 한편으로는 한국 교회가 겉으로는 회개를 말하지만 진정성이 의심을 받을 만큼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의 교훈 안에서 회개가 왜 중요하며 또한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회개를 하도록 어떻게 이끌지에 대한 가르침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인식을 가지고,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회개를 설교하여야 할지에 대해 몇 자를 적기로 한다.

 

<개념의 정리: ‘중생’ ‘회심’ ‘믿음’ 그리고 ‘회개’의 구별>

 

중생, 회심, 믿음, 그리고 회개의 말들은 흔히들 뚜렷한 개념적 구별을 하지 않은 채 사용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회개에 대한 교리설교를 한다고 할 때, 이러한 용어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개혁신학자들이 이 용어들을 구별함에 있어서 엄밀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용어들에 대해서는 아키발드 핫지(Archibald A. Hodge)의 도움을 빌면(「Outlines of Theology」489쪽 참조)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할 수 있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신비로운 활동으로서 새로운 성품을 심는 것인 반면에, 회심이란 일반적으로 중생으로 인한 새 성품이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시작하는 활동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고, 믿음이란 지적으로 영적 진리를 받아들이고, 의지에 따라 받아들인 진리를 행하는 새 성품에 따른 활동이다. 이 믿음이 없이는 사랑이나 소망이나 평강의 은혜 누림도 없으며 회개도 없다. 회개라는 말은 회심이라는 말과 일반적으로 비슷하게 이해가 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첫째로 회심은 대체로 회개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믿음의 첫 활동일 뿐만 아니라 믿음의 열매인 사랑이나 거룩함, 죄를 미워하는 것 등의 경험을 망라하는 개념이다. 반면에 회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죄를 미워하고 포기하며 믿음을 좇아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을 말한다. 둘째로 회심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첫 단계들로서 새 성품에 따른 첫 경험들을 말하는 반면에, 회개는 신자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적으로 행하여야 하는 것에 적용이 된다.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486쪽)는 회심에는 회개와 믿음이라는 두 요소가 있다고 풀이를 한다. 회개는 성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반면에, 믿음은 의롭다함에 관계하는 것으로 설명을 한다. 회개란 죄인의 의식적인 삶 안에 나타나는 변화이며 죄인으로 하여금 죄에서 돌이키도록 하는 변화를 말한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

 

성경에서 가르치는 회개는 단순히 어떤 잘못된 일의 결과가 나타났을 때에 느끼는 수치감으로 인한 슬픔이나 후회 또는 자기 정죄와 같은 감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양심에 의하여 느끼는 자연적인 일이기도 하다. 또한 회개는 잘못된 일로 인하여 무서운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단순한 공포감이나 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후회의 감정이나 고통이 아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을 함으로써 받게 될 영원한 심판의 형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일 뿐 율법 자체에 불순종한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결여하고 있다.

 

진정한 회개란 성령의 도움으로 인하여 율법의 경고를 받아 자신의 영혼 속에 뿌리 깊이 내려져 있는 본성의 부패함을 깊이 깨닫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이 행한 수많은 죄악들을 상기하면서 이러한 죄악을 낳는 자신의 본성의 패역함을 들여다보며, 이 모든 것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역하고 그의 선한 율법의 교훈을 어기며 결국 자신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어 간다는 영적 사실을 깨달아 비통함으로 쓰라린 고통을 느끼는 심적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참된 회개는 그 초점에 있어서 앞서 말한 두 가지 경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연적 회개라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드러난 결과에 대해 단순히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후회에 그 초점이 있으며, 율법적 회개라 할 수 있는 두 번째는 율법을 거슬리는 자신의 영혼보다 율법의 불순종으로 인해 받아야 하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 그 초점이 있다. 그러나 참된 회개의 초점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대속의 은총을 감사하며 거룩함을 열망하는 경건에 있다. 그러한 경건은 죄에 대해 아파하며 미워하는 마음을 갖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 분의 교훈에 순종하며 살기를 소망하며 결단하는 노력을 행하게 한다. 이러한 회개라야 생명에 이르는 회개라 할 수 있으며 다른 두 경우들과 구별하여 복음적 회개라 말한다.

