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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눅22:14-30
강설날짜 2017-08-27

나는 너희 중에 섬기는 자로 있느니라(눅22:14-30)

 

지팡이교회는 사도신경을 사용하여 하나 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세례와 성찬 즉 성례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 공동체라는 것을 더욱 확인하기도 합니다.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은혜의 방도로 말씀을 사용하여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후 오늘은 주님께서 재정하여 주신 보이는 방식으로 성찬을 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영의 양식”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먹임으로써 영원한 생명까지 자라게 하는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교회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두세 사람이 모여서 예배의식만 하면 교회가 되는 것입니까? 아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설과 성례(세례와 성찬) 그리고 권징(기도)’이라고 했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네델란드, 개혁교회) 이 세 가지가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과연 이 세 가지가 잘 시행되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참된 교회를 지키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참된 교회로 표지를 바르게 하면서 복음을 증거 할 때 “참된 교회는 분명하게 알려”지게 될 것을 믿으면서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순수한 복음의 강설(설교)은 요10:11-12절의 말씀처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 참된 양을 위해 영의 양식을 먹이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참 목자를 따르는 주님의 양입니다.(성도 안에 목사, 장로, 집사를 주신 것은 섬기도록 하는 봉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죄사함”을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보이는 방식으로 빵과 포도주(살과 피)을 사용하여 마26:26-28절은 “받아서 먹으라” 그리고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요6:35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48-55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2.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살과 피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팡이교회는 목자이신 주님의 부르심으로 순종하는 성도요 양으로서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은 당신님의 백성인 양을 위해서 우리 영혼의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성찬을 참여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우리의 영양 섭취을 위해서는 보이는 방식의 성찬을 통해 더욱 믿음이 견고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렇지만 보이는 빵과 포도주에 집착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가신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생각하면서 하늘에 계신 참 구원자이신 분께 우리의 마음을 들어 올려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받을 때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진실로 영양을 공급받고 우리 영혼이 새로워진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성찬의 실제적인 의미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살과 그 자체에 우리를 살리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 의미가 혼돈스러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 자체는 우리와 같은 죽을 육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우리에게 전달할 생명이 충만하므로 ‘생명을 준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고 말합니다. 이 의미에 대해서 칼빈은 요5:26절에 근거를 합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이 말씀은 “그가(예수님)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때에 가지신 은사들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찬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통한 실제적인 유익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공급하여 주시는 양식을 먹을 수 있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성찬을 시행함으로 빵과 포도주를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주는 실제적인 유익을 참으로 취하여 얻는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지팡이교회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찬을 참여하고자 합니다.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마시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찬에서 단순한 기념과 고백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여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하나님 나라의 맛 보기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받는 성도와 함께 그들 안에 영적으로 임재 하셔서 그들의 믿음과 당신님과의 교제를 강화시키고 이를 통해 구원함을 얻은 백성을 먹이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근거가 마18:20절과 28:20절입니다.

 

