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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16:11-15
강설날짜 2019-07-21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S-elSnAZo6o

유럽의 첫 열매 루디아 성도(행16:11-15)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거룩해야 하고, 진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힘은 나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지 아니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떤 소리를 듣겠습니까? 당신 때문에 ‘교회 가기 싫어요’ 아니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과 일행의 1차, 2차 전도 여행을 보십시오. 너희들 때문에 예수 믿지 아니할 거야 였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일행은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믿기로 한 사람들이 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도록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바울에게 나타난 마게도냐인의 환상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 그렇지 저번주 말씀이 떠 올라야 할 것입니다.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라는 제목도 떠 올라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날의 터키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아시아에서 전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갔습니다. 그런 후 무시아로 그리고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 바울에게 “예수의 영”은 그 지역으로 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전도 계획에 대한 수정이 필요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시아에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성령의 인도는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지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은 드로아에서 무엇을 보도록 하셨습니까? 성령은 바울이 환상을 통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환상은 마게도냐인의 환상이었습니다.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신이라고 하겠지만, 복음은 아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게 하심으로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음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유럽에서 일어나는 복음을 알 수 있도록 하십니다. 성령은 바울에게 시각적인 것을 동반한 초자연적인 현상을 주심으로 새로운 역사의 흐름으로 인도하시고 온 누리에 복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환상을 본 바울은 일행들에게 말함으로 그들도 마게도냐로 떠나는 것에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들도 경험하지 못한 유럽으로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생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강설로 듣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으로 인도하신 성령은 바울 일행을 빌립보로 인도했습니다. 마게도냐의 환상을 생각하면 일부 사람들은 환상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뜻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환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위험합니다. 환상 자체가 바울에게 하나님의 명령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여러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꾸 환상만 보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위험으로 안내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환상만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따라가는 것이 참된 믿음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기복주의와 신비주의로 물든 이 세상에서 참된 방향으로 인도함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참된 방향으로 인도를 하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바울 일행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새로운 선교지 마게도냐로 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시면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바울 일행은 환상을 통해 논리적인 추리와 판단한 후 이동을 한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환상이 마치 직접적인 계시로 생각을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서 환상이 이곳저곳에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성경을 통해 인도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여튼 바울은 드로아를 떠나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 거리는 210킬로미터입니다. 남양주에서 대전 거리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좋은 배 등이 있지만, 그 당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배를 타고 향해하면서 간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가던 중 중간 지점인 ‘사모드라게와 네압볼리’가 있습니다. 사모드라게는 에게 해 북통쪽에 있는 섬으로 포세이돈 섬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섬에서 아마도 최소한 하루 정도 정박을 하면서 휴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후 바울은 네압볼리로 갔습니다. 바울이 네압볼리로 간 것은 마게도냐를 갈 수 있는 항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서울로 가기 위한 인천과 같은 항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를 위해 네압볼리를 떠나 빌립보 성에 도착합니다. 12절을 보시면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여기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빌립보 성을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입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것은 빌립보가 규모와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성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진행될 것임을 넌지시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빌립보 성에서 전도는 온 누리에 복음이 전하여질 수 있도록 하는 초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 성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빌립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 전에는 “크레니데스” 샘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였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의 이름을 사용하여 빌립보 성이라고 했습니다. 로마는 이곳에서 이주민 정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고참 직업 군인들이 빌립보로 이주하도록 함으로 빌립보 성은 황제 직속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빌립보는 중요한 곳으로 바다와 육지의 양쪽 통로 상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어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였고, 금광 때문에 로마의 식민지로서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식민지인이라도 로마시민권을 조건 없이 주었습니다. 로마 정부에 세금을 납부도 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로마에서 끊임없이 공문을 보내고 같은 마음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로마 제국의 심벌과 같은 도시에 도착한 것입니다. 바로 그곳은 로마 제국의 찬란하고 화려하고 강철과 같은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사령부와 같은 도시요 정치도 같은 형태였습니다. 