 

이처럼 회개의 초점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칫하면 회개가 아닌 것을 회개로 간주하거나,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공포감의 감정을 회개로 간주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회개를 선포함에 있어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주장이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고 그에게로 나가도록 하는 회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회개를 완전히 한 자를 받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직 완전한 회개를 못한 자라도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러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가는 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용서 안에서 진정한 회개를 실행하게 되는 법이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회개는 꼭 필요한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회개를 못한 자라도 믿음으로 나가는 자를 받아주신다면 회개를 꼭 필요한 것일까? 구원은 회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구원을 얻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한 것이며, 죄인의 회개는 구원의 근거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꼭 필요한 조건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죗값을 치루는 속상이나 죄 용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활동이므로 회개를 그러한 것들의 원인인 것으로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죄인도 회개가 없이는 용서를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죄인들에게 반드시 필수적이다.(15장 3항)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위한 공로적 조건이다. 회개는 구원을 위한 공로적 조건이나 근거는 아니다. 그렇지만 회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신앙고백서는 죄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으로 설명을 한다. 물론 의식적인 회개를 할 수 없는 유아기에 죽은 아이들의 경우에 의식적인 회개가 없다고 하여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성인들의 경우에는 회개는 구원을 얻기에 필요한 조건이다. 비록 어려서부터 믿음 안에 있었던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 비하여 회개의 강렬함이 약할 수는 있겠지만 성인에게 있어서 회개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의롭다함을 받는 공로적 조건은 믿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믿음은 단지 의롭다함을 받는 도구적 조건일 뿐이다. 그렇지만 믿음은 도구적 조건으로서 의롭다함을 받기에 필요불가결한 필수적 조건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칭의는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하여 칭의가 행함의 열매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행함은 칭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한편으로는 의롭다함을 받는 믿음을 일으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화를 실행하는 행함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한 성령께서 행하시는 두 가지 은혜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칭의와 성화는 비분리적이며 믿음은 행함으로 증거를 받는다. 바로 이러한 이치에 따라서 회개는 의롭다함을 받는 일과 비분리적 관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회개는 성화의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75문항)

 

회개가 영생을 얻기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교훈적 명령이라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음”(행 17:30)을 기억하여야 한다. 회개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교훈적 명령 앞에서 회개가 필요불가결한 요구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회개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죄사함을 경험하고 누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것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분명하다. 만일 어떤 이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회개의 생활이 없다면 그는 의롭다함의 의미를 참으로 깨달은 자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회개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소위 구원파에 속한 자들은 바로 이 점에서 이단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의 생활은 의롭다함을 받은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하는 신앙적 표현이기 때문에(롬 2:4) 회개를 실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명에 이르는 진정한 회개란 어떠한 것이며, 또한 어떻게 실행을 하나?>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76항에서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대해서 다음과 정리하고 있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자신이 지은 죄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죄의 더러움과 미움을 보고 느끼도록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죄인의 심령 안에 이루어지는 구원의 은혜이다. 회개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달아 죄를 뉘우치고, 자신의 죄로 인해 슬퍼하고 죄를 미워하며, 모든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과 동행하며 새로운 복종의 길로 나가기로 끊임없이 목적하고 노력을 하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5장 2항)과 위에 소개한 대요리문답(76문항)에 따르면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다음의 몇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야 하며, 죄의 더러움과 죄를 행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성품과 율법의 거룩함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깨달음이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믿음과 분리되지 않으며 믿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회개는 단지 죄에 대한 유감스러운 감상이나 죄의 결과에 대한 자책과 그로 인한 미치게 될 형벌에 대한 공포감의 표현이 아니다. 진정한 회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감사하면서 자신의 죄악을 떠나 거룩한 순종을 행하기로 결단을 하는 동기와 감정과 의지와 행위의 변화를 함축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의지 전체를 돌이키는 전적인 것이며, 또한 자신의 내면의 새로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그러면 회개는 무엇을 어떻게 행하여야 할까? 청교도 신앙을 계승한 18세기 스코틀랜드 존 콜쿤(John Colquhoun, 1748-1827)은 제시한 회개의 여섯 가지 실천요소를 따라 설명을 해보자(지평서원, 「참된 회개」참조).