예수님은. 성찬을 시행하신 후 막22:27절에서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하심으로 성찬은 섬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찬을 먹고 마심으로 서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섬겨야 합니다. 마가복음의 말씀과 병행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라고(눅9:46) 한 것을 아십니까?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님이 앞으로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고 하신 후에 제자들이 논쟁을 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8절에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고 들었지만 이해를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팡이교회는 예수님이 어떤 의미로 하셨는지 이해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유기적인 공동체로 섬기는 귀한 신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를 그리스도의 소유라고 할 때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인이시오 주관자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섬기는데 하물며 한없는 은혜를 받은 우리는 더욱 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격이나 가치가 있어서 당연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정하시고 구속하기로 결정하신 공효에 따라 우리가 구속함을 입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고 있다면 우리의 위치라든지 신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도록 함으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 인격이 내 안에, 공동체 안에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이 은혜로 구원하여 주시고 마음과 인격이 되어 주셨습니다. 심판을 당해야 하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은 고난과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고별의 날인 날에 마치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우리는 오늘 성찬을 통해서 기억함으로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눅22:8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고 하신대로 13절을 보시면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고 하심으로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도 성찬을 하면서 과거의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랑을 생각하는 것이고 또한 자신의 모습을 다시 기억하면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는 하나님나라 안에서 새롭게 변형된 유월절 식사인 성찬을 하라고 제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 이루어진 의미에서의 유월절 식사입니다. 주일날 예배 시간에 강설과 성찬을 함으로 유월절이 이루어졌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신 후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요13:1-13) 십자가 사건이 임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사랑에 대한 마지막 증거로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발을 씻기심 속에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죽음을 통한 죄 씻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의 의미를 모르고(14-23절) 누가 예수님을 팔 것인가를 서로 예수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을 통해서 서로 섬기면서 교회를 이루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목적만 이루고자 한 것을 보면 ‘한심하네’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서로가 고난에 동참을 하면서 지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의미임을 명심합시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십시오. 무엇이라고 기록을 합니까? 나를 팔 자도 여기에 있다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여기서 제자들의 논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크냐라는 문제보다 오히려 복음의 증인으로 큰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각자 자신의 일을 감당하면서 섬기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교회 안에서 지위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입니다. 식당 봉사를 하면 하찮은 것입니까? 쓰레기 분리수거를 안 하면 누가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사를 하면 높은 위치로 생각하십니까? 집사보다는 장로, 장로보다는 목사가 되면 하나님 나라에 쉽게 갈 수 있는 것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서로가 하나입니다. 누가 크냐고 할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구원하여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겠습니까? 구원을 받은 백성은 늘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이 가신 고난과 사랑의 길을 감사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섬김을 생각한다면 자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목사, 장로, 집사의 지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섬기면서 성도의 교제를 함으로 교회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빈부의 격차가 아닌 사랑의 띠로 연결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주의 만찬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당신님께서 준비하심으로 제자들을 섬기고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워가는 제자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당신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고 제자들도 오늘날의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직접 주의 만찬의 식탁을 준비하시고 봉사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누가 크냐에 관심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27절에서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교회는 하나요 서로가 섬기는 나라임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성찬예식을 통해서 당신님의 살과 피로 우리를 먹이십니다. 같은 잔을 사용하심으로 당신님의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이 제정하여 주신 성찬의 뜻을 알고 주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 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시다. 보이는 방식으로 은혜를 주시는 성찬을 통해 더욱 자신의 믿음을 세우고 더 단단하게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교회를 세우심으로 사도시대부터 말씀의 강설과(설교) 당신님께서 제정하신 성례을 하게 하심으로 예배의 중심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배를 통하여 혹독한 핍박의 늪에서 지친 육체와 신앙은 새로운 생기를 얻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굳세게 일어 선 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면서 모인 주님의 날인 주일에 모인 것입니다. 주일에 모여서 예배가 진행되면서도 말씀의 강설과 성례전은 신앙의 결단과 교회를 이루어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배당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구원받은 감격을 증거하고 영광을 돌리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감격적인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의 집례는 위대한 설교자 어거스틴의 죽음을 끝으로 시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교회는 서서히 암흑기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긴 암흑기 동안 말씀의 강설은 흔적을 감추고, 성례전(세례와 성찬식)만이 기독교 예배에 남아서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면서 종교개혁의 시대에는 불행하게도 그 성례전마저도 형식화되고 미신적인 종교행사로 전락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암흑기의 극치의 시대인 16세기 종교개혁은 바로 이러한 예배의 상실 속에 신음하는 성도를 위해서 기쁨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쁨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의 강설과 성례전 중에서 성찬에 대한 우리가 믿는 칼빈의 “영적임재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은 세례라는 표시에 의하여 교회 안에서 하나의 신앙고백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신앙고백을 하는 성도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일생을 통해 말씀으로 양육을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방식인 성찬을 통해서 공급받고 있음을 확증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첫째로,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합된 것을 나타내는 상징인 동시에 보증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밖에 우리와 분리되어 있으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과 한 몸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이것을 믿음에 의해 얻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중의 신비입니다. 그 신비로움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합된 한 몸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좀 어려운 표현이지만 실제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둘째로,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인 동시에 보증이다. 성찬은 우리가 예수님과 한 몸이 된 것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의 살이 우리의 양식이며 그의 피가 우리의 음료임을 나타내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팡이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새 생명을 누리면서, 하늘에 속한 성도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땅의 것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의 몸처럼 될 것을 믿으면서 성찬의 의미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찬을 하기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성찬을 생각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빵 한 덩어리 준비하고 성찬과 관련된 설교를 합니다. 그러면서 찬송을 하면서 세례자는 둘러서게 됩니다. 미세례자는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같은 신앙의 고백을 하는 날을 생각하면서 성찬에 참여합니다. 성찬에 참여한 세례자는 옆에 있는 사람과 평화의 인사(주님의 평안이 당신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한 후 빵을 옆 사람에게 주면서 “당신을 위해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라고 하면서 돌립니다. 빵을 다 돌린 후에 같이 먹습니다. 빵을 먹은 후 포도주를 나누어 주면서 “당신을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라고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이런 형식을 취하여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아실 것을 믿고 기도로 성찬에 참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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