바울에게 마지막 여행의 종착지인 로마를 경험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작은 로마라고 할 수 있는 빌립보에서 전도함으로 결국 로마에서 복음을 전함으로 오늘날 온 누리에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한 것을 보면 성령의 인도하심은 놀라운 것입니다. 복음은 미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로마 정부를 무너지도록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성령은 헬라어로 프뉴마입니다. 그 뜻은 ‘바람’입니다. 마치 바울이 배를 타고 갈 때 바람이 뒤에서 불어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로 인도하신 것 같이, 성령은 당신님의 사역으로 온 누리에 바람이 무엇인지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알면서 바울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이처럼 한 지역에 즉 이스라엘만 있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꾼인 사람을 사용하시어 온 누리에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것도 하나님을 알기에 경배와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에서 수일을 유하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전도를 할 것인가를 구상했을 것입니다. 무작정 전도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 누리의 역사를 변혁하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는 기독교인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빌립보 성의 사람들은 바울이 누구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알았다면 예의주시했을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던 중 안식일이 다가왔습니다. 13절을 보시면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이곳은 유럽의 첫 성이라고 하지만, 회당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회당 대신에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바울은 회당을 찾아서 기도하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하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문 밖 강가’에 간 것입니까?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 강가에 기도처를 만든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자신의 몸을 정결히 하고자 하는 것이고, 기도한 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바로 그곳에 ‘앉아서 모인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남자는 없었기 때문에 회당이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기도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여자들만 모이는 곳에 바울이 들어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남자들만 회당에 가서, 그리고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님을 안 후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대함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말을 한 것입니다.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마침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루디아가 바울의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14절을 보시면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루디아는 이방인이요 자주 장사를 하는 부유한 상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바울의 말을 통해 루디아는 자신의 마음을 열어 귀한 사역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주 장사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조개껍데기에서 추출한 자줏빛의 염색과 그것으로 염색한 자주색 모직을 의미합니다. 자주색은 고귀한 색으로 여겨졌고 자주색 모직의 가격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지주색 옷을 입은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 상류 지도층임을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주색 염색을 추출하는 기술은 독특한 기술이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바리새인처럼 복음을 전했다면 루디아는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어 주셨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루디아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의 유창한 말솜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누리에 복음이 전하여질 수 있도록 루디아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들을 때에 그녀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고전3:6-7절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는 바울의 고백을 생각하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14절을 보아도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게 하심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이 들어가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루디아를 보십시오. 15절입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입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후 세례를 준 것처럼, 바울은 루디아에게 그리고 그 집에서 생활하는 자들에게 다 세례를 주었습니다. 무조건 준 것이 아니라 참되게 신앙고백을 하는 가운데 주었을 것입니다. 루디아를 만남으로 사도 바울이 활동할 수 있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루디아가 자신의 집에 있으라고 강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루디아는 자주 장사를 했기 때문에 돈을 잘 버는 여인이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바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지 감당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나중에도 바울에게 여러차례 재정적 도움을 주었고 또한 훗날 바울이 로마에 감금되어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헌금을 보내 주기도 하였습니다.(빌 4:18)

 

우리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바울은 ‘대단하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가 강조하는 것은 이 일을 시작하신 분도 성령이었고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강설을 청종하게 한 분도 성령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성령 가운데 일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구원 계획에는 일정한 순서와 질서가 있습니다. 이를 구원의 경륜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의도와 목적 아래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 가운데 통치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계획에 결코 관여할 수 없습니다. 바울도 역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활동 하심은 당신님의 백성 안에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전하여질 수 있도록 언제나 사람을 준비해 두십니다. 루디아도 이방인이었지만, 개종한 여인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기도처를 구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만나게 하심으로 복음의 문이 열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방 전도 여행을 하던 바울에게 자신의 집까지 제공하며 빌립보 선교의 선두 주자가 되었던 루디아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루디아가 보여준 헌신적인 봉사와 적극적인 신앙생활의 자세는 오늘날 교회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섬김은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진실한 변화가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도 구원을 받게 하는 놀라운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루디아와 같은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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