 

(1) 참된 회개의 실행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의롭다는 교만이 무너지는 데에서 시작된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비천한 죄인인가를 고백하고, 다른 사람들을 오히려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함을 가진다. 자신이 얼마나 비열하고 가증하며 혐오스러울 정도로 죄를 사랑하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할 뿐만 아니라, 생각과 말과 행동의 모든 면에서 의를 행하지 못하는 무능력자임을 절감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회개의 첫걸음이다.

 

(2) 이어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슬퍼하며 애통한다. 이 슬픔의 대상은 단지 자신이 죄로 인해 겪게 될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을 거슬림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거슬려 대적하며 커다란 죄를 하나님께 범하였는지를 아프게 탄식하는 것이다. 자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도록 못박은 자이며, 자신의 심령 안에서 거룩한 양심을 일깨우던 성령 하나님을 근심케 한 자라는 사실 앞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울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통함으로 탄식한다.

 

(3)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를 대적해 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쓰라린 애통함은 모든 죄를 미워하고 혐오한다. 죄를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을 거슬리는 극악한 것으로 여기며 이를 혐오하고 더럽고 가증한 것으로 여긴다. 죄를 범하는 자신의 양심을 달래기 보다 오히려 자신의 부패를 보고 분노하며 정죄한다. 곧 자신의 가슴을 치는 것이다.

 

(4)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고 혐오하는 죄가 자신 안에 뿌리깊게 있음을 탄식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상이, 마치 알몸이 백주에 드러나듯이, 낱낱이 드러남에 낯이 뜨뜻하고 수치심을 피하지 못한다.

 

(5) 이제 하나님 앞에서 백일 하에 드러나는 자신의 죄과와 악함을 감히 감추려 시도하지 않으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한 죄인임을 고백한다. 죄의 고백은 하나님을 향한 것은 하나님에게, 사람들에게 행한 것은 사람에게, 공적으로 지은 것은 공적으로, 사적으로 지은 것은 사적으로 행한다. 그리고 유의할 것은 죄의 고백은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 죄의 시인이다.

 

(6) 끝으로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회개를 회개되게 하는 참된 본질이다. 왜 회개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인가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개를 고백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율법적 회개에 지나지 않는다.

 

정녕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알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깨달은 자라면 그의 회개가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교훈을 살펴서 그것에 감사의 심령으로 순종한다. 이 모든 일을 기쁨으로 신속하게 그리고 삶 전체 영역에 걸쳐서 행한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설교하기 위한 준비>

 

회개를 설교하기 위한 준비는 무엇보다도 회개 교리를 바르게 그리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설교자 자신이 회개의 삶을 올바른 회개 교리에 따라 실천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의 문제는 설교자 개개인의 문제이므로 여기서 논할 바는 아니다. 설교자 자신이 회개 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않게 되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자연적 회개, 곧 단순히 어떤 잘못된 일의 결과가 나타났을 때에 느끼는 수치감으로 인한 슬픔이나 후회 또는 자기 정죄와 같은 감정을 회개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율법적 회개, 곧 잘못된 일로 인하여 무서운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단순한 공포감이나 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후회의 감정이나 고통을 회개로 인정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회개 설교를 하기에 앞서 설교자가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회개 교리를 학습하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첫째로 개혁신학의 표준적인 교의학 책을 섭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찰즈 핫지(Charles Hodge)의「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아키발드 핫지(Archibald A. Hodge)의「신학요강(Outlines of Theology)」, 또는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개혁주의 교의학(Reformed Dogmatics)」등을 읽는 것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개혁주의 신앙문서들을 살펴서 익히는 일이다.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소개되고 있는 신앙문서들만을 말한다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들을 공부함에 있어서 참조할만한 주해 또는 해설서는 여러 종류가 출판이 되어 있다.

 

이를 테면 개혁주의 신행협회에서 번역, 출판한 G.I 윌리암슨(Williamson)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강해」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해설」,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에서 출판한 A.A. 핫지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개혁주의 신행협회에서 나온 고든 클락(Gordon Clark)의 「장로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그리고 부흥과 개혁사에서 번역, 출판한 R.C. 스프로울(Sproul)의 3권으로 구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등을 열거할 수 있다. 특별히 최근에 흑곰북스에서 출판한 황희상의 「특강 소요리문답(상)」은 학습자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어 추천할만 하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강설하기에 도움을 주는 책으로는 성약출판사에서 나온 김헌수의 4권의 시리즈로 된「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이승구의 3권으로 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김병훈의 「소그룹 양육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고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에서 번역, 출판한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이 있다. 특별히 우르시누스의 책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하는데에 참여한 저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요리문답에 대한 상세한 교리적 해설을 충분하게 담아주고 있다.

 

세 번째로 청교도들의 글을 읽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철저한 개혁신학의 바탕 위에서 명료한 교리적 이해를 가지고 성경의 충실한 주해를 기초로 회개 설교를 실제로 행한 자들이다. 청교도 목사들은 목회자이며 동시에 또한 신학자로서의 실력을 갖추고 회개의 성경과 교리적 이해를 설교의 틀로 선포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회개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이며 충분한 답이 된다. 청교도 서적들은 지평서원, 부흥과 개혁사, 진리의 깃발, 청교도 신앙사 등 몇몇 출판사들에 의하여 꾸준히 보급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지평서원에서 출판된 청교도 서적들 가운데 회개에 관련하여 읽어둘 필요가 있는 책들 몇 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리차드 백스터의「회심」, 존 번연의 「상한 심령으로 서라」, 존 콜쿤의 「참된 회개」, 제임스 뷰캐넌의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그리고 찰스 스펄젼의 설교 모음집, 「회심을 위한 불같은 외침」등이다.

 

<회개 설교를 어떻게 행할까?>

 

실제로 회개 설교를 어떤 방식을 따라 하는 것이 좋을까? 성도들에게 설교를 할 때, 회개란 비단 복음을 듣고 처음 그리스도 앞에 나올 때뿐 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감사의 찬양으로 드릴 신앙의 활동 가운데 하나임을 하여 깨우치도록 하여 회개의 바른 개념을 정립하도록 해줄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첫 번째로 고려할 방식은 교리해설을 위한 설교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르시누스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을 참조한다면 다음의 순서를 따라 설교할 수 있겠다.

 

(1) 반드시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하는가?

(2) 회개란 어떠한 것인가?

(3) 회개를 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들을 하여야 하는가?

(4) 회개의 은혜란 무엇인가?

(5) 회개의 열매와 증거는 어떠한가?

(6) 완전한 회개가 가능한가?

(7) 진정한 회개와 모양 뿐인 회개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르시누스의 설명을 읽으면 관련된 성경 본문과 해설이 나와 있으므로 앞서 말한 대로 회개 설교를 하기 위한 준비 학습을 하였더라면 넉넉히 설교 구성을 위에서 말한 주제를 따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 목사 존 콜쿤의 책을 참조한다면 우르시누스의 순서에 따라 설교하기에 충분한 신학적 강설과 성경의 본문들을 공급받을 수 있다. 실제로 「참된 회개(repentance)」(지평서원)에서 콜쿤은 책의 내용을 다음의 순서에 따라 풀고 있다.

 

(1) 참된 회개의 기초,

(2) 참된 회개의 본질과 중요성,

(3) 참된 회개의 필요성,

(4) 참된 회개와 거짓 회개의 분별,

(5) 참된 회개의 열매와 증거들,

(6) 구원얻는 믿음의 우선성,

(7) 칭의의 우선성,

(8) 반론과 그에 대한 답변.

 

콜쿤의 책은 회개 교리를 설교하고자 하는 목사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의 책이다. 이만한 양으로 이만한 내용을 잘 정리하여 제시한 책을 한국어로 번역되거나 쓰여진 책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아무래도 교리 전반에 대한 이해 체계가 분명하여야 하므로 처음 접근할 때에는 어느 정도 부담이 될 수가 있다. 그럴 경우라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대소요리문답을 강해하는 방식으로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고백서는 근거 구절을 상세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그 구절을 설교본문으로 택하여 설교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앙고백서 15장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설교한다고 하자. 먼저 1항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회개”(행 11:18, 슥 12:10), 2항에서 “회개: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감”(겔 36:31, 욜 2:12, 시 51:4 등), “회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왕하 23:25, 시 119:6) 3항에서 “회개와 사죄의 근거”(겔 36:31-32, 엡 1:7), “회개의 절대적 필요성”(눅 13:3, 렘 17:30-31), 4항에서 “죄의 형벌의 필연성”(마 12:36, 롬 5:12), “회개와 죄사함”(사 1:18, 롬 8:1), 5항에서 “진정한 회개”(눅 19:8), 6항에서 “죄의 고백과 용서의 간구”(시 32:5), “회개와 사랑의 보상”(고후 2:8) 등의 제목과 본문으로 설교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따르면 본문 선택이 수월하고 본문을 강해하면서 관련된 회개의 교리요소를 강조할 수 있으며, 결국에 신앙고백서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전체를 마치고 나면 신앙고백서의 개요를 전달하는 것이 된다. 각각의 설교를 하면서 관련된 신앙고백서의 부분을 읽거나 정리하여 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식이 될 것이다.

 

회개를 설교함에 있어서 가장 쉬운 방식은 역시 성경에 나타난 사례를 들어 설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임스 뷰캐넌은 그의 책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지평서원) 2부에서 성경에 나타난 실례들을 제시하여 준다. 여기서 실례란 1부에서 다룬 “죄인들의 회심에서의 성령의 사역”에 대한 실례로 죄인들의 회심한 사건들을 해설하면서 결국 회심 혹은 회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그것은 결국 회중들에게 과연 성경적 사례에 비추어 진정한 회개를 실행하는지를 도전하다. 부캐넌이 제공하고 있는 아홉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빌립보 간수(행 16:19-34), (2) 십자가에 못 박힌 한편 강도(눅 23:32-43), (3) 바울(행 9:1-22), (4) 에디오피아 내시(행 8:26-40), (5) 고넬료(행 10:22,28,34-48), (6) 루디아(행 16:13-15), (7) 디모데(딤후 3:14-15), (8) 오순절 사건(행 2:1-4,12,13,36-41), (9) 성령의 부흥사역(행 21:20-21).

끝으로 회개 설교를 어떻게 구성하여 전달하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자 자신이 회개의 심령으로 불타올라야 한다. 먼저 설교를 듣고 은혜와 감동을 받을 때에라야 회개 설교를 바르게 전할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회개를 설교한 설교문들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을 본문과 설교를 통해 듣는 일이 필요하면서도 또한 적절한 일이다. 이것을 위하여 스펄전의 설교집,「회심을 위한 불같은 외침」(지평서원)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아마도 이것이야 말로 “회개에 관한 교리 설교 - 이렇게 한다”의 첫 걸음이면서 전체 방향의 줄기를 잡아주는 가장 중요한 